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3일(월) 맑음

 
30여명이 함께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애초 취업을 목적으로 온 사람들도 있을 터이고. 은퇴 후 집을 지으려고 하는 이들도 있을 터. 또 2달이 지나면서 목수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왔던 이들 가운데 얼마는 목하 고민하고 있고. 또 얼마는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비용이 드는 집짓기에 한옥 자체를 목하 고민하고 있으니.
 
대패면 대패, 끌이면 끌. 열심히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치목도 해보고 가구도 짜보며, 집이 올라가는 전체 과정을 직접 해보고자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게다. 누군 꼼꼼히 치수까지 적거나 사진으로 과정 하나, 하나를 남기기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적당히 티 안 나게 빠지기도 하면서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도 하니.
 
집을 의뢰한 사람이 자기 나무도 많다고 하는데, 어째 나무는 자꾸 늦게 들어오고. 교육시간표상으론 이번 주부터는 가구를 짜야 하는데, 오늘도 통 그럴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결국 기수 회장을 통해 학교장에게 건의를 했다고 한다. 벌써 일, 이주 전부터 돌아가는 모양새가 그리 썩 좋아보이질 않았는데.
 
다만 학교장님 얘기론 내일 오전에 나무들이 들어온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고. 혹시나 우려했던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5월 14일(화)
 
어째 일이 잘 풀린 건가 어쩐 건가. 학교장이 보증까지 해가며 켜온 대보가 들어왔으니, 또 교육 일정이 틀어진 것에 대해 사과까지 했으니 잘 풀린 것 같기도 한데. 나무가 들어와도 여전히 겉도는 사람은 겉돌고 있으니, 뭐가 안 풀려도 잘 안 풀린 것도 같으니. 잘 모르겠다. 또 잘 모르겠어. 하지만 기다리던 대들보가 들어와 오후엔 치목도 다시 시작했고. 오전엔 규준틀을 박고 실도 띄우고. 피타고라스 정리를 이용해 직각을 잡은 십반줄 위에 주초도 세웠으니. 아무래도 어제 일은 잘 풀린 듯싶다.
 
<주초 놓기>
① 평면도를 보고 대략적인 집의 규모에 맞춰 사방 말뚝을 박는다.
② 말뚝 하나를 정해 레벨기를 이용 기준선을 정한다.
③ ②를 통해 정해진 기준선으로 나머지 말뚝들에도 실을 띄울 기준선(수평선)들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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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각 말뚝에 정해진 기준선에 맞춰 적당한 판재를 이어 박는다.
⑤ 기준이 되는 한쪽 모서리부터 + 줄을 띄운다.
* 실 띄우기는 ‘청명 본다.’라고도 하는데 정확한 직각을 위해 피타고라스 정리를 적용한다. 문헌상으로는 삼국시대부터 이 정리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구고현법(句股弦法)이라 한다.
⑥ 기준이 되는 + 정해지면 여기서부터 기둥/주초가 놓일 자리를 정확히 잡는다.
⑦ 기둥/주초가 놓일 자리가 잡히면 사방으로 줄을 띄우는데 짧은 쪽부터 먼저 띄운다.
⑧ 줄이 다 띄어지면 + 가 되는 곳마다 줄이 얼마나 잘 맞아 떨어지는지 확인하고 높게 띄어지거나 낮게 띄어진 곳을 조정한다.
⑨ 주초들에 십반먹을 놓은 후 이 십반먹과  + 줄이 일치되도록 주초를 놓는다.
* 이때 모든 주초의 높이와 수평이 일정하게 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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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수) 맑음
 
드디어 대보 치목이다. 방법이나 요령은 오량보와 마찬가지. 다만 오량보의 경우 보를 치목하고 난 후 보의 높이를 가지고 대공 길이를 정해 치목했으나. 이번엔 동자주가 먼저 치목됐으니. 동자주가 들어갈 자리를 정해 따낸 후 치목된 동자주의 높이와 대보의 높이를 가늠해 다시 동자주를 조정해야 한다. 이처럼 일이 다소 번잡스럽게 되더라도 방식은 마찬가지니. 대보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손을 놓고 있느니, 이렇게라도 일거리를 만드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오전엔 어제 오후에 그리다만 보 머리며 도리가 앉힐 자리를 그리고. 오후엔 저마다 체인톱으로 나무를 깎아냈다. 물론 오량보를 한 번씩은 해봤어도 여전히 톱 사용에 능숙치 않기에. 잘라낼 선은 남겨두고 연습할 선을 그어놓고 여러 번 연습을 해가며 작업을 진행했다. “연습하시게요? 그러게 평소에 연습을 많이 했으면 좋았잖아요.” 하시는 샘 말씀을 뒤로하고 말이다. 덕분에 수평으로 톱을 집어넣고 따내는 방법도 손에 익힐 수 있었으니. 지금도 늦지 않았고. 남은 2주도 길다면 길으니, 기술을 더 익히기엔 충분하다.
 
5월 16일(목) 맑음
 
대보가 치목되니 보류해뒀던 동자주를 마무리해야 한다. 해서 한 팀은 대보를 또 한 팀은 동자주를 동시에 작업한다. 대보는 동자주가 들어갈 자리를 따내고 머리와 도리가 들어갈 자리를 톱으로, 끌로 파내고. 동자주는 대보 높이가 정해졌으니, 다시 동자주 높이를 조정한 후 대보와 맞물릴 장부를 만든다. 오전 내내 그리고 오후 내내 톱으로 따내고 끌로 마무리하고. 하루가 참말로 빠르다.      
 
5월 17일(금) 맑음
 
부처님 오신 날이다. 연휴에 좋은 날씨, 덕분에 아침부터 시외버스에 사람들이 가득이다. 월정사에 가시려는 할마시들부터 산에 가려는 중년의 아자씨들. 그리고 계곡으로 발 담그러 가려는지 바리바리 싸들고 타는 젊은 청춘들. 날이 날이니만큼 서서 가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톨게이트에서 별 말이 없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어제 저녁 때쯤 많이들 내려갔겠거니 싶었는데, 스무명 가까이가 출석을 했으니 말이다. 뭐 그래봐야 좀 있으면 하나, 둘 어디론가 사라지고 늘 남아 있는 사람들만 있겠지만. 언제부터 이리됐는지 모르겠지만 좀 안타깝기도 하고. 좀 아쉽기도 하다. 좀 더 많이 얘기들을 나눌 수도 있고, 또 좀 더 같이 일을 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이제 2주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니 그런 마음이 더 생기는 것도 같다.
 
오늘로 치목해야 할 것들은 대부분 끝내야 한다. 대보도 그렇고 박공도 그렇고. 문선이며 창틀같은 수장재와 고주도 마무리를 해야 한다. 또 이래저래 신경을 써서 해야 할 일들이 꽤나 있다. 그래도 얼마 남진 않았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일이 척척 진행된다. 알아서 일손이 필요한 곳에 달라붙어 함께 하고. 샘 손짓 하나, 눈짓 하나에도 뭐가 필요한지 뭐를 해야 하는지 아니 그럴 수밖에.
 
오후엔 비계도 들어왔다. 대보도 마무리되고. 박공도 거의 다 만들어졌고. 고주는 아침에 손을 봤고, 남아 있던 수장재도 점심 먹고 끝냈으니. 다음 주 월요일부턴 기둥 세우고 본격적인 조립에 들어간다는 말이 이제야 실감난다. 비록 일주일이나 늦어지긴 했지만 내심 기대가 크고.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 더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려면 주말, 푹 잘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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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8 21:35 2013/05/18 2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