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춘천을 떠나며 산 책>

 

대형 서점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인터넷 서점이 활개를 치면서. 동네 서점은 학습지 판매점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나가는 판국인지 오래됐습니다. 일, 이백 원도 아니고 몇 백 원 또는 몇 천 원씩 싸게 파는 마당에 당해낼 재간이 없겠지만. 당장에 필요한 책이 아니라면 이틀이면 집에서 편안히 받아볼 수 있으니. 이래저래 동네 서점을 찾아 가는 게 되레 시간을 내야 하는 일이 돼버렸지요. 그래도 부러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을 꺼내 보는 재미며. 동네 서점에서도 이런 책이 다 있네, 하며 반갑게 들쳐보게 되는 책들을 만나게 되는 재미는. 아무래도 동네 서점만이 가지는 매력이겠지요.

 

춘천에도 꽤나 큰 서점이 두 개가 있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ㄱ문고니, ㅇ문고니, ㅂ어쩌고 저쩌고는 아니지만. 나름 본점에 지점까지 하나, 둘씩은 갖고 있었으니. 분명 큰 서점임에 틀림없지요. 하지만 춘천이 서울이나 하겠습니까. 그 큰 서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동네 서점들보다야 크긴 크지만. 말이 좋아 지점도 있는 큰 서점이지. 겨우 서가 한 켠 정도만 차지하고 있는 인문서적이나 사회과학서적들. 한 층을 온통 차지하고 늘어선 초.중.고등학교 자습서와 수험서들을 보자면. 동네 서점이라 할 만했지요. 그래서였을까요. 가끔 책 구경을 나서게 되면. 책 절반은 조지 오웰이 직접 영국 중북부 지역의 광산촌에 들어가 체험한 것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글들이 그리도 나머지 절반엔 사회주의가 왜 노동계급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가를 냉철하고 날카롭게 지적한 <위건부두로 가는 길>과 같은 책을. 그래, 이런 책도 여기서 볼 수 있구나, 하며 선뜻 계산대까지 가게 만드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태백에 와 처음 산 책>

 

느닷없이 태백으로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다는 말이 어울릴 듯. 보름 상간에 방 빼고 방 구하고. 도배, 장판에, 버릴 것 버리고 쌀 것 싸고. 자칫 번갯불에 볶은 콩이 탈 지경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와중에도 출근은 해야겠기에 보름간 머물 오피스텔까지 하나 구해 놓고 춘천에 왔다, 다시 태백으로 갔다, 를 수차례. 다행히 베란다로 보이는 풍경이 꽤나 좋은 곳에 집을 얻어 고생은 길게 하진 않았지만. 차비없이 한 이사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더랬습니다.

 

춘천에 비하면 사람 수만 봐도 5분의 1. 오르락내리락 언덕길이 많아 다니기가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뿐 크기도 대충 그만큼은 하려나. 아무튼 춘천보다도 더 작은 도시이니 서점이라곤 학교 앞 참고서 파는 곳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지요. 그러니 인문, 사회과학 서적을 파는 곳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번화가라고 해봐야 걸어서도 겨우 20여분이면 다 둘러보는 시내 한복판에 말입니다. ‘역사학의 지평을 넓힌 12인의 짧은 평전’이라는 부제를 달고, E. H. 카아, 하워드 진과 같은 꽤나 유명세를 타는 역사학자들부터 챈들러, 캐너다인, 립겐스와 같은 생소한 역사학자들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미시사, 일상사, 구술사, 기업사와 같은 전통적인 정치.사회사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벗어난 연구자에서부터 지역적으로도 미국뿐만 스페인, 독일, 프랑스, 러시와 같은 다양한 나라들의 역사 연구를 소개하고 있는. <역사가들>과 같은 책이 떡하니 서가에 진열돼 있는 서점이 있다니. 오호, 여기 태백. 아, 이런 책들도 여기 있구나, 하는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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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6 14:56 2012/04/06 1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