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터미네이터> 시리즈 중 몇 편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2편이던가요, 3편이던가요. ‘심판의 날’이라고 불리는 핵전쟁을 일으킨 ‘스카이넷’을 보면서 전율했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합니다. 물론 영화 내내 인간을 꼭 닮은 로봇에,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시각효과에 놀랐지만요.

 

모든 것을 통제하고자 만든 인공지능 시스템이 되레 통제 불가능 상태가 돼 인간을 파멸로 몰아넣는 것을 보며 놀라움과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물론 그 후에 나온 많은 영화들이 이런 미래의 모습을 더욱 사실적으로 그려냈지만. 기억으론 ‘스카이넷’이 보여준 그 가공할만한 통제력. 그리고 그 통제력이 세상을 혼돈과 파멸 속으로 끌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것. 그야말로 소름끼치는 일이었습니다.

 

2.

어쩌자고 그런 말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가봐야 별 뾰족한 수가 있을 거라 생각지도 않았는데도 관리사무소를 찾아간 게 잘못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벌써 2대째입니다.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2년 동안 타던 자전거를 잃어버렸고. 급한 마음에 동네 자전거포에서 산 중고 자전거를 1년 남짓 잘 썼는데. 며칠 전에 자물쇠가 깨끗이 절단된 채 없어졌더군요. 머 거기까진 그냥저냥. 얼마나 급했으면 그 후진, 페달도 다 닳아 바꿔야 하고, 짐받이엔 농산물상자까지 매달린 걸 가져갔을까 했는데.

 

새로 자전거를 주문했지만 당장은 버스를 타고 밭에 가야 하기에 이른 아침 호미며, 물병, 낫 등을 가방에 주섬주섬 넣고는 집을 나서는데. 아, 글쎄 없어진 그 헌 자전거 옆, 앞 동에 사는 어떤 분이 세워둔, 분명 산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자전거가 없더라구요. 물론 없어진 자리엔 또 깨끗이 잘린 자물쇠만 나뒹굴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3.

행정안전부가 보건복지부, 경찰청 등 관계부처와 함께 첨단 정보기술을 활용해 실종 아동을 신속히 찾을 수 있는 ‘실종 아동 종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2006년 이후 매년 8% 이상 늘어나는 아동과 지적 장애인 등의 실종 신고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하는데요.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든 건 바로 그 다음 얘기였습니다. 행정안전부가 밝힌 이 종합정보시스템이란 게 전국 시·군·구 CCTV 통합관제센터에 지능형 영상 정보 검색 체계를 도입하는 거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실종 아동의 이미지 정보를 토대로 CCTV 영상 정보에서 실종 아동을 자동 인식·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로 한 것이라는데요. 물론 이 정보는 경찰 순찰차에 설치된 CCTV 영상 정보 수신 단말기로 전송돼 실종 아동을 신속하게 찾도록 돕는다고 하더군요. 

 

4.

관리사무소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자꾸 자전거가 없어지는데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여름철에 되면 더 분실 신고가 들어온다, 순찰을 강화하겠다, 자전거 보관대가 너무 허술하다 등등. 하지만 더 뾰족한 수는 나오질 않고 대화는 어느 순간부터 겉돌기만 하더군요. 그러다 어느 순간, 물론 아파트 단지 전체에 CCTV를 설치하잔 얘기는 아니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도 어쩌자고 그런 말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진전 없는 토론에 지쳐서였을까요. 아니면 지난 번 살던 아파트에선 한 번도 없었던 일이 여기서 벌써 두 번째라 속이 상해서였을까요. 결국 자전거를 보관하는 사람들이 잠금장치에 더 신경을 써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허망해서였을까요.

 

“단지 내에 빈 공간이 있으니 그곳에 자전거 보관대를 모으고 그곳에 CCTV를 설치하는 건 어떻습니까?”

 

5. 

CCTV가 없다면 대체 절도범은 누가 잡고, 교통사고 원인은 누가 따지고, 음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늘어나는 범죄를 예방하고 신속한 범인 검거를 위해 CCTV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말에 딴죽을 거는 짓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구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예방을 위해 CCTV를 설치하겠다는데, 대체 어떤 위치에 설치되는지, 몇 대나 설치되는지를 물어봤다간 이상한 눈초리를 받기 십상입니다.

 

공장에도 사무실에도 갖가지 핑계로 감시의 눈은 늘어나고. 버스, 택시에도 운전노동자와 승객보호라는 미명아래 어김없이 카메라가 설치됩니다. 급기야 늘어나는 농산물 도둑에, 전기선 절도를 잡겠다고 농촌에도 CCTV 설치가 유행이 되고 있구요.

 

하지만 촘촘하게 얽힌 이 감시의 눈초리가 정말 효과가 큰지 절대 물어봐선 안 될 질문입니다. 집을 나서 학교, 직장, 밭으로 가는 길에 몇 번이나 내 모습이 찍히고 있는지는 알 수조차 없습니다. 동의는커녕 언제 설치됐는지도 모르는 카메라가 365일, 24시간, 쉬지도 않고 주위를 맴돕니다. 설치된 숫자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란 말까지 나오고.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사설업체, 개인까지 마구잡이로 CCTV를 설치되는 데도 말이지요.

 

6.

행안부가 발표한 미아찾기시스템에는 이런 내용도 있더군요. 어린이 실종에 대비해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지문 등 아동의 개인정보를 사전에 등록하는 캠페인을 1년간 하겠다고 합니다. 스스로 인적사항을 알릴 수 없는 유아와 지적 장애인 등이 실종됐을 때 쉽게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데요.

 

그래요. 지문날인, CCTV, 전자주민증, 생체인식시스템. 처음엔 다 그렇게 시작했을 거고 또 시작할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그것들은 곧 누구도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감각해졌고 또 무감각해질 거구요. 그러다, 그것들이 없으면 당장 무슨 일이라도 터질 것 같은, 그것들이야말로 이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스카이넷’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또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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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3 19:00 2011/06/23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