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군사정부에 의해 신속한 주택공급을 목적으로 한 택지개발제도가 도입되었다. 논·밭·임야 상태의 사유토지를 국가가 반강제로 수용한 후, 세금과 행정력을 투입해서 주거용 시가지로 개발하고 이를 매입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매각하는 방식이다. 즉 '주택보급'을 명분으로 국가가 땅을 되파는 시스템을 40년 넘게 이어왔다.
이렇게 되면 분양받은 주택의 땅값은 계속 상승하게 되어 있다. 인구가 몰려 살게 되므로 세금이 투입된 인프라가 분양된 택지지역에 집중되고 각종 공공기능과 편익기능도 집중될 수밖에 없다.
아파트값이 오르는 것은 아파트가 깔고 있는 땅값이 오르는 것이고, 분양받은 사람의 자산가치는 상승한다. 가령 분당은 입주 시에 비해 10배나 올랐다. '판교 로또'라는 말처럼 전국민을 상대로 하는 로또판이 벌여져온 것이다. 서울대도시권은 그 정도가 심하다.
싱가폴의 경우 : 수용한 토지는 국유, 개인은 건물만 소유
하지만 우리 택지개발방식의 원조격인 싱가폴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싱가폴은 1960년대 초 독립 당시 국유지가 40%대에 불과했지만 토지수용을 통한 택지개발을 하면서 90%수준까지 국유지를 늘렸다. 수용에 의해 개발한 토지는 모두 국유로 돌리고 개인에게는 임대만 해줬다. 개인은 그 위에 지은 주거용 건물을 소유한다(HDB). 주택이라는 이름의 건물은 개인이 갖도록 하지만 토지는 국유상태 그대로이다. 여기에 포인트가 있다.
이런 방식으로 주택을 공급하니 땅값 상승에 의한 불로소득은 발생하지 않고, 80%가 넘는 국민은 저렴한 값으로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내 집을 마련했다. 물론 민간이 자유롭게 거래하는 토지사유 주택시장도 있다. 비율은 크지 않지만 그런 주택은 비싸게 거래된다고 한다. 자유시장경제도 존중되고 있다.
원래 우리 헌법도 개인 땅을 함부로 수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공공 필요'에 의해서만 사유재산을 수용할 수 있다. 헌법 제23조의 내용이다.
①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
②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③ 공공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공공 필요'가 등장한다. 그리고 헌법 제122조를 보면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분양가 낮추기만으로 본질적 문제 해결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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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운동연합,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민달팽이유니온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그린벨트는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고 생태,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국토를 미래세대에 넘겨주기 위한 중요한 미래 자신이다”며 “정부는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주택 공급 확대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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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에 있어서 '공공 필요'란 무엇인가. 많은 이가 이용하는 도로·학교·공원 등 공적 시설에 필요한 땅이다. 이런 경우에만 헌법은 개인소유권을 침해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공공개발에 의한 이익은 공익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 헌법의 뜻이다.
지금까지 해온 택지개발은 이 헌법개념을 무시해왔다. 민간에게 되파는 것은 국가가 땅장사를 하는 것이다. 토지를 되파는 순간 '공공 필요'의 취지가 상실되고 헌법적 가치는 무너진다. 싱가폴과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동안 일부 시민단체에서 분양가 공개·분양가 거품빼기 운동을 벌여왔는데, 그러한 운동의 목적이 달성될 경우 혜택을 보는 자는 분양받은 자이다. 시장의 잠재가격은 이미 높은 가격에 형성되어 있으므로 분양가를 싸게 공급받으면 그 차액만큼 혜택이 더 돌아온다. 즉 분양가를 낮춘다고 본질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동안의 국가 주도의 주택공급은 '내 집 마련'이라는 슬로건 아래 국민들의 재산증식 욕망에 편승해 왔다. 과장되게 표현하면 국가가 앞장서서 국민들을 부동산 불로소득 쟁취의 공범으로 만들어 왔다고도 할 수 있다. 분양받은 능력자들을 국민 세금으로 배불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피해자는 누구인가. 분양받을 능력이 없는 계층과 상속받지 못할 미래세대다. 이들은 양극화의 희생자다.
돌이켜 보면 과거 10여년 전 수용한 토지를 팔지 않고 임대하는 정책이 정치권의 이해관계 때문에 문제가 생긴 사례(군포)가 있었다. 시행 과정에서 지구위치선정, 토지임대료 과다 책정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또 수년 전 강남지역 일부에서도 시장가격과 동떨어진 임대료와 분양가를 책정하는 바람에 블랙마켓을 형성시키는 부작용도 있었다.
최근에는 심지어 그린벨트를 해제하여 공급하는 주택조차 토지 매각을 앞세우고 있다. 또 공공임대주택이라고 이름 붙여놓고는 5년이나 10년이 지나면 거주민에게 매각(분양)을 한다. 수십년간 그린벨트라는 공익적 가치를 지켜온 우리의 선대들은 무엇인가. 허수아비인가? 부득이 '그린'이라는 가치를 훼손했다 하더라도 공공이 오랜 기간 지켜온 가치를 존중하는 해법으로 가야 하는데, 그런 곳마저도 정부가 앞장서서 땅장사를 하고 있다. 공공철학의 부재다.
국가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 국가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는 문제가 생긴다. 공자 말씀이 군사와 식량과 믿음 가운데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은 믿음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국민을 부동산 양극화의 공범으로 몰고 가는 정책을 계속 해서는 안된다.
이제 익숙함과 결별할 때가 됐다
이제 주거권은 '보편적 복지'의 대상을 넘어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 간주될 때가 왔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했다. '잠자고 쉬는 것'은 '먹고 생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헌법 제35조를 보면,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주거권이라는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표현이다.
헌법에 어긋나는 토지 수용·개발 후 매각은 지금이라도 중단해야 한다. 국가가 공공보유의 원칙을 천명한 후, 다양한 방식의 임대로 가야 복지에도 부합되고 장기적으로 남는 장사를 할 수 있다. 헌법 제122조에 들어 있는 기본개념은 땅주인에게 제한과 의무를 부과하려면 '국민 모두의'라는 공익적 가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의 개발에 의한 이익은 반드시 공익화된다는 선명성을 보여주어야 땅주인에게 협조를 강제할 수 있다. 그게 헌법적 가치다.
공공이 개발하는 택지의 경우 토지임대 후 건물 분양을 하거나, 토지임대 후 건물 임대를 하게 되는 '기본주택'이야말로 헌법상의 기본권을 존중하는 정책이다. 그런데 후자의 건물까지 임대하는 보통의 장기임대주택은 건물수명이 짧은 편이다. '내 집'이 아니므로 관리가 소홀히 되기 쉽다. 반면 전자와 같이 건물을 개인소유로 해서 자유롭게 되팔거나 공공환매가 가능하도록 해주면 내 집처럼 아껴 쓴다. 바로 싱가폴 방식의 이런 절약은 기후위기 시대의 문법도 되는 것이다.
이젠 우리나라도 헌법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실현할 국가적 능력을 갖추었다. 노숙자일지라도 안전한 거주공간을 마련해줄 수 있다면 하는 것이 옳다. 게다가 이자율이 낮은 시대여서 자금회전에 목마를 이유도 없고 임대수익률이 개발사업에 더 지배적으로 작용하는 여건이다. '익숙'과의 결별만이 남았다.
'수용한 토지는 공공이 보유한 채, 주거시설만을 임대하거나 분양하는 기본주택'이야말로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늦었지만 이런 옳은 방향의 정책을 일부 광역단체장이 추진하고자 하고 있고, 국가적 정책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이 인구절벽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확실한 비전 하나를 줄 수 있다. 통일이 되더라도 한반도의 기본적 정책이 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원영 기자는 수원대 교수, 국토미래연구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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