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물타기’가 유행입니다.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하던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알려준 힌트를 재빠르게 옮깁니다. 직접 나서서 ‘공무원 단체’와 ‘공무원’ 얘길 꺼내는 거지요. 기다렸다는 듯 속사포처럼 쏘아대고 언론은 이를 받아쓰기 바쁩니다.
 
교학사 교과서 문제도 그랬습니다. 여기저기서 역사 왜곡과 사실 오류를 지적하자 다른 교과서들을 걸고넘어집니다. 역사학계의 ‘좌파’ 장악력이 대단하다, 좌편향된 역사교과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역시 기다렸다는 듯 교육부는 다른 교과서들에 대해 수정하라 하고 언론은 또 받아씁니다. ‘물타기’이지요.
 
교학사 교과서는 역사 왜곡과 사실 오류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일본이 나서서 칭찬하고 있을까요. 해방 후 일제 식민지배 잔재를 제대로 ‘청소’하지 못한 탓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예전엔 이렇게 직접적으로 나서진 않았던 것 같은데. 곳곳에서 친일파 동상이 다시 들어서고 노골적으로 식민 지배를 찬양합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이름으로 말입니다.
 
옮긴이들(박은영.이유재)은 『식민주의 Kolonialismus: Geschichte, Formen, Flogen』(위르겐 오스트함멜 지음)가 식민화, 식민주의, 식민 제국, 제국주의와 같은 혼동하기 쉬운 개념을 명확하게 구분해주고, 식민 국가, 식민 경제, 식민 사회, 식민주의 사고를 거쳐 탈식민화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관계들에 대한 최근 연구 성과를 알기 쉽게 정리하고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합니다.
 
또 서구의 식민 경험과 우리의 그 경험을 비교하고 유사성과 차이를 분석함으로써 독자적인 이론을 형성하는 과정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비교사적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식민지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식민주의가 남긴 물질적․구조적 유산은 한국, 타이완, 그리고 중국 일부에서 이후의 산업 발달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p.130), “1930년대 중반, 2천 2백만 명의 한국인을 통제하기 위해 일본은 제국은 5만 2천 명의 일본 관리를 고용했다. (중략) 이는 식민 사회 구성원과의 ’협력‘을 거의 완전히 포기했던 식민 지배 양식의 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p.104)는 매우 우려되는 주장도 담고 있어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식민 경제정책에 대해 설명하면서 “식민지 정복 이후에는 무정부적 약탈 경제의 국면이 뒤를 잇는 경우가 많았다. (중략) 식민 국가 구조가 공고화된 이후에야 보다 계획적으로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경제 기반이 창출되었다.”(p.116), “식민지의 수출 잠재력을 실현시키는 것이 식민 국가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목표였다면, 식민 국가가 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추구했던 수단은 하부구조 개발 사업이었다.”(p.119)고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또 식민 지배의 조직적 외관은 매우 다양했지만 “식민 국가는 피정복민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해야만 했고, (중략) 한국에서의 일본처럼 잔악한 속박 체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배 행위 양식이 이 전제정에 포괄될 수 있다. (중략) 즉, ‘분리하여 지배하는’ 전략이 시행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이러한 정책은 대부분 식민지 이후의 국가에서 종족의 분열이라는 심각한 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중략) 식민지 경찰로 충원된 토착민들이 국가에 충성심을 가졌는지의 여부는 곧이어 이루어진 탈식민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로 입증되었다. 거의 모든 식민지에서, 일정한 교육을 받고 정치적 역할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는 안전 유지 요원들이야말로 식민 열강들이 후속 국가에 남긴 유산에 속했다.”(pp.81-96)며 식민 지배가 가져온 폐해를 정확히 지적하고도 있지요.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식민지 근대화론과 친일파 논쟁과 관련해 일본 식민 지배를 우호적으로,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가진 생각과 거의 같기 때문에 자칫 큰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40여 년간에 걸친 일제 식민 지배와 그 이후 탈식민화 과정은 우리 사회에 크나큰 짐을 남겼습니다. 난데없이 ‘광복절’인가 ‘건국절’인가라는 논란이 생기는 것도 그렇고, 정부에 반대되는 생각을 한다고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분단이데올로기가 여전한 것도 그렇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됐다고 ‘민주주의’가 완성된 마냥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도 그렇고, 행동 자체를 아예 ‘불온시’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물타기’가 유행입니다. 아니 ‘물타기’가 여전히 먹히고 있습니다. 역사가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런 ‘물타기’가 통할 리 없겠는데. 아무래도 우린 대통령이 선거 때 자주 하던 말처럼 여전히 “과거에 묻혀 사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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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3 09:27 2013/11/03 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