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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고-국정원, 이렇게 개혁하자⑦] 박근용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17.12.04 15:28l최종 업데이트 17.12.04 17:51l
현재 국정원개혁발전위에 의한 국정원 적폐 청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적폐청산은 국정원 개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다만 그것만으로 국정원 개혁이 완성될 수는 없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국정원 9대 적폐 사건 집중분석'에 이어 국정원감시네트워크와 함께 가장 중요한 '국정원 8대 개혁과제'를 제시한다. 국정원감시네트워크에는 민들레-국가폭력피해자와 함께 하는 사람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 한국진보연대가 참여하고 있다. [편집자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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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장감 흐르는 국정원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서류조작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지난 2014년 4월 15일 오전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한 관계자가 출입문을 지나고 있다. |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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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을 지난달 29일 발표했다. 범죄수사권을 내려놓겠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간첩이나 국가보안법 위반자에 대해 수사할 수 있는 권한, '대공 범죄수사권'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보기관의 임무에 집중하기로 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국정원이 내놓은 개혁안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는 '집행통제 심의위원회'다. 특수사업비 등 예산집행의 투명성 제고와 내부통제를 위해 '집행통제 심의위원회'를 설치하여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감독과 통제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국정원이다. 그동안 국정원이 이런 비판에 대해 내놓은 입장은 '국정원의 활동은 비밀에 부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국정원이 예산집행 분야에 한정하기는 했지만, 감독과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점은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국정원의 내부통제기구,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런데 문제는 '통제'를 누가 하느냐이다. 유감스럽게도 국정원이 밝힌 '집행통제 심의위원회'는 국정원장이 좌우할 내부통제 방안에 그친다.
국정원에는 지금도 내부통제기구가 있다. 바로 '감찰실'이다. 국정원의 감찰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지만, 내부자들은 국정원의 감찰은 지독하다고 종종 말한다. 감찰을 받다가 자살을 하거나 괴로워서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이들이 있다고 말하는 내부자들도 있다.
문제는 그 내부통제기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운영되지 않고, 국정원 지휘부의 의중에 따라 이리저리 왜곡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그동안 내부감찰 기능이 없어서 국정원에서 불법행위를 했는가? 특수활동비를 엉뚱한 데 쓰고 뇌물로 바쳤는가? 아니다.
'집행통제 심의위원회'의 구성방법과 운영규정은 국정원장에게 맡긴다는 게 국정원의 제안이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고 했다. 내부통제기관의 핵심마저 국정원장이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름에서도 강력한 조사기관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심의위원회'인 만큼 제출된 자료를 검토하는 기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내부통제 기구를 하나 더 만들고, 또 잘 운영하겠다는 다짐을 '거짓말'이라고 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국정원 정치개입과 불법행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지금의 '서훈 국정원장'과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이 영원히 국정원장과 대통령인 것은 아니다. 국정원장과 대통령은 시간이 지나면 바뀐다. 따라서 지휘부와 국정원에 대한 최고책임자의 '선한 의지'에 매달려 있을 수 없다.
정보기관에 대한 외부통제는 국제적 모범 관행
그래서 외국에서도 정보기관에 대한 외부통제시스템 마련을 각별히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2010년 5월에 발표된 유엔 보고서 <테러리즘 반대와 관련하여, 정보기관이 감독을 포함하여 인권존중을 보장하는 법적·제도적 틀에 대한 모범 관행 모음>에서 소개하는 국제관행 6번은 다음과 같다.
"정보기관은 내부, 행정, 국회, 사법 및 전문화된 감독기관의 감독을 받으며, 이들의 권한과 권력은 공법에 기반한다. 효과적인 정보 감독 시스템에는 정보기관과 행정부와는 관계없는 민간 기관이 최소한 하나는 포함된다."
이것은 제안이 아니라, 모범적 관행, 그러니까 이미 시행되고 있는 일반적 현황을 말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CIA(중앙정보국)를 감찰하는 기관인 CIA감찰관(Inspector General)이다.
미국 중앙정보국 감찰담당자도 초기에는 CIA 국장이 임명했다. 우리로 따지면 국정원장이 감찰실장을 임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독립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어 1989년부터 CIA감찰관 제도가 마련되었다. CIA에 소속되고 CIA 국장에게 보고하지만,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이 확정하는 자가 감찰관이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해임도 대통령만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감찰관은 조사 결과와 권고 사항을 CIA국장에게만 알리는 것이 아니라, 미국 의회 정보위원회에도 신속히 알려야 한다. 종합해보면 정보기관의 감찰관이지만, 그 정보기관의 책임자(CIA국장)의 부하가 아닌 셈이다.
내각제 국가인 캐나다에도 비슷한 외부감독기관이 있다. 캐나다 정보보안기관감찰실 OIG-CSIS(Office of the Inspector General of the Canadian Security Intelligence Service)은 내각이 지명하고 공공안전부 소속이라고 한다. 캐나다 보안정보심의위원회는 캐나다 정보보안기관의 통제하에 있는 어떤 정보에도 접근할 권한을 부여받고 있으며, 위원회에 제기된 민원에 대한 조사도 직무 범위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와는 정부 체계가 좀 다르니 단순비교하기가 어렵지만, 우리의 감사원 소속 정보기관 감찰 책임자가 국정원의 모든 활동을 감독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감사원에는 국정원 감찰 책임자가 있지도 않고 설령 감찰을 하려 해도 국정원에서 자료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역할도 못 하고 있다.
지난 2015년에 국정원의 RCS를 이용한 불법 해킹사찰 의혹 사건 당시 황찬현 감사원장은 당시 야당 국회의원들이 국정원에 대한 감사를 요구하자, 국정원에서 자료제출을 안 하므로 감사를 실시하기가 어렵다고 답변한 바 있다.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감독기관 또는 정보감찰관 도입
우리나라에서도 국정원 또는 국정원장으로부터 독립적인 감독기관 또는 통제기관은 꾸준히 제안된 바 있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정원감시네트워크에서는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의 정보기관 감독전문기구를 제안한 바 있다.
이 기관의 구성원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민간인이다. 국회 정보위원회 산하에 정보 및 인권 분야 전문가로 구성한 감독기구를 설치해 의원들로 구성된 정보위원회의 감독 기능을 강력히 뒷받침하자는 것이다.
이 기구는 국회 정보위원회의 요청을 받아 국정원에 대한 감독과 조사를 한 후 국회에 보고한다. 물론 정당한 조사를 위해서는 국정원의 자료와 시설에 모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비밀엄수 의무는 당연하다.
이런 유형의 의회 소속 정보기관 전문감독기구와 달리 행정부 소속 정보기관 전문감독기관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하는 정보감찰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미국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방안은 시민단체들뿐만 아니라 지금의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일찍이 제안한 적이 있다.
2006년 3월에 한나라당 소속 정형근 의원 등 19인이 '국가정보활동기본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정보기관 및 관계기관의 정책 및 활동에 대한 감찰·조사, 정보역량의 효율적 배분, 통합정보체계구축에 대한 감독을 위하여 대통령 소속하에 3년 단임의 정보감찰관을 두도록 하고, 국회의 인사청문을 거치도록 하며, 정보감찰관은 그 권한에 속하는 업무를 독립하여 수행하며 대통령과 국회에 대해서만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당시 발의했던 의원들이 진심을 가지고 제안했는지 의심되지만, 지금에서라도 도입할 만한 좋은 제안이었다.
이런 외부감독 또는 통제기관에는 다음과 같은 역할을 맡길 수 있다. ▲ 국정원의 활동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법 사항에 대한 조사 ▲ 국정원의 운영 개선에 관한 사항 조사 ▲ 국회 또는 국회 정보위원회가 요청한 구체적 사항 등에 대한 조사와 감사 ▲ 국정원으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의 진정 또는 일정한 요건을 갖춘 국민의 감사(감찰)청구에 따른 조사 활동을 맡긴다.
그리고 정기 감독보고서를 국회 정보위원회와 대통령에게 제출하고, 현안이 발생했거나 조사를 요청받았을 경우에는 수시 감독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한다. 자료나 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은 비밀엄수 의무와 함께 전면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개혁의 큰 기준점, 셀프조사와 감찰에서 벗어나기
이런 방안을 국정원 스스로 수용할 가능성은 없다. 그래서 국정원은 내부통제부서, 그것도 예산집행 부문에 한정된 기구이고, 조사기관도 아닌 '심의'기관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 물론 이것도 어디냐,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개혁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법적 권한 내에서 활동하는지, 조금이라도 의심나는 점이 있다면 국정원 자체 조사가 아닌 독립적인 조직에서 철저하게 조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 수사권을 없애 정보수집 기관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수집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를 외국과 연계된 국가안보 침해 정보로 제한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동안 국정원은 외부 감독의 사각지대에 있었기에 법에서 금지한 활동을 감행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제 국정원을 '셀프조사'와 감찰에 맡겨두지 말자. 이것을 국정원 개혁의 가장 큰 기준점으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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