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전작 <동물농장>과 마찬가지로 <1984> 또한 종종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책으로 소개되곤 합니다. 하지만 두 책을 읽고나면. <동물농장>은 풍자와 해학이 섞여 있고 <1984>는 좀 더 어둡고 암울하다는 차이만 있을 뿐. 전체주의에 대한 엄중한 경고 일뿐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더불어 <1984>나 <동물농장> 모두 미래 사회 혹은 상상된 사회에 대한 경고 정도로만 소개되곤 합니다. 하지만 전체주의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사회 모두 에서 분명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범죄예방이라는 미명하에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CCTV만 보더라도 감시사회는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왔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갖다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저자의 의도를 왜곡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을 하는 걸 보면. 정말 읽었나봤나 싶기도 하고. 보긴 봤어도 자기 좋을 대로만 읽었구나 싶은 게. 꼭 무슨, 무슨 신문과 방송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그가 쓴 일련의 다른 책들, 이를테면 <카탈로니아 찬가>나 <위건부두로 가는 길>과 같은 글들까지 함께 본다면.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철저한 옹호자가 바로 오웰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터이니. 무슨 말을 하던 그냥 그대로 내버려둬도 괜찮겠단,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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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6 10:52 2013/04/26 10:52

1.

 <터미네이터> 시리즈 중 몇 편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2편이던가요, 3편이던가요. ‘심판의 날’이라고 불리는 핵전쟁을 일으킨 ‘스카이넷’을 보면서 전율했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합니다. 물론 영화 내내 인간을 꼭 닮은 로봇에,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시각효과에 놀랐지만요.

 

모든 것을 통제하고자 만든 인공지능 시스템이 되레 통제 불가능 상태가 돼 인간을 파멸로 몰아넣는 것을 보며 놀라움과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물론 그 후에 나온 많은 영화들이 이런 미래의 모습을 더욱 사실적으로 그려냈지만. 기억으론 ‘스카이넷’이 보여준 그 가공할만한 통제력. 그리고 그 통제력이 세상을 혼돈과 파멸 속으로 끌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것. 그야말로 소름끼치는 일이었습니다.

 

2.

어쩌자고 그런 말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가봐야 별 뾰족한 수가 있을 거라 생각지도 않았는데도 관리사무소를 찾아간 게 잘못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벌써 2대째입니다. 이사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2년 동안 타던 자전거를 잃어버렸고. 급한 마음에 동네 자전거포에서 산 중고 자전거를 1년 남짓 잘 썼는데. 며칠 전에 자물쇠가 깨끗이 절단된 채 없어졌더군요. 머 거기까진 그냥저냥. 얼마나 급했으면 그 후진, 페달도 다 닳아 바꿔야 하고, 짐받이엔 농산물상자까지 매달린 걸 가져갔을까 했는데.

 

새로 자전거를 주문했지만 당장은 버스를 타고 밭에 가야 하기에 이른 아침 호미며, 물병, 낫 등을 가방에 주섬주섬 넣고는 집을 나서는데. 아, 글쎄 없어진 그 헌 자전거 옆, 앞 동에 사는 어떤 분이 세워둔, 분명 산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자전거가 없더라구요. 물론 없어진 자리엔 또 깨끗이 잘린 자물쇠만 나뒹굴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3.

행정안전부가 보건복지부, 경찰청 등 관계부처와 함께 첨단 정보기술을 활용해 실종 아동을 신속히 찾을 수 있는 ‘실종 아동 종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2006년 이후 매년 8% 이상 늘어나는 아동과 지적 장애인 등의 실종 신고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하는데요.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든 건 바로 그 다음 얘기였습니다. 행정안전부가 밝힌 이 종합정보시스템이란 게 전국 시·군·구 CCTV 통합관제센터에 지능형 영상 정보 검색 체계를 도입하는 거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실종 아동의 이미지 정보를 토대로 CCTV 영상 정보에서 실종 아동을 자동 인식·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로 한 것이라는데요. 물론 이 정보는 경찰 순찰차에 설치된 CCTV 영상 정보 수신 단말기로 전송돼 실종 아동을 신속하게 찾도록 돕는다고 하더군요. 

 

4.

관리사무소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자꾸 자전거가 없어지는데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여름철에 되면 더 분실 신고가 들어온다, 순찰을 강화하겠다, 자전거 보관대가 너무 허술하다 등등. 하지만 더 뾰족한 수는 나오질 않고 대화는 어느 순간부터 겉돌기만 하더군요. 그러다 어느 순간, 물론 아파트 단지 전체에 CCTV를 설치하잔 얘기는 아니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도 어쩌자고 그런 말이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진전 없는 토론에 지쳐서였을까요. 아니면 지난 번 살던 아파트에선 한 번도 없었던 일이 여기서 벌써 두 번째라 속이 상해서였을까요. 결국 자전거를 보관하는 사람들이 잠금장치에 더 신경을 써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허망해서였을까요.

 

“단지 내에 빈 공간이 있으니 그곳에 자전거 보관대를 모으고 그곳에 CCTV를 설치하는 건 어떻습니까?”

 

5. 

CCTV가 없다면 대체 절도범은 누가 잡고, 교통사고 원인은 누가 따지고, 음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늘어나는 범죄를 예방하고 신속한 범인 검거를 위해 CCTV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말에 딴죽을 거는 짓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구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예방을 위해 CCTV를 설치하겠다는데, 대체 어떤 위치에 설치되는지, 몇 대나 설치되는지를 물어봤다간 이상한 눈초리를 받기 십상입니다.

 

공장에도 사무실에도 갖가지 핑계로 감시의 눈은 늘어나고. 버스, 택시에도 운전노동자와 승객보호라는 미명아래 어김없이 카메라가 설치됩니다. 급기야 늘어나는 농산물 도둑에, 전기선 절도를 잡겠다고 농촌에도 CCTV 설치가 유행이 되고 있구요.

 

하지만 촘촘하게 얽힌 이 감시의 눈초리가 정말 효과가 큰지 절대 물어봐선 안 될 질문입니다. 집을 나서 학교, 직장, 밭으로 가는 길에 몇 번이나 내 모습이 찍히고 있는지는 알 수조차 없습니다. 동의는커녕 언제 설치됐는지도 모르는 카메라가 365일, 24시간, 쉬지도 않고 주위를 맴돕니다. 설치된 숫자에 따라 ‘빈익빈 부익부’란 말까지 나오고.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사설업체, 개인까지 마구잡이로 CCTV를 설치되는 데도 말이지요.

 

6.

행안부가 발표한 미아찾기시스템에는 이런 내용도 있더군요. 어린이 실종에 대비해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지문 등 아동의 개인정보를 사전에 등록하는 캠페인을 1년간 하겠다고 합니다. 스스로 인적사항을 알릴 수 없는 유아와 지적 장애인 등이 실종됐을 때 쉽게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데요.

 

그래요. 지문날인, CCTV, 전자주민증, 생체인식시스템. 처음엔 다 그렇게 시작했을 거고 또 시작할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그것들은 곧 누구도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감각해졌고 또 무감각해질 거구요. 그러다, 그것들이 없으면 당장 무슨 일이라도 터질 것 같은, 그것들이야말로 이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스카이넷’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또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하게 통제된 사회.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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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3 19:00 2011/06/23 19:00

1.

파놉티콘이 죄수로 하여금 스스로 규율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들고, 점차 규율을 ‘내면화’해 스스로를 감시하게 만드는 것(pp.22-23)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 무슨 의미를 갖게 될 것인지를 스스로가 검열을 하게끔 만드는. ‘국가보안법’은 어떤가요. 
 
또 파놉티곤이 푸코(Michel Foucault)가 지적하듯 아무렇게나 선택된 누구라도 이 기계를 작동시킬 수 있음으로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 가는 중요하지 않는 것(p.24)이라면.
 
일제가 조선 식민지 사상 통제와 해방투쟁을 탄압하는데 사용했던 ‘치안유지법’에 그 뿌리를 둔. 1948년 해방 정국에서 자유로운 민중들의 욕구를 억누르는 수단으로 부활해. 김대중이었든 노무현이었든. 지난 60여 년 간 사상의 자유를 사장시킨 ‘국가보안법’ 말입니다. 
 
2. 
파놉티콘이 죄수를 교화하기 위해 설계되었지만 동시에 환자를 치료하는 데에도, 학생을 가두는 데에도 그리고 거지와 게으름뱅이를 일하도록 시키는 곳에도 적용(p.24)될 수 있다면. 아니 실제 이러한 기관들이 감옥과 매우 닮아 푸코가 말하는 ‘세상의 파놉티콘화’라면.
 
혹 이 글이 누구로부터 고소를 당하지나 않을까. 플래카드에 써 넣은 저 문구 때문에 월급 통장과 집에 딱지가 붙지는 않을는지. 끊임없이 주저하게 만들고, 멈칫멈칫하게 만드는. ‘가압류’와 ‘명예훼손’은 어떤가요. 
 
또 파놉티콘이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가 벤담에게 말한 것처럼 거미줄을 쳐놓고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가 있다면.
 
정부 정책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한 비판이나 문제제기. 해소되지 않는 의문점들을 끄적거릴라 쳐도. 아주 돈이 많거나, 속된 말로 ‘빽’이 있나, 되돌아보게 만드는. ‘가압류’와 ‘명예훼손’ 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3.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파놉티콘Panopticon이라는, 벤담의 감옥 개념에 처음 접한 건 힘멜파브와 미셀푸코가 쓴 두 글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두 글은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에 자세히 소개돼 있구요. 그러다 90년대 말 빠른 속도로 확장돼 가고 있던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경험한 전자 감시, 데이터 감시로부터 정보 파놉티콘, 전자 파놉티콘이라는 개념에 접하게 됐답니다. 그리고는 “벤담이 설계한 파놉티콘에 구현된 감시의 매커니즘과 이에 대한 푸코의 해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만연되어 있는 전자 감시와 프라이버시 침해, 그리고 감시의 역학관계를 뒤집는 역감시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요.  
 
4.
벤담은 끝내 자기가 구상했던 판옵티콘을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벤담이 살아온다면 무척이나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몹시도 흐뭇해할 겁니다. 
 
그 자신은 물리적인 상상 속에서만 파놉티콘을 그려냈지만. 후대 권력자들은 이를 시공간에서 뛰어넘어 만들어내고 있으니 말이지요. 손에 잡히지도 않는 원형감옥을 말입니다. 그러니, 이정도면 놀라거나 흐뭇해하는 걸 너머 혀를 내두르지나 않을까요. 
 
헌데 어찌된 것인지. CCTV니 전자주민증이니 전자여권, 말들도 많지만. 또 인터넷 실명제에 휴대폰 감청 같은 것들도 문제이겠건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난데없이 ‘국가보안법’과 ‘가압류’, ‘명예훼손’이 떠오른 건 왜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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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6 19:26 2010/10/06 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