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1894년 고부에서 일어난 봉기를 시작으로 ‘척왜척양(斥倭斥洋)’, ‘보국안민(輔國安民)’ 기치를 든 일련의 사건들을 일컬어 보통은 ‘동학농민운동’ 혹은 ‘동학농민혁명’이라고 합니다. 교과서에도 그렇게 쓰여 있고 그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곳들도 대게는 이를 차용해 이름이 붙었으니 그렇습니다.
 
하지만 작가 박태원은 <갑오농민전쟁>이란 이름을 붙였더랬습니다. 눈이 멀고 몸이 굳어지는 와중에도 끝내 마무리를 한 동명(同名)의 장편역사소설에서 말입니다. 한편에선 이를 두고 사회주의에 토대를 둔 작가의 이념이 투영된 것이라고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이들이 이 명칭을 쓰기도 하니 이런 얘기들은 흘려들어도 될 만합니다.
 
또 ‘동학농민운동’이나 ‘동학농민전쟁’이라고 한다면. 자칫 ‘동학(東學)’이라는 특정 종교와 이를 따르는 도인(道人)들이 일을 일으킨 것으로 한정되는 측면이 있으니. 갑오년(甲午年)이라는 특정 시간대를 두고 이름을 붙이는 게 좋을 듯싶기도 합니다. 또 당시 무장봉기를 일으켰던 이들을 두고 농민군(農民軍)이라 불렀으니 당연히 이 또한 이름에 넣어야 할 것이구요. 마지막으로 봉건 잔재를 일소하는 일대 사회변혁의 사상은 물론 일본 제국주의와의 피할 수 없는 싸움까지 내포하고 있었으니 ‘전쟁’이 아니 붙을 수 없으니. 어찌 보면 ‘갑오농민전쟁’이 맞을 듯싶습니다.
 
다만 이제껏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혁명’으로만 불렸던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봉기를 주도했던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동학(東學)의 접주(接主)였고 또 도인(道人)들이 많이 참여를 했던 것은 틀림없지만. 그 후 극심한 탄압으로 동학(東學)은 그 세(勢)가 거의 없어져 명맥이 끊겼으니 굳이 이를 고수하려는 이들이 많지 않았을 터인데 말이지요.
 
아무튼 북으로 갔지만 남로당계열로 숙청된 데다 구술(口述)에 의존해 마무리 지었다는 <갑오농민전쟁>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지낸 또 다른 월북작가 홍명희가 쓴 <임꺽정>과 더불어 최고 역사장편소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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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2 17:39 2013/02/22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