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1.
IMF 구제금융 이후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양극화로 치닫고 있습니다. 굳이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은 기존 소득계층을 유지하겠지만 중산층은 감소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아니라도. 팍팍한 살림살이에 동전회수율은 높아지는 반면 공항이용객은 해가 갈수록 늘어만 가는 것만 봐도. 80대 20을 넘어 90대 10으로까지 진행됐다는 얘기가 결코 빈말은 아닐 듯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화될 거란 우울한 전망만이 나오는 이유는, 맞습니다. 지난 20여년의 시간 속에서 체념되고 내면화된, ‘나만 잘살면 되는 겨’ 식의 삶이 너무나 보편화됐기 때문입니다. 경쟁, 아니 정확하게는 무한경쟁만이 사회를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믿음이 맹신이 된 겁니다.
 
게다가 어느 도지사가 스스럼없이 내뱉는 말마따나 신분사회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어느 순간 절망으로 떨어지곤 합니다. “상류층의 부와 신분 대물림”이라는 게 고작 아이들 밥그릇 빼앗아 교육복지에 써서 될 거였다면. 지금껏 해왔던 그 많은 ‘서민복지’들은 다 뭐였단 말입니까.
 
2.
글쓴이는 경상도 단성현의 ‘호적대장’에서 발견한 한 인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김홍발’이라는 이가 바로 그 사람인데요, 실은 ‘김홍발’보다는 그의 조부 ‘김수봉’이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홍발’은 ‘김수봉’이 평민으로 신분상승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양반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다 알다시피 조선 시대는 신분제 사회였습니다. 왕을 최고 정점으로 양반과 중인, 평민, 천민으로 이루어지는 피라미드형 사회였던 겁니다. 책 제목과 부제에서 잘 드러나듯. 피라미드에서 가장 밑바닥이라고 할 노비였던 ‘김수봉’, 그리고 그의 자손들이 피라미드의 제일 윗부분인 양반으로 올라서기까지 과정을 추적한 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대대로 주인 집안에 예속된 소유물로 신분적 억압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생계를 보장받아야 했던 대부분의 다른 노비들과는 다른 삶을 이어갔던 ‘김수봉’과 그 후손들.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급격히 신분제가 흔들리기 시작하던 때임을 감안해도. 그들이 거친 과정은 그야말로 ‘머나먼 여정’이었음이 틀림없을 터이고, 글쓴이는 그 긴 여정을 꼼꼼히 기록한 겁니다.
 
3.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자수성가’라는 말도 흔하지 않았구요. 검정고시로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대통령까지 됐던 사람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요즘엔 개천에서 용은커녕 모 항공사 회항사건에서 보이듯 새로운 신분사회를 알리는 말과 행동이 스스럼없습니다.
 
반면 ‘가난은 대물림된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말도 복지 지출을 줄이려하는 정부를 옹호하는 데 쓰고 있구요. 물론 자기들이 하는 복지는 신분상승을 위한 ‘희망의 사다리’인 반면, 남들이 하고자하는 복지는 ‘포퓰리즘’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노비 ‘김수봉’과 그 후손들이 보여준 신분상승을 향한 의지와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이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쌓는 ‘스펙’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책에는 조선 후기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도 있지만 결국 노비에서 양반으로 올라선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보자면, 어찌됐거나 ‘김수봉’에서 ‘김홍발’로 이어지는 어느 한 노비 가계(家系)는 결국 양반으로 신분상승을 이뤘지만. 한 집 건너 볼 수 있는 ‘장그래’들은 과연 ‘정규직’이라도 될 수 있는 걸까요. 어찌 보면 조선시대보다도 더 한 신분사회, 그 속에서 신분상승은 꿈도 못 꿀 일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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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4 10:19 2015/04/14 10:19
사용자 삽입 이미지‘물타기’가 유행입니다.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하던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알려준 힌트를 재빠르게 옮깁니다. 직접 나서서 ‘공무원 단체’와 ‘공무원’ 얘길 꺼내는 거지요. 기다렸다는 듯 속사포처럼 쏘아대고 언론은 이를 받아쓰기 바쁩니다.
 
교학사 교과서 문제도 그랬습니다. 여기저기서 역사 왜곡과 사실 오류를 지적하자 다른 교과서들을 걸고넘어집니다. 역사학계의 ‘좌파’ 장악력이 대단하다, 좌편향된 역사교과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역시 기다렸다는 듯 교육부는 다른 교과서들에 대해 수정하라 하고 언론은 또 받아씁니다. ‘물타기’이지요.
 
교학사 교과서는 역사 왜곡과 사실 오류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일본이 나서서 칭찬하고 있을까요. 해방 후 일제 식민지배 잔재를 제대로 ‘청소’하지 못한 탓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예전엔 이렇게 직접적으로 나서진 않았던 것 같은데. 곳곳에서 친일파 동상이 다시 들어서고 노골적으로 식민 지배를 찬양합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이름으로 말입니다.
 
옮긴이들(박은영.이유재)은 『식민주의 Kolonialismus: Geschichte, Formen, Flogen』(위르겐 오스트함멜 지음)가 식민화, 식민주의, 식민 제국, 제국주의와 같은 혼동하기 쉬운 개념을 명확하게 구분해주고, 식민 국가, 식민 경제, 식민 사회, 식민주의 사고를 거쳐 탈식민화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관계들에 대한 최근 연구 성과를 알기 쉽게 정리하고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합니다.
 
또 서구의 식민 경험과 우리의 그 경험을 비교하고 유사성과 차이를 분석함으로써 독자적인 이론을 형성하는 과정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비교사적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식민지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식민주의가 남긴 물질적․구조적 유산은 한국, 타이완, 그리고 중국 일부에서 이후의 산업 발달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p.130), “1930년대 중반, 2천 2백만 명의 한국인을 통제하기 위해 일본은 제국은 5만 2천 명의 일본 관리를 고용했다. (중략) 이는 식민 사회 구성원과의 ’협력‘을 거의 완전히 포기했던 식민 지배 양식의 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p.104)는 매우 우려되는 주장도 담고 있어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식민 경제정책에 대해 설명하면서 “식민지 정복 이후에는 무정부적 약탈 경제의 국면이 뒤를 잇는 경우가 많았다. (중략) 식민 국가 구조가 공고화된 이후에야 보다 계획적으로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경제 기반이 창출되었다.”(p.116), “식민지의 수출 잠재력을 실현시키는 것이 식민 국가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목표였다면, 식민 국가가 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추구했던 수단은 하부구조 개발 사업이었다.”(p.119)고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또 식민 지배의 조직적 외관은 매우 다양했지만 “식민 국가는 피정복민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해야만 했고, (중략) 한국에서의 일본처럼 잔악한 속박 체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배 행위 양식이 이 전제정에 포괄될 수 있다. (중략) 즉, ‘분리하여 지배하는’ 전략이 시행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이러한 정책은 대부분 식민지 이후의 국가에서 종족의 분열이라는 심각한 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중략) 식민지 경찰로 충원된 토착민들이 국가에 충성심을 가졌는지의 여부는 곧이어 이루어진 탈식민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로 입증되었다. 거의 모든 식민지에서, 일정한 교육을 받고 정치적 역할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는 안전 유지 요원들이야말로 식민 열강들이 후속 국가에 남긴 유산에 속했다.”(pp.81-96)며 식민 지배가 가져온 폐해를 정확히 지적하고도 있지요.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식민지 근대화론과 친일파 논쟁과 관련해 일본 식민 지배를 우호적으로,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가진 생각과 거의 같기 때문에 자칫 큰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40여 년간에 걸친 일제 식민 지배와 그 이후 탈식민화 과정은 우리 사회에 크나큰 짐을 남겼습니다. 난데없이 ‘광복절’인가 ‘건국절’인가라는 논란이 생기는 것도 그렇고, 정부에 반대되는 생각을 한다고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분단이데올로기가 여전한 것도 그렇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됐다고 ‘민주주의’가 완성된 마냥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도 그렇고, 행동 자체를 아예 ‘불온시’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물타기’가 유행입니다. 아니 ‘물타기’가 여전히 먹히고 있습니다. 역사가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런 ‘물타기’가 통할 리 없겠는데. 아무래도 우린 대통령이 선거 때 자주 하던 말처럼 여전히 “과거에 묻혀 사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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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3 09:27 2013/11/03 09:27

사용자 삽입 이미지<춘천을 떠나며 산 책>

 

대형 서점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인터넷 서점이 활개를 치면서. 동네 서점은 학습지 판매점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나가는 판국인지 오래됐습니다. 일, 이백 원도 아니고 몇 백 원 또는 몇 천 원씩 싸게 파는 마당에 당해낼 재간이 없겠지만. 당장에 필요한 책이 아니라면 이틀이면 집에서 편안히 받아볼 수 있으니. 이래저래 동네 서점을 찾아 가는 게 되레 시간을 내야 하는 일이 돼버렸지요. 그래도 부러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을 꺼내 보는 재미며. 동네 서점에서도 이런 책이 다 있네, 하며 반갑게 들쳐보게 되는 책들을 만나게 되는 재미는. 아무래도 동네 서점만이 가지는 매력이겠지요.

 

춘천에도 꽤나 큰 서점이 두 개가 있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ㄱ문고니, ㅇ문고니, ㅂ어쩌고 저쩌고는 아니지만. 나름 본점에 지점까지 하나, 둘씩은 갖고 있었으니. 분명 큰 서점임에 틀림없지요. 하지만 춘천이 서울이나 하겠습니까. 그 큰 서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동네 서점들보다야 크긴 크지만. 말이 좋아 지점도 있는 큰 서점이지. 겨우 서가 한 켠 정도만 차지하고 있는 인문서적이나 사회과학서적들. 한 층을 온통 차지하고 늘어선 초.중.고등학교 자습서와 수험서들을 보자면. 동네 서점이라 할 만했지요. 그래서였을까요. 가끔 책 구경을 나서게 되면. 책 절반은 조지 오웰이 직접 영국 중북부 지역의 광산촌에 들어가 체험한 것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글들이 그리도 나머지 절반엔 사회주의가 왜 노동계급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가를 냉철하고 날카롭게 지적한 <위건부두로 가는 길>과 같은 책을. 그래, 이런 책도 여기서 볼 수 있구나, 하며 선뜻 계산대까지 가게 만드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태백에 와 처음 산 책>

 

느닷없이 태백으로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다는 말이 어울릴 듯. 보름 상간에 방 빼고 방 구하고. 도배, 장판에, 버릴 것 버리고 쌀 것 싸고. 자칫 번갯불에 볶은 콩이 탈 지경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와중에도 출근은 해야겠기에 보름간 머물 오피스텔까지 하나 구해 놓고 춘천에 왔다, 다시 태백으로 갔다, 를 수차례. 다행히 베란다로 보이는 풍경이 꽤나 좋은 곳에 집을 얻어 고생은 길게 하진 않았지만. 차비없이 한 이사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더랬습니다.

 

춘천에 비하면 사람 수만 봐도 5분의 1. 오르락내리락 언덕길이 많아 다니기가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뿐 크기도 대충 그만큼은 하려나. 아무튼 춘천보다도 더 작은 도시이니 서점이라곤 학교 앞 참고서 파는 곳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지요. 그러니 인문, 사회과학 서적을 파는 곳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번화가라고 해봐야 걸어서도 겨우 20여분이면 다 둘러보는 시내 한복판에 말입니다. ‘역사학의 지평을 넓힌 12인의 짧은 평전’이라는 부제를 달고, E. H. 카아, 하워드 진과 같은 꽤나 유명세를 타는 역사학자들부터 챈들러, 캐너다인, 립겐스와 같은 생소한 역사학자들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미시사, 일상사, 구술사, 기업사와 같은 전통적인 정치.사회사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벗어난 연구자에서부터 지역적으로도 미국뿐만 스페인, 독일, 프랑스, 러시와 같은 다양한 나라들의 역사 연구를 소개하고 있는. <역사가들>과 같은 책이 떡하니 서가에 진열돼 있는 서점이 있다니. 오호, 여기 태백. 아, 이런 책들도 여기 있구나, 하는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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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6 14:56 2012/04/06 1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