가을이 다 가고서야 낙엽을 밟습니다 그려. 그도 그럴 것이 농부에게 이 계절이란 이루 다 말할 수도 없이 바쁜 하루하루겠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십분만 걸어 나가도 온통 붉고, 노란데 무에 그리도 일이 많은지요. 근 2년 만에 얼굴을 본 이도 ‘농부가 농부 같아야지’라며 도통 농사짓는 모양새가 아니라며 허허 웃는데도 말입니다.

 

<10분만 걸어나가도 가을을 볼 수 있는데도 뭐가 그리 바쁜가요(공치전)>

 

춘천으로 오고 나니 꽤나 많은 이들이 사는 것, 농사짓는 것, 이런 저런 구경삼아 오겠다, 고들 하더군요. 또 어떤 이들은 강촌의 구곡폭포니, 가평의 남이섬, 그리고 이곳 춘천의 중도를 떠올리면서 꼭 한 번 더 가보고 싶다고들 합니다. 헌데 다들 사는 게. 그래 그리 녹녹치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 오겠다던 사람들. 전화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엊그제네요. 주말도 아닌 월요일 아침. 느닷없이 오겠다는, 여기 춘천엘 놀러오겠다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답니다. 그것도. 그래요. 좀 전에도 말했지요. 근 2년 동안이나 얼굴도 못 본(사실은 지지난주, 서울에 볼일을 보러 갔다 저녁 술 한잔 했으니 ‘통’이란 한 글자를 넣어야 하겠네요) 선배의 전화를 말입니다.

 

실은 누가 여기 춘천에를 온다고 하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뭐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모두들 알 듯 모를 듯한 어떤 뭔가에 이끌려오곤 하지만. 딱히 어딜 함께 갈만한 곳도. 함께 먹을 만한 것도 마땅치가 않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아련한 뭔가가 떠오르긴 한데. 막상 가보면. 그래요. 뭐 별 거 없는 게 괜스레 미망하기만 하더라구요.  

 

<올 봄, 산책길에서 본 중도예요. 멀리 배가 보이지요?>

 

   <5분 남짓 배를 타면. 중도에 다 왔습니다>

중도. 

그래요. 중도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는. 배를 타고 건너진 않았지만 왠지 그럴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러랬습니다. 그건 아마도. 짬짬이 산책을 다니던 길가에서 의암호 너머로 늘 보이는 모습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거길 다녀왔다던 사람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하던 이야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거, 뭐 볼 거라곤 하나도 없어요’

 

근화동쪽 뱃터를 이용하면 차를 실을 수 있지만 가격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래 보통은 뱃터 혹은 삼천동쪽 선착장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는 가벼이 몸만 싣습니다. 호수 이쪽에서는 섬이 꽤나 커 보이지만. 걸어서도 넉넉잡고 서너 시간이면 둘러보는데 충분하거든요. 그러니 굳이 차를 가지고 들어갈 이유가 없답니다.

 

날 좋은 봄이나 가을, 혹은 여름 한철에는 배가 쉼 없이 오가지만. 바람 불고 낙엽 다 떨어진 요맘때. 것도 평일 아침이라면 배에 오르기 전 이런 말을 듣기도 한답니다. 대략 5분 남짓이면 저편에서 이편으로, 이편에서 저편으로 오가는데도 말입니다.

 

‘나오시려거든 미리 전화를 주세요. 언제 배가 들어가는지 확인하셔야 하니까요’

 

 

 

<어때요. 종일 걷고, 쉬고, 보며, 얘기하기에 딱이지 않습니까>

 

중도는 의암댐이 들어서면서 생겨났답니다. 쉽게 말해 물길을 막기 전엔 걸어서 다녔던 곳이란 거죠. 그렇게 만들어진 섬은 크게 상중도와 하중도로 나뉘는데요. 이 가운데 하중도가 흔히들 알고 있는 중도유원지이구요. 상중도는 농사를 짓는 이들이 살고 있는, 여느 시골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중도는 딱히 볼만한 거리들이라곤, 딱히 즐길만한 놀이시설이라곤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춘천을 배경으로 찍은 ‘겨울연가’와 ‘와니와 준하’ 촬영지, 섬을 둘러싸고 있는 산책길 과 자전거길, 선착장 바로 옆 선사유적지, 저렴한 가격의 통나무집과 민박, 들을 빼고 나면. 널따란 잔디, 사방에서 보이는 강, 나무와 조그만 숲이 다니까요. 하지만 이런 점들이 오히려 중도의 매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는데요. 이번 방문이 그런 느낌을 가져다 주었더랬거든요.

  

2년여 만에 봤기도 했지만. 배를 전세 낸 듯 둘이서만 타고서. 다 떨어진, 이제는 색까지 다 바랜 낙엽을 밟으며. 좀 세차긴 했지만 시원한 강바람도 맞으며. 그동안 살아왔던 얘기들. 앞으로 살아갈 얘기들. 다른 이들이 사는 얘기들. 걷다. 가끔은 나무 아래, 호숫가에 쉬기도. 추위를 녹이려 자판기 커피를 한잔씩 마시기도. 섬으로 들어오는 배를 말없이 바라보기도. 하니, 중도. 이 섬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더라니까요.    

 

이제 누군가가 또 춘천엘 온다면 함께 들를만한 곳으로. 그래요. 중도를 추가해야겠습니다. 다소 뱃삯이 비싸기는 하지만. 종일 걷기에 이만한 곳이 어디 또 있을까 싶으니. 종일 사람 사는 얘기를 나눌 수 있을 만한 곳이 어디 또 있을까 싶으니.

 

꽃망울이 터진 봄이면 어떻고, 낙엽이 다 진 이 가을이면 또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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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11:47 2009/11/11 11:47

올 초, 역시나 밭 구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좀 더 좋은 밭을 얻어 보겠다는 욕심 아닌 욕심으로 작년에 지었던 밭을 놓쳤던 게 일의 시작이었고 안 되겠다 싶어 생활정보지까지 뒤적거리다 장학리로, 사우동 솔밭으로, 정족리로, 송암동으로 연일 허탕을 치더니 종국엔 농지원부가 뭔지도 모르는 지금 밭주인을 겨우 겨우 만났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작년보단 작물들이 꽤나 잘 자라는 것 같아 구할 때 가졌던 마음 졸임을 다 잊고 있으니 썩 나쁜 기억으로만 남을 것 같진 않습니다.

  

<집은 춘천 서쪽 끝트머리에, 밭은 동쪽 끝트머리에 있답니다. 어찌..... 밭이 넓나요?>

 

작년에 농사를 지었던 밭은 평수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처음 농사를 짓는 거라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에 작은 밭을 구했거든요. 그때도 생활정보지에 내 놓은 광고를 보고 구했습니다. 연고라고는 친구 하나 없는 곳에서 인데다 급하게 이사를 하느라 시내에 아파트를 얻었기에 밭 구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봄농사 시작하기엔 좀 늦긴 했지만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밭을 구했으니 정말 다행이었죠.

 

<집을 나서 처음 만나게 되는 순환도로에는 지금 경춘복선전철 공사가 한창이랍니다> 

 

연일 장맛비가 계속 내리니 밭에 나가는 시간도 자연스레 줄었습니다. 애초 한 낮 더위는 피해 새벽녘과 해질녘을 전후해 서너 시간씩만 일을 하기로 했던지라 지금처럼 비가 계속되면 다른 이들보다 일이 더 쌓이게 되지요. 하지만 고추 몇 주가 쓰러진 거 빼곤 큰 피해도 없고 제때 풀을 잡아주지 못해 무릎까지 풀이 난 곳만 빼면 크게 손 볼 곳이 없으니 다행입니다. 그래도 가끔씩 맑은 하늘이 보이거나 잔뜩 흐려있어도 비가 오지 않으면 바로 바로 자전거에 오릅니다. 틈날 때마다 김매기도 해주고, 지주대도 다시 묶어주고, 열무며, 알타리를 심을 곳도 손봐야 하니까요.

 

<공지교에서 대룡산을 바라본 보습입니다. 다리 아래로는 의암호로 흘러들어가는 공지천이 흐릅니다>

 

밭은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대략 6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문전옥답(門前沃畓)이란 말이 있듯이 집 근처에 밭이 있다면 좋으련만 그렇지가 않은 거죠. 해서 밭에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고 시간도 꽤나 걸린답니다. 차가 있다면 채 10분도 걸리지 않을텐데, 자전거로 위험한 곡예를 하듯 찻길을 따라 때론 긴 오르막길도 넘어 가려니 그런 것이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남들은 시간 내고 돈 내서 운동한다던데 뭐 운동하는 셈치고 열심히 페달을 밟습니다. 그래도 가끔 힘이 부칠 때면 집 뒤 조그만 산 하나만 넘으면 금방이었던 작년 밭이 떠오르긴 합니다.

 

<작년에 텃밭 농사를 지었던 곳은 이런 멋진 호숫길을 따라 갈 수 있었답니다>

 

아직도 춘천하면, 중도와 아침 안개가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정작 춘천으로 이사한 이후로도 여태 호수를 건너 둘러보지 못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학교와도 거리가 꽤 멀고 교통편도 그리 좋지 않은데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왠지 모르게 처음 본 순간부터 꽤나 끌렸습니다. 베란다에서나마 뒷산을 볼 수 있는 것도 그렇고, 조그만 오솔길을 지나 만나게 되는 도서관도 그렇고, 무엇보다 공지천에서부터 의암호를 끼고 돌아 중도에를 건널 수 있는 배터까지 연결된 산책길이 마음에 들었던 겁니다.

 

<초기 도시계획 단계에서 각 교차로에 1호, 2호, 식으로 불렀던 것이 그대로 지명으로 남은 팔호광장입니다>

 

<팔호광장을 지나면 곧 긴 오르막이 나타납니다. 이 언덕만 아니었으면 밭에 가는 길이 꽤 수월할텐데.....>

 

올 해 얻은 밭에 가는 길은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보기엔 우습기까지 하겠지만 도심을 가로질러 가야합니다. 다행히 시청을 중심으로 한 명동 한복판을 지나지는 않지만 남부시장과 운교사거리며, 팔호광장 등을 거쳐야 하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집은 춘천 서쪽 끄트머리에 밭은 동쪽 끄트머리에 있네요. 아무튼 이리 도심을 가로질러 가려니 도무지 밭에 가는 맛이 나질 않습니다. 게다가 자전거 뒤 짐받이에는 괭이며 삽을, 앞 짐바구니에는 호미며 낫을 싣고는 밀짚모자를 쓴 채 질주하는 모습이라니. 참 멋대가리 없습니다. 그려.

 

그에 비해 작년에 얻었던 밭에 가는 길은 나름 농사짓는 폼을 잡을 수 있을만했더랬습니다. 집이 워낙 변두리에 있었던 터라 고개 하나만 넘으면 곧 산과 논과 밭이 흩어져 있어 자전거를 타고 갈라치면 경운기도 ‘털털털털’ 다니고 소똥 냄새도 엔간히 났으니까요. 게다가 좀 전에도 얘기했던, 의암호에 자리 잡고 있는 중도를 바라보며 달릴 수 있는 산책길이 집까지 연결돼 있었으니까요.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야겠습니다. 지난주까지 퍼붓던 장맛비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거든요. 하루걸러 200미리, 130미리 장대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물이 아직도 빠지질 않고 있습니다. 또 고추도 몇 주 쓰러졌고 오이, 호박, 토마토, 방울토마토에 세워줬던 지주대도 흔들흔들하거든요. 게다가 모처럼만에 어제 서울 나들이를 하는 바람에 또 이틀을 밭에 나가지 못했답니다. 그래 일이 많거든요. 아 참. 내일은 밭에 다녀오는 길에 잠시 자전거포에 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시리 며칠 전부터 페달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게 기어도 뻑뻑하니 아무래도 손을 좀 봐야 할 것 같거든요. 밭에 오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전거가 고장이라도 나면. 당장 걷고, 버스타고, 또 걷고. 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합니다.

 

 

 

 

 

<이제 밭이 코 앞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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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8 23:05 2009/07/28 2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