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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의 율도국, 심청전의 인당수…수많은 전설 어린 섬 위도

바다목장으로 거듭나는 '고슴도치 섬' 위도

 
황선도 2012. 10. 02
조회수 97추천수 0
 

홍길동의 율도국, 심청전의 인당수…수많은 전설 어린 섬 위도

수산자원 보전과 생태관광으로 새로운 파시 열리려나

 

물고기를 따라다녀야 할 팔자인 수산 전문가에게 현장 조사하러 들렀던 해안 포구와 섬, 그 와중에 만난 사람들은 단순 여행자의 그것과는 다른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불규칙하긴 하지만 여러 해를 사귄 주민들은 느닷없는 연락에도 어제 본 친구인 양 반갑게 맞이해 주고, 서로 뜻밖의 도움을 주고받기도 한다.

 

이렇게 만난 사람들과 장소에 관한 사연이 묵어 이제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간다. 그래서 물고기 이야기에 다 담아낼 수 없었던 포구와 섬 이야기를 한차례 풀어놓으려 한다.

 

자연과학에서는 그곳 자연을 알지 못하고는 조사를 할 수 없기에 지형과 역사를 파악하는 것조차 통합연구의 연장이라는 변명을 가져다 붙인다. 이글의 일부는 홍민표 님의 도움을 받았다.


설레임의 섬, 위도(蝟島)

섬 여행은 육지의 어디를 갈 때와는 다른 설렘을 느끼게 한다.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여행이 일상의 일시적 단절을 의미한다면 섬으로 떠나는 여행자는 아스팔트로 이어진 길에서 물길로 물리적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 연안 섬들 중에 이런 완벽한 단절의 경험을 주는 곳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편리성과 관광객 유치를 위해 다리가 놓여진 곳이 적지않고, 특히 서해 연안에는 새만금 개발과 맞물려 몇 해 안에 ‘연륙교’란 말 그대로 육지가 될 운명인 섬들도 줄지어 있다. 단절감을 주는 설렘이 사라진 섬은 자동차를 타고 스쳐 지나는 풍경으로 남고, 여행자는 여전히 배를 타러 나선다.

 

wi1.jpg » 바다와 섬 여행은 일상과의 단절이 주는 설레임이다.

 

위도 파장금 항은 부안 격포 항에서 뱃길로 50분 거리다. 뱃전 오른쪽으로는 고군산군도의 섬들을 꼬치 꿰듯 잇는 새만금 방조제가 서서히 물러나고 이내 위도(蝟島)에 딸린 식도(食島)가 나타난다. 위도는 30개의 섬을 거느리고 있는데 그중 유인도는 6개뿐이다.

 

wi2.jpg » 위도 지도

40∼50년 전 칠산 앞바다에 몰려온 조기 파시로 유명했던 이 섬은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로 명성에 치명상을 입었다. 2003년 방사능폐기장 유치에 나서야 할 만큼 섬 사람들의 상처는 깊었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뒤 유치 실패가 다행이었다고 여기는 주민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여곡절을 겪는 위도는 이제 청정 해역을 거느린 애초의 모습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wi2-1.jpg » 과거 핵 폐기장이 들어설 예정이던 곳. 지금은 주민들이 유치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는 분위기이다.


고슴도치를 닮은 위도

파장금 항은 위도에 들어가는 들머리로 걸맞은 곳이다. 위도(蝟島)의 위(蝟)는 고슴도치를 뜻한다. 지도를 펴면 섬은 고슴도치가 편안히 누운 모양새다. 파장금(波長金 물결이 길면 어선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으로 파도가 길게 치면 어선들이 대피하여 금, 즉 돈이 몰려온다는 뜻일 게다)은 고슴도치 주둥이에 해당하여 위도를 찾는 여행자들은 배에서 내려 곧장 고슴도치 입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셈이다.

 

항구에서 시작하는 일주도로는 떡시루를 닮은 시루금(시름)을 지나 면 소재지인 진말(진마을, 진리)를 만난다. 앞다리인 정금(鼎金→井金)과 소금벌이 있었다는 벌금을 돌아서면 배 부위에 해당하는 도장금에 다다르는데 그곳에 위도 해수욕장과 식수원인 저수지가 있다.

 

갑자기 나타난 가파른 산길을 굽이굽이 올라가면 ‘이곳이 서해 바다가 맞아?’라고 생각할 만큼 절벽 해안이 나타나는데 바로 그 아래에 고슴도치 배 부위인 깊은금(지푼금, 심구미)과 이어 달그림자가 아름답다는 미영금이다.

 

엉덩이와 꼬리에 해당하는 논금(논구미, 답구미)은 위도에서 유일하게 벼를 경작하는 곳이었고, 조석에 따라 살을 쳐서 고기를 잡았다는 널은 갯벌을 가진 살막금(전막리箭幕里)에 다다른다. 논금에서 살막금으로 넘어 오는 중간에 차바퀴를 닮았다는 거륜도가 있고 주변에 토끼섬과 외조도, 중조도, 내조도가 둘러싸 있는 안락한 바다낚시터가 있다.

 

살막금을 지나 위도 띠뱃놀이전수관이 있는 대리(대돌목, 대저목, 큰돼지의 목 형상이라 해서 대저항, 대장마을, 大里)와 소리(작은돼지목)를 지나 한참을 가면 치도(꿩雉 모양 마을)를 거쳐 다시 파장금으로 돌아오는 길은 고슴도치의 등에 해당한다.

 

치도 앞에 따로 떨어져 있는 형제 섬이 있는데, 큰딴치도와 작은딴치도가 그것이다. 이곳은 얼마전까지 공군의 폭격 목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바로 마을 코 앞인데. 위도에 딸린 섬으로는 멀리 상왕등도와 하왕등도가 있고, 파장금 앞에 식도가 있다.

 

위도와 식도…. 식도(食島)와 이어지는 위도(胃島)가 아니고 고슴도치 위도(蝟島)란다. 항간에는 조기 파시로 휘청망청했던 파장금 항이 주변 돌산을 개발하면서 쇄락했고, 고슴도치가 주둥이를 못쓰게 되니 음식에 해당하는 식도가 먹히지 않아 흥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섬 사람들의 자연 섬기는 마음일 게다.

고슴도치가 방어에 능한 동물인 것처럼 위도는 조선시대에는 위로는 고군산(군산)과 아래로 법성포(영광)까지 관할하는 수군 진영을 둔 군사적 요충지였고, 지금도 진리에 위도 관아가 남아 있다.

 

wi2-2.jpg » 대리 앞바다의 너른 갯벌

 

마을 이름 ‘금’ 자의 비밀
위도는 지명에 순수한 우리말의 흔적을 잘 간직하고 있기로 유명하다. 파장금, 정금, 벌금, 도장금 깊은금, 미영금, 논금, 살막금처럼 ‘금’으로 끝나는 지명은 모두 깊숙이 들어온 내만(內灣)이며 배가 피항할 수 있는 천연의 항구다.

 

‘금’은 ‘구미’의 축약이나 ‘끝’의 변형으로 ‘파장구미’ ‘깊은구미’로 불리기도 한다. 비숫한 지형을 가진 다른 섬이나 포구에서도 ‘구미’ 또는 ‘끝’으로 끝나는 지명을 찾아볼 수 있지만 위도의 ‘금’은 다른 곳과는 달리 한자(金)를 쓴 것이 눈길을 끈다.

 

위도에는 현재 14개 금이 남아 있는데, 이 금들은 섬이 과거에 군사적 요충지였던 내력과 관련이 깊다. 이곳은 지금도 주민들에게 유용한 항구지만, 외적들이 배를 대고 침입하기에도 좋은 곳이어서 수군은 이들 금에 자급할 수 있는 경작지가 딸린 초소를 두었고, 지금도 그중 상당수가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위도 사람들은 이 ‘금’들을 우리말 그대로 두지 않고 ‘金’ 자로 표기하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대로라면 지명에 ‘金’이 붙은 이유는 사금이 났다거나 육지와 바다에서 난 산물이 풍족해 금처럼 소중한 장소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새로운 설이 제기되었다.

 

조선 숙종 때 위도에 최초로 진 설치 임무를 띠고 이곳 위도에 부임했던 광산 김씨 김복남 장군의 9대손인 김영석 선장의 증언을 들으면, 김복남 장군과 그 아들 김한윤은 2대에 걸쳐 위도진을 관할하는 절충장군(첨사, 종3품)을 지냈다. 김복남 장군 부자는 위도 관아 건립과 더불어 14개의 초소를 설치했고 직접 이름을 지었는데, 이때 절충장군이었던 부자의 성을 따 ‘금(金)’ 자를 붙였다는 이야기다. 뒷받침할 사료를 찾는 것이 과제로 남지만, 오랫동안 한 집안에서 내려온 사연이니 위도만의 특별한 지명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하나의 열쇠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wi4.jpg » 광산 김씨 김복남 장군의 9대손인 김영석 선장(왼쪽).

 

섬 속의 도솔천, 내원암
고슴도치의 자궁 자리인 깊은금 산속에는 아담한 절, 내원암이 있다. 절의 이름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의 내원과 외원에서 따 왔다고 한다. 도솔천은 외원궁과 내원궁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외원궁은 천인들이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가는 곳이고, 내원궁은 미륵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지상에 내려올 때를 기다리며 깊이 생각에 잠겨 있는 곳이다.

 

페리호 사고 등 크고 작은 사고들이 끊이지 않았던 섬 사람들은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위도 사람들은 내원암을 찾아 불공을 드리고 마음을 모아 용왕각을 지어 치성을 드린다.

내원암은 여느 산중 사찰의 위용과는 거리가 멀다. 대웅전은 1873년에 중수된 목조 기와집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작은 규모이다. 대웅전 옆에 심겨진 배롱나무 고목이 건물보다 더 커 보일 정도다. 건물보다 더 큰 나무라니….

 

이런 풍경은 내원암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지만, 곧 대웅전 신축공사가 시작된다니 아쉽게도 사라질 풍경이다. 유인갑 면장이 군 유지 일부를 대웅전을 증축하는데 이용할 수 있도록 행정지원함으로써 배롱나무를 옮기거나 제거하지 않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내원암이 소장하고 있는 탱화도 눈 여겨 봐야 한다. 후불탱화인 관음후불탱은 바다에 나가 생명을 담보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바다를 관장하는 해수관음의 영험함이 그려져 있다.

 

wi5.jpg » 내원암과 집보다 큰 배롱나무.


격포 항과 위도 파장금 항을 운행하는 카페리 선실에는 위도를 홍길동전에 나오는 율도국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정말 이곳 위도가 어려운 현실 속에서 미륵이 오길 기다리며 도솔천의 내원을 속세에 재현한 율도국은 아니었을까? 흥미롭기만 하다.

 

심청전 인당수와 문인석

홍길동전의 이상향인 율도국과 대리 마을의 대룡샘, 형제섬에 얽힌 전설 등, 위도는 전설의 섬이다. 그중 가장 특별한 이야기는 심청전과 얽혀 있다.


진리 어촌계장을 맡고 있는 서봉신씨는 1984년경 위도 앞 임수도 근처에서 특이한 돌을 건져 올려 지금도 집 대문가에 세워 놓았다. 보통 묘 앞에 세우는 문인석이었는데, 이 돌이 우리나라에 흔한 재질이 아니고 땅속에 묻히는 기반이 없어 관심을 끌만하다.

 

소설은 소설일 뿐 사실이 아니기에 거기서 근거를 찾는 것 자체가 논리적이지 않지만, 최근 각 지자체들은 홍보를 위해서 자기 지역이 여러 설화의 근거지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그간은 백령도 근처 물살이 세고 중국과의 교역 루트로 이용됐던 해역이 인당수일 것이라고 지목되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심청전의 배경인 인당수가 어디냐는 논란에 불을 지피는 게 아니가 싶다.

 

심청이 공양미 삼백 석에 제물로 팔린 것처럼, 옛날 뱃사람들은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용왕께 인신공양을 하며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산 사람을 수장하는 것이 악습으로 지목되자 뱃사람들은 대신 사람의 모습을 닮은 문인석을 제물로 바쳤지만, 어쨌거나 잔혹한 인신공양의 증거는 거센 물살에도 떠내려가지 않고 확고하게 남았다. 현재 서 씨의 대문 앞에 보관되어 있는 것 외에도 이후 몇 개의 문인석이 더 건져 올려져 치도 노인회관 담장 아래에 2기가 보존되어 있다.

 

wi6.jpg » 위도 앞바다 임수도에서 건져올린 문인석. 인신 공양의 흔적일까.


사라진 조기떼를 부르는 띠뱃놀이

1970년대까지도 위도는 칠산 앞바다의 풍요로운 어장에서 잡아 올린 조기 파시로 명성을 날렸다. 사실 조기로 유명한 곳은 영광군 법성포구이다. 바로 앞 칠산바다에서 조기를 잡아와 굴비로 가공을 하기 때문이다.

 

영광군은 전남, 위도는 전북에 위치하지만,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두 곳의 거리는 지척이다. 과거 언젠가는 위도가 영광군에 속했던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정리해 보건데, 영광 앞바다에서 위도 주변 해역을 통틀어 칠산바다라 했을 것이다. 날씨가 사납거나 법성포로 갈 수 없을 만큼 조업이 한창일 때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위도에다가 잡은 조기를 부렸을 것이다. 이곳이 조기 파시가 열렸다는 파장금이고…. 파장금은 이제 위도에 들어가는 항구 구실만 하고 있지만, 파시가 한창이던 시절에는 30여 곳의 주막과 이동 술집, 어부, 장사꾼들이 넘쳐났다고 한다.

 

wi7.jpg » 영광 법성 포구와 굴비


옛 영화는 사라졌지만,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흗날 대리 마을에서 띠뱃놀이라는 풍어제가 벌어진다. 원래 명칭은 대리 원당제이나 1985년 위도 띠뱃놀이라는 명칭으로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띠뱃놀이를 보존하기 위해 전수관과 전시관이 지어졌고 전시관 한켠에는 띠배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애초에 풍어제는 용왕굿과 당굿이 중심이었고, 바닷가에서 용왕굿을 할 때 이 띠배를 띄워 보내기 때문에 띠뱃놀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소원을 빌기 위해 세운 집인 원당에서 굿을 하기 때문에 원당제라고도 한다.

띠배는 띠풀과 짚, 싸리나무 등을 함께 엮어 길이 3m, 폭 2m 정도의 크기로 만드는데 안에는 각종 제물과 함께 7개의 허수아비, 돗대, 닻을 만들어 달아 배 형태를 갖춘다. 놀이는 수호신을 모신 원당에 올라가 제물을 차리고 굿을 한 후 마을로 내려와 바닷가에서 용왕굿을 함으로써, 굿의 공간이 산과 마을, 바다로 이어진다. 띠뱃놀이는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으니 언젠가 칠산 앞바다에 조기떼가 다시 몰려올 날이 있을 게다.

위도는 서해안의 여느 섬 같지 않은 절경을 자랑한다. 예부터 위도 8경이 시로 읊어져 왔는데, 위도의 절경이 그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외에도 부안 채석강은 저리가라 할 만큼 아름다운 용멀(용머리)이라 부르는 해안 절벽을 비롯해 곳곳에 기암절벽이 펼쳐진다. 방사능폐기장 예정지와 가까운 깊은금 해안에 깔린 납작한 콩돌은 파도가 쓸고 지나갈 때마다 시원한 소리를 낸다.

 

wi12.jpg » 용멀 해안의 대규모 퇴적층. 격포해안 퇴적층의 연장으로서 공룡시대 호수 바닥에 쌓은 퇴적물이 돌로 굳은 흔적이다.

 

wi13.jpg

필자가 위도의 풍광과 사연이 새삼스런 이유는 최근 위도 앞바다에 수산자원을 조성하는 사업과 맞물려 자주 방문하며 섬을 돌아볼 기회가 많았던 탓이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바다는 수산자원이 고갈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수산물 소비가 늘고 바다를 휴식과 레저의 공간으로 찾는 이들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시민들의 요구는 자원 보존적 관리에서 적극적 자원조성으로 개념의 이동이 일어났다. 2012년부터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서해지사(지사장 조강현)와 부안군(담당 김호중, 이호성)이 함께 하는 위도 연안 바다목장 조성사업은 그 첫걸음이다.

 

wi8.jpg » 위도 연안 바다목장 해역

 

대리 강대식 선장과 함께 수산생물 모니터링을 한 결과, 쥐노래미, 조피볼락, 붕장어, 양태, 보구치, 꽃게, 홍어, 참돔, 박대, 농어 등 유영생물과, 홍합, 피뿔고둥, 해삼 등의 저서생물들이 다양하게 서식하는 곳으로 나타났다.


wi9.jpg » 대리 강대식 선장의 자망 그물질

 

위도는 홍길동전에 나오는 율도국이 세워졌던 곳, 1993년 10월 10일 서해페리호 침몰사건이 난 곳, 2003년 위도 방폐장 반대 시위 등 과거와 현대사에 시련이 많았던 곳이다. 이제 이곳에 수산자원을 조성하고 생태관광을 발굴하여 다시금 파시가 형성되고 율도국과 같은 이상향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wi10.jpg » 바다목장 해역 자망(왼쪽 위)과 통발(오른쪽 위) 조업에 의한 자망 어획물(왼쪽 아래)과 통발 어획물(오른쪽 아래)


wi11.jpg » 바다목장 해역 잠수 조사(위)와 저서생물(아래)

 

글·사진 황선도/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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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어류학 박사
고등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어류생태학자.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에서 자원조성 업무를 맡고 있다. 뱀장어, 강하구 보전,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수산자원 회복 등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 sanisdhw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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