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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번역] "아키히토, 퇴임 전 사과하시길"

[전문번역] 아키히토 일왕에게 보내는 편지
 
2019.04.29 08:00:28
 

 

 

 

지난 2016년 생전 퇴위 의향을 밝혔던 아키히토(明仁.86) 일왕이 오는 30일 물러나고 나루히토(德仁. 59) 왕세자가 5월 1일 제126대 일왕으로 즉위한다. 이에 따라 30년간 계속된 '헤이세이'(平成·현재 일본의 연호) 시대가 저물고 일본은 '레이와'(令和) 시대를 맞게 된다.

일본에서 일왕은 신격화된 존재다. 하지만 제2차 세계전쟁 당시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가의 상징으로서의 책임도 있다. 아키히토 일왕은 1933년생으로 제2차세계대전 당시 전쟁범죄의 수뇌 역할을 한 일왕 히로히토(裕仁·1901~1989)의 아들이다.

아키히토와 1960년생인 나루히토 일왕 부자는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 대국화를 위해 평화헌법을 무력화시키려는 아베 신조 총리 등 현재 일본의 수뇌부의 움직임 속에 평화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보여왔다. 

그러나 전범국가의 상징으로서 선왕 히로히토가 전쟁의 희생자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고 사망한 원죄로 일본 왕실의 역할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에 미국의 각본가이자 프로듀서인 애덤 조너스 호로위츠는 아키히토 일왕이 퇴임에 앞서 선왕을 대신해 전쟁범죄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할 것을 편지 형식으로 촉구했다. 그것만이 왕실의 앞날과 일본 정부의 잘못된 언행을 막는 길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미국의 온라인매체 <카운터펀치>에 지난 24일 게재된 이 글의 전문 번역(☞원문보기)이다. 편집자
 

▲ 4월30일 퇴임하는 아키히토(오른쪽) 일왕과 5월1일 즉위하는 나루히토 왕세자. ⓒEPA=연합


일왕에게 보내는 편지 

아키히토 일왕이 퇴임한다. 대중적인 인기와 권위를 갖고 있는 아키히토 일왕이 이달말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일본 현대사에서 자진 퇴위한 일왕은 처음이다. 

일왕은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의 직계 후손이라는 신성한 존재라는 2600년된 일본 신화를 배경으로 하는 막중한 지위다. 물론 신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아키히토의 선왕 히로히토는 미국 점령군 사령관의 직접적인 명령으로 1946년 1월1일 스스로 신성을 포기했다. 히로히토는 왕의 지위를 유지했지만, 의문은 남았다. 일개 미국의 장군이 일왕의 신성을 제거할 수 있는가? 

또다른 의문들이 아키히토를 괴롭히고 있다. 아키히토는 히로히토를 대신해 전쟁 희생자들에 대해 사과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일본군은 히로히토의 명령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3500만 명을 살해했다. 

일본 제국군은 10여개의 나라를 침략해 학살과 다름없는 국제적인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난징 학살, 진주만 공습, 바탄의 죽음의 행진(필리핀 바탄 지역 필리핀 포로 학살), 마닐라 강간(1945년 2월, 28일에 걸쳐 10만 명 이상이 참혹하게 살해됐다) 등 역사적 이름까지 붙여진 범죄들을 저질렀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생물학적 전쟁공장으로 만주에서 운영된 731 부대는 인간을 실험동물 삼아 고문하고 살해하고, 중국 수십개 도시에 전염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제조하고 퍼트렸다. 

일본 국민과 군부에 대해 일왕이 행사하는 불가사의하고 실질적인 권력은 전쟁 말기에 더욱 극단적이 되었다. 패배에 직면하자 일본군은 아시아 전투지역에서 옥쇄를 명령했다. 일본 공군은 일왕을 위해 미군 전함에 비행기를 충돌시키는 자살공격을 감행할 조종사들을 파견했다. 

항복 이후에도 히로히토는 숭배의 대상으로 권력과 인기를 유지했다. 그의 전쟁 책임은 망각되고 사실상 면죄됐다. 미국의 설계에 따라 정교하고 허구의 신화가 만들어졌다. 히로히토는 자신의 의지와 달리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통제되고 이용당한 평화주의자라는 것이다. 히로히토가 사망한 후 국제학계에 의해 이런 신화는 허구로 드러났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부분의 일본인은 아키히토에게 선왕의 죄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를 불경스러운 도발로 간주한다. 

하지만 가증스럽고 처벌받지 않은 전쟁범죄에 대한 아주 간략한 역사만 보더라도, 이에 대한 사죄를 요구하는 것이 그렇게 불경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전쟁에서 생존한 희생자들에게 아키히토가 퇴임 전 사과를 하는 것은, 수십년 동안 지속된 왜곡과 은폐를 바로잡는 적절하고 마땅하고 필요한 행위다. 생존자들은 이런 사죄를 받을 권리가 있다. 

올해 아흔살이 된 이용수 씨는 이른바 '위안부' 출신으로 일본군의 공창으로 끌려갔다. 일본의 일으킨 제국주의 전쟁 시기에 일본군에게 끌려간 20만 명으로 추산되는 젊은 여성들 중 한 명이다.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이들은 하루에 50명에 달하는 군인을 상대해야 했다. 일부는 이런 상황을 몇 년이나 겪어야 했다. 그들중 90% 이상이 억류된 채 사망했다.

나는 이용수 씨를 한국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나는 일본군이 이름붙인 '위안부'가 아니다. 나는 조선의 소중한 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왕은 무릎을 꿇고 사죄해야 한다"고 쓰인 명함을 건넸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용수 할머니는 전세계 여성 인권 옹호자와 일반 시민에게 영감을 주는 활동가이자 영웅이다. 나는 서울에 있는 일본 대사관 앞에 수천 명이 모인 집회에 참석한 할머니를 만났고,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 건립에 앞장서는 과정을 영상으로 찍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미국 의회에서 증언했다.도쿄에서는 일본 외교부를 찾아가 사죄할 것을 요구하고, 아키히토가 있는 왕궁 앞에서 항의를 했다. 

이용수 할머니에게 자신이 죽기 전에 일본 정부와 일왕이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그들로부터 사과를 받아내는 것은 가장 중요한 마지막 소원 중 하나다.

국제적인 정의를 추구하는 세계적인 노력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한 즉시 시작됐다. 연합국은 전범재판소를 여러 곳에 동시에 설치하고 생존한 독일과 일본 지도자들을 공격적인 전쟁, 인종청소, 학살 등 '반인류 범죄'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도쿄 전범재판에서 히로히토는 미 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어떠한 조사나 처벌도 받지 않도록 보호받았다. 그는 기소, 처벌도 받지 않고 1989년 사망할 때까지 이후 45년 동안 일본 왕실의 최고 어른으로 존경받았다. 

'일왕 구하기'는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협상의 핵심이자 토대였다. 미국은 히로히토를 일왕으로 보호하고 지위를 유지시켜주는 대가로 그가 항복할 뿐 아니라, 전후 일본의 평화로운 점령을 보장하기 위해 미국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겠다는 조건을 받아들였다. 

다른 한편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은 히로히토에게 미국에 항복할 공적인 명분과 체면을 지키는 훌륭한 구실을 제공했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될 때 사실상 일본의 거의 모든 도시는 미국의 재래식 무기의 폭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잿더미가 됐지만 아키히토는 항복을 선언하지 않았다.  1945년 8월 8일 소련이 대일 선전포고를 할 때까지 히로히토는 항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소련의 침공에 저항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원폭 투하를 이유로 미국에게 항복하는 것만이 아키히토가 체면을 잃지 않고 전쟁을 끝내고, 살아남고, 왕실의 최고 지위를 유지할 방도였다.  

수많은 전쟁 희생자들과 모든 국가에게 사실상 정의를 부정한 것이라는 냉소를 받는 방안이었지만, 전쟁을 중단하고 황폐해진 일본을 재건하는 길을 열었다. 

미국에게는 히로히토와 다른 전쟁 지도자들을 볼모로 삼아 새로운 냉전 시기 일본에 항구적인 군사기지를 배치할 수 있는 권리도 안겨주었다. 

일종의 악마와의 거래로서 일본의 문화와 정치적 책임, 전쟁범죄에 대한 인식을 불구로 만들어버린 부작용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일왕이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이 없다면, 일본인 누구도 책임이 없는 것이 된다. 

아베 신조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은 어떠한 전쟁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선언했다. 그는 도쿄 전범재판은 복수에 불과했으며, '승자의 정의'로 치부했다.  아베 등 일본 정치인들은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생존자들을 거짓말쟁이, 창녀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일본에서 일왕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여전히 금기로 되어 있다. 무례한 행위, 심하면 일왕을 살아있는 신으로 여기는 이들에게는 신성모독으로 간주된다.

일본에서 히로히토가 전쟁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상당한 문서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혹을 언급하는 것은 더욱 심각한 금기다. 이런 의혹을 거론한 많은 언론인과 정치인들은 일본 우익 인사들로부터 살해와 폭력 위협을 받아왔다. 

히로히토와 아키히토 일왕 부자는 전쟁으로 인한 고통에 대해 짧지만 드물게 '유감'을 표현했다. 하지만 희생자들에게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사과를 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 관료들도 마찬가지다. 

아키히토가 이달말 사퇴 직전 그가 선왕 대신 이용수 할머니 등 희생자들의 고통에 대해 책임을 지고 진정한 사과를 하는 선례를 남기기를 바란다. 

나는 이 편지를 빌려 일본인에게 사과를 한다는 것을 일왕에게 밝힌다. 나의 아버지는 태평양 전쟁 시기에 미 공군 B-29 폭격기 조종사로 복무했다. 아키히토 일왕과 일본 국민에게 이 자리를 빌려 일본과의 전쟁 속에 미국이 고통을 준 행위에서 나의 아버지가 했을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  

또한 기소가 되었어야 마땅한 일본의 전범들에게 미국 정부가 면죄부를 줌으로써 '범죄 비호자' 역할을 한 것에 대해, 미국의 시민으로서 사과한다.  

전후 일본의 평화로운 점령을 위해 일왕을 유용한 꼭두각시로 활용하기로 한 실용적인 결정을 용서할 수 있다고 해도, 세계 시민으로서 우리는 히로히토를 일본의 왕으로 유지시켜준 결정에 대해 용서해서는 안된다. 

최소한 히로히토는 전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일본 국민과 전세계에 정의를 바로 세우는 교훈으로서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최초의 일왕이 되었어야 한다. 

히로히토가 전쟁범죄에 대해 일정한 책임을 지고 사과를 했다면, 아키히토가 퇴임에 앞서 사과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히로히토가 온당한 책임을 지고 사과했다면, 일본 정부가 전쟁범죄를 부인하고, 아베 신조 총리가 전쟁 희생자들을 모욕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라도 사과하는 것이 체면을 잃는 것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고 일왕 아키히토에게 말하고 싶다. 전쟁범죄에 대해 사과를 하는 것은 체면을 세우고, 책임감과 품위, 용기를 보여줘 태평양전쟁의 희생자들뿐 아니라 전세계에 평화를 가져오는 사례가 될 것이다.

 

이승선 기자 editor2@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2001년 입사해 주로 경제와 국제 분야를 넘나들며 일해왔습니다. 현재 기획1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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