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화엄사에서 바라보는 노고단, 그리고 수한마을에서 오미마을까지(2020년 5월 1일)
 
수한마을에서 화엄사 입구까지는 금방인 줄 알았습니다. 주섬주섬 뭘 많이 먹고 나오기는 했지만, 절 구경 전에 밥 먹으면 되겠지, 라는 생각에 길을 나섰습니다. 마을 돌담 골목길을 빠져나와 숲길을 지나 과수원을 끼고 포장길도 걷고. 다시 소나무 숲길을 오르락내리락, 높지 않은 산허리를 지나 또 숲길을 한참 가고나니 화엄사네요. 늦은 아침인지 이른 점심인지 헛갈리지만, 일단 서둘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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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몇 번 와본 거뿐이긴 해도 오늘처럼 사람 많은 적이 있었던가요. 입구부터 차가 밀리더니 경내에 들어서니 장날입니다. 사람들을 피해 일주문대신 이어진 담이 끊어진 곳을 통해 들어가니 단체로 온 몇 사람 빼고는 스님 한, 두 분뿐입니다. 해서 처마 아래 누워 저 멀리 보이는 노고단을 오래오래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전에는 대웅전 맞은 편 전각에서 봤었는데, 여기도 참 좋네요.

그래도 여까지 왔으니 대웅전이며 각황전, 삼층석탑은 둘러봐야겠는데, 사람도 사람이거니와 날이 더우니 삼층석탑은 건너뜁니다. 또 박물관이면 없는 시간 쪼개서라도 꼭 보고가야 하는데, 성보박물관도 지나칩니다. 내려가는 내내 뒤돌아서서 드높은 지리산 자락과 찻길 건너로 계곡 건너로 바람에 나풀거리는 초록 잎을 바라보기도 했지만요.

다시 길을 나서 시계를 보니 한 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덥다고 탑도 안보고 내려왔는데, 땡볕에 걸으려니 당체 속도가 나질 않습니다. 게다가 나무 그늘 하나 없는 포장길이다 보니 땀도 많이 나고 숨쉬기도 힘드네요. 한 삼십분 남짓 걸었는데도 지칩니다. 때마침 나온 숲길이 아니었다면 다 그만두고 숙소로 돌아가겠다, 싶었더라니까요. 땀도 식히고 숨도 고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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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쉬고 나니 바람도 솔솔 불고, 너른 구례벌을 시원하게 보여주는 곳도 꽤 나오고. 어제도 그랬는데, 과수원을 가로지르거나 끼고 돌아가는 길이 있어 심심하지만도 않습니다. 대죽길도 이어지다 녹차밭도 나오고, 멀리 반짝이며 굽이도는 섬진강까지 눈에 들어오니 아침보다 발이 가벼워지기까지 합니다. 다만 하사마을 지나 긴 아스팔트 길 끝에 오미마을 들어가는 길을 놓치고 말았네요.

 
오미마을은 삼년 전인가요, 사년 전인가요. 하루 묵으면서 운조루도 둘러보고 했던 곳입니다. 그땐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오늘은 꽤나 많네요. 사람도 사람이지만, 기운이 다 빠져서인지 읍내 가는 버스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불과 오십 미터도 안 되는데 발이 떠지질 않습니다. 겨우겨우 할머니들께서 파시는 감말랭이 한 봉지 사서 버스에 오릅니다.
 
* 지리산 둘레길 걷기 일곱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산동-방광, 방광-오미 구간입니다만 출발은 탑동마을입니다. 해서 이틀간 모두 24킬로미터 정도네요. 탑동마을에서 방광마을까지 11.6km, 방광마을에서 오미마을까지 12,3km.
 
* 가고, 오고
세 시에 묵호역에서 강릉역으로 다시 상봉역까지 그렇게 열차로, 남부터미널에서는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구례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넘어도 훌쩍 넘었습니다. 그래도 돌아올 때보다는 나았네요. 동해로 갈 때는 연휴라 차가 하도 밀리는 바람에 강릉에서 열차를 놓쳤습니다. 결국 심야택시타고 묵호로 넘어왔습니다. 어차피 강릉에 숙박할 곳 찾기도 힘들고 해서 집으로 온 건데요, 택시비가 7만원이 넘게 나오니 속이 좀 쓰리기는 합니다.
 
* 잠잘 곳
구례를 지나는 <산동-방광>, <방광-오미>, <오미-송정> 구간은 구례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무겁게 가방을 메고 걷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동해에서 오고가는 것도 낫기 때문입니다. 물론 산동이나 탑동, 방광, 오미, 송정마을에는 민박집들이 있으니 편할 데로 하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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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9 11:03 2026/04/09 11:03
첫째 날: 구례벌이 내려다보이는 구릿재 넘는 길(2020년 4월 30일)
 
2년 만입니다.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꼭 왔었던 것 같은데. 작년엔 뭐가 그리 바빴을까요. 달력을 보니 연휴가 없었더군요. 한 여름엔 걸을 수 없다는 걸 첫 걷기에서 배웠고. 겨울은 왠지 걷고 싶은 마음이 동하지가 않습니다. 요즘처럼 어린 나뭇잎이 파릇파릇 올라오거나 빨갛고 노란 색색 옷을 입을 때만 기다리려니 그렇게 됐더군요.
 
그래서일까요. 6일 연휴로 좀 잠잠해지려나 싶은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지는 않을까, 질병본부가 신신당부를 해서 가도 될까, 망설여지긴 했지만요. 어느새 주섬주섬 짐 싸고 기차에 시외버스까지 예매하고 있더라니까요. 이틀간 머물 곳 정하고 중간에 어디서 밥 먹을까, 저녁은 뭐 먹지. 참 사람마음 간사합니다. 마스크에 소독제까지 가져가니 괜찮을거야, 좀 더 조심하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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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숙소에서 뭐를 주섬주섬 먹고 나왔는데도 탑동마을에 서니 배가 출출합니다. 꽤 구불구불 돌아 올라가는 길이 길기도 하고, 올라간 만큼은 다시 돌고 돌아 내려가야 밥 먹을 데가 나오니. 배를 든든이 채워야겠습니다. 마을 입구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 바람에 손 흔드는 나뭇잎 보다가, 마을 사람들이 다시 세웠다는 삼층석탑도 구경하고 나선 길. 구불구불 구불길입니다.

 
포장된 길도 걷다, 숲길도 걷다, 임도를 따라 조금은 재미없는 오르막도 오르다가 정자에서 잠시 땀도 식히고. 참 많이도 가져왔지 싶은 주전부리도 먹고. 재작년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송전탑만 아니면 시원한 편백나무 숲에서 놀다 갔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그렇게 한 시간 반쯤 올랐을까요. 드디어 구릿재입니다. 발아래 구례벌이 펼쳐있어 눈호강을 하고는 싶은데 이런, 여기도 송전선이 머리 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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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분은 넘게 투덜투덜 내려왔나요. 그제야 쉴만한 곳이 나옵니다. 고압선도 없구요. 헌데 이번엔 뱃속에서 꼬로록 꼬로록. 밥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럴까요. 가파르지 않아 이만하면 오르막도 걸을만하다 했는데. 그래도 힘은 부쳤나봅니다. 지도를 보니 한참은 더 내려가야 마을이 나올 것 같으니 마음이 급합니다. 잠깐 쉬었다가 가파른 포장길을 타박타박 걷습니다.

 
연휴라 문을 열지 않았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맛나게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덤으로 한 낮 땡볕도 피할 수 있었구요. 예년 이맘때와는 다르게 기온이 25 가까이 올라 걷는 게 쫌 힘들었거든요. 옷을 가볍게 입는다고는 했지만. 햇빛 가린다고 얼굴에 이것저것 쓰고 가리느라 땀이 목덜미에 송글송글. 화장실이 어디 있을지 몰라 물도 목을 축이는 정도만 마시고. 한참을 쉬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쉬엄쉬엄 걸어도 됩니다. 머리가 반쯤 남은, 무릎 아래는 또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는 석불상도 둘러보고. 과수원 안쪽을 가로 질러도 가기도 하고. 시원한 대죽 숲길에선 잠깐 쉬어가기도 하고. 방광마을을 지나서는 오랜만에 만난 찻길도 걷고. 둘레길을 걷지 않으면 이렇게 마을 안길을 걸을 수나 있을까. 돌담이 집들을 둘러싸고 있는 방광마을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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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잔치도 한 달 뒤로 미루기는 했지만 오늘은 석가모니께서 오신 날. 가까운 곳에 샘과 구렁이와 글씨가 어우러져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천은사(泉隱寺)가 있으니 가볼까도 싶지만. 축일까지 다음에 하겠다는 곳을 가는 것도 뭐하고. 괜한 차 한 대 놓치고 투덜투덜. 다음 차도 겨우 잡아타고 읍내로 오니 그제야 해가 제 일을 다 했나, 시원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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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7 10:50 2024/03/07 1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