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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에 대해

"봉사야 말로 나의 종교다. 나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요 며칠 간디와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 저항'에 관한 책을 연달아 읽고 있다.

(<마하트마 간디>-앙리 스테른 지음. <비폭력>-마리 아네스 꽁브끄 외.)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단 최근 지율스님의 단식을 겪으면서 그냥 우연히 눈에 들어와 읽게 된 책들이다.



간디에 대해선 어린 시절 전기와 그의 삶을 다룬 영화를 통해 접한 지식이 아마 그에 대한 전부였었다.

 

또 서른 한살때부터 종교적 수행을 위해 부부 관계를 갖지 않았던 간디가 쉰 여섯의 나이에 당시 자신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 찾아온 33세인 영국인 매덜린 슬레이트와 나눈 애틋한 '정신적 사랑'에 대한 전기적 소설(<미라와 더 마하트마>. 수디르 카카르 지음)이 출간됐다는 기사를 통해 간디를 다시 보기도 했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의심하는 인간적인 간디의 모습을 말이다.

 

간디가 미라(매덜린은 이후 신화 속의 여성 양치기이자 힌두신 크리슈나의 연인인 '미라'로 불렸다)에게 보낸 편지엔 격정적인 그의 감정이 담겨 있다고 한다.

"당신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주변을 둘 러보다 문득 당신을 그리워 합니다. 물레를 돌려보지만 잊을 수는 없습니다."

"당신을 위해 힌두 성가를 영어로 옮기면서 행복에 겹습니다. 내가 때로 격정에 사로잡혀 당신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던가요?"

 

이런 사랑은 인도독립운동의 정신적 지도자이며 금욕적 생활을 추구하는 그에게 기쁨이자 동시에 크나큰 고통이었다고 한다. 

 

반면 이번에 읽은 간디의 잠언집은 운동가이자 구도자로서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기자질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말하기 좋아하고, 평가하기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누군가를 '좋아한다' '존경한다' 이런 표현(특히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날 수 있는 경우)은 거의 쓰지 않는데, 간디의 의지와 결연함이 묻어나는 그가 남긴 짤막짤막한 글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히 기억하고픈 구절들을 옮겨보았다.

 

"노동자가 그토록 자구 실패하는 것은 비협력을 통해 저항함으로써 자본가를 무력화시키기보다는 자본을 탈취하여 스스로 자본가가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럴때 유리한 입장에 있고 잘 짜인 계획을 가진 자본가는 언제나 노동자들 가운데 노동자를 탄압하기 위한 지원자들을 찾아낸다."

 

"모든 유형의 불평등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 때문에 모든 인간이 근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새나 들짐승처럼 모든 사람에게 생명 유지에 필요한 욕구를 채울 권리가 똑같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권리에는 공격에 대처할 수단과 의무가 따르듯이 우리는 근본적인 평등과 승리를 보장할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비폭력 수행자의 무기 가운데 가장 주된 무기인 단식을 남용할지도 모른다는 구실로 포기해서는 안된다. 폭력을 효과적으로 대체하기 위해 생각해낸 단식은 아직까지 시작단계에 있으므로 좀더 완벽하게 보완될 수 있다. 나는 비폭력을 생각해낸 사람으로서 어쨌든 비폭력의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인 단식을 포기할 수 없다."

 

"집착 때문에 행하는 모든 행위를 스스로에게 금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에게 많은 위험을 피하게 해줄 황금률이다."

 

"비폭력은 결코 현실에서 악의와 맞서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결 능동적인 투쟁 형태이다. 악의를 늘릴 뿐인 폭력적인 반격보다 훨씬 현실적인 투쟁 형태이다."

 

"비폭력과 비겁함은 함께 갈수 없다. 무기를 소유한다는 것인 두려움이나 비겁함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면 진정한 비폭력은 전적으로 두려움이 없을 때에야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이란 물리적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굴의 의지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임무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진, 의지 굳건한 소수의 사람들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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