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외국영화를 보다보면 가끔 원제목과는 전혀 다른 제목 때문에 헛웃음이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테리 길리암 감독이 1985년에 내놓은 ‘Brazil’이라는 컬트무비는 ‘여인의 음모’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는데요. 영화를 보는 내내 대체 저 여인이 뭔 음모를 꾸민다는 거지, 괜한 상상을 하게 만들다 끝내. 영화 속 주인공처럼 환상에서 깨어날 때쯤 영화도 끝난다는. 꽤나 어처구니없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 물론 반대의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것도 영어식 제목을 무조건 한글로 해야 했던 웃긴 시대에 나온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으로 나왔던 이 영화는 ‘내일을 향해 쏴라’라는 아주 멋진 제목으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으니까요.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의 수수께끼>와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에 이어 <식인과 제왕>까지, 문화인류학 3부작을 잇달아 발표했던 마빈 해리스가 1981년도에 쓴 이 책. 첫 장부터 책을 덮을 때까지 내내 대체 제목을 왜 이따위로 한 거야, 란 말이 나왔지요. 아무리 눈에 확 들어오는 제목을 뽑는다고는 해도, <아무것도 되는 게 없어>가 모랍디까. 책 내용과 동떨어진 거는 물론이거니와 문화인류학과는 촌수를 따지기도 힘든 제목. 솔직히 마빈 해리스란 이름만 없었다면 그냥 눈길 한 번 주는 걸로 끝났을 겁니다. 하지만 저거 계속 보고 있자면 찝찝한 마음이 자꾸 생기니 말이지요. 달력이라도 한 장 죽 찢어 표지를 덮어 버린 다음, 꼼꼼히 읽어보면. 해리스가 이전에 썼던 책에서도 밝혔듯이 사회학이나 경제학만큼이나 시대를 읽어 내는 눈이 생기는 데 문화인류학 역시 큰 도움이 되겠다, 라는 것. 또 그것이 마빈 해리스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이면서도 매우 적절한 분석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제목 따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2/03/21 17:36 2012/03/21 1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