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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투기’ 의혹, 미흡한 법에 특수통 와도 ‘무관용 처벌’ 어렵다

강석영 기자 getout@vop.co.kr
발행 2021-03-11 20:25:50
수정 2021-03-11 20: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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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가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열린 LH 임직원 등 공직자 투기 의혹 법적평가와 제도개선방안 긴급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조수진(왼쪽부터) 민변 사무총장, 서성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 이강훈 참여연대 실행위원, 박현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 2021.03.11.
서성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가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열린 LH 임직원 등 공직자 투기 의혹 법적평가와 제도개선방안 긴급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조수진(왼쪽부터) 민변 사무총장, 서성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 이강훈 참여연대 실행위원, 박현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 2021.03.11.ⓒ뉴시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을 둘러싸고 정부와 야당의 입씨름이 치열하다. 정부는 ‘무관용 원칙’(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처벌하고 ‘패가망신’(정세균 국무총리)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국민의힘은 검찰이 수사하지 않아 ‘물타기’ 결과가 예상된다며 사퇴한 전 검찰총장까지 호명했다.

그러나 둘 다 문제의 근본 원인을 바로 보지 못 했다고 이번 의혹을 폭로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참여연대 측은 지적했다. 미공개 중요정보를 이용한 공직자 토지 투기를 막을 법 제도 자체가 미흡하다는 취지다. 법이 부실하니 날고뛰는 특수통이 수사한다고 한들 강력 처벌이 어려운 실정이다.

투기자 처벌과 이익환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반복되는 투기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이강훈 변호사(참여연대 실행위원)는 “한 해 두 해에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과거 신도시 대규모 투기를 경험하고도 한국사회는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다. 참여정부인 2003년 2기 신도시 조성 당시 투기에 가담한 공무원 27명을 포함 455명이 구속됐다. 노태우 정부 시절 1989년 1기 신도시 당시 987명이 구속됐는데 그중 131명이 공직자였다.

이 변호사는 “이번 사태는 오랫동안 축적된 한국사회 시스템의 문제”라며 “정치권이 누구에게 손가락질할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만든 법 제도가 문제라는 걸 자성하길 바란다”라고 꼬집었다. 민변·참여연대 측은 11일 ‘LH 임직원 등 공직자 투기 의혹 법적 평가와 제도 개선 방안’ 긴급토론회에서 관련 개정안을 비롯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을 조사하고 있는 정부 합동조사단이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한 11일 오후 경기도 하남시 하남교산공공주택지구 모습이 보이고 있다. 2021.03.11.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을 조사하고 있는 정부 합동조사단이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한 11일 오후 경기도 하남시 하남교산공공주택지구 모습이 보이고 있다. 2021.03.11.ⓒ뉴시스

투기의심자 처벌 어려운 이유

 

이날 정부는 1차 합동조사 결과 투기의심자 총 20명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모두 LH 소속이다. 이들을 처벌하려면 신도시로 지정될 것을 미리 알고 토지를 샀는지가 입증돼야 한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거래였는지 밝혀야 한다는 의미다.

적용될 수 있는 법률은 크게 부패방지법과 공공주택 특별법 두 가지다. 부패방지법 제7조의2(공직자의 업무상 비밀이용 금지)는 공직자가 ‘업무처리 중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본인뿐 아니라 제3자가 얻은 이익도 몰수·추징 대상이다.

공공주택 특별법 제9조 제2항은 공공주택사업에 참여한 공직자가 ‘업무처리 중 알게 된’ 주택지구 지정 관련 정보를 목적 외로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누설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문제는 ‘업무처리 중’ 신도시 지정 지구를 알게 된 경우만 처벌하도록 한정한 부분이다. 미공개 정보와 업무 관련성이 없다면, 다시 말해 투기의심자가 신도시 지정 관련 업무를 하지 않았다면 현실적으로 처벌이 어렵다.

이에 처벌 범위를 ‘미공개 중요정보’로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변·참여연대 측이 제안한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안을 보면, ▲공공주택 업무와 관련해 재직 중 얻은 재산상 이익의 취득 여부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불특정 다수가 알도록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이용할 경우 처벌하도록 했다.

처벌이 된다고 해도 솜방망이 수준이다. 공직자보다 민간인의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행위를 더 엄격하게 처벌하는 실정이다. 자본시장법상 민간인의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행위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범죄 수익의 3배 이상 5배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안은 공직자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형량을 높이되, 이득이 5억 이상 50억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징역을, 50억 원 이상이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누설만 해도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미공개 정보를 누설한 공직자만 처벌되는 것도 문제다. 현행법상 미공개 정보를 전달받아 거래한 제3자는 처벌되지 않는다. 신도시 지정 업무를 하는 공직자에게 정보를 받은 동료 직원 또는 가족들이 토지를 사들였어도 위법하지 않다는 의미다. 이에 ▲미공개 중요정보의 제3자 제공 및 이를 이용한 거래 금지 ▲미공개 중요정보를 알게 된 자의 이를 이용한 거래 금지 등이 개정안에 담겼다.

서성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가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열린 LH 임직원 등 공직자 투기 의혹 법적평가와 제도개선방안 긴급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1.03.11
서성민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가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열린 LH 임직원 등 공직자 투기 의혹 법적평가와 제도개선방안 긴급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1.03.11ⓒ뉴시스

가장 우려되는 지점으로 차명 거래가 꼽힌다. 공직자가 지인을 통해 토지를 사들였다면, 적발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날 발표된 정부의 1차 조사 대상은 공직자 본인 실명이었다. 서성민 변호사(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전수조사에서 실명 먼저 파악해야 한다. 수사가 이뤄지고 있으니 자금 흐름을 통해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변호사는 “범죄 단서가 나오지 않았는데 강제수사를 통해 모든 계좌를 추적하는 건 무리”라며 제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투기했다고 형벌로 그 이익을 몰수·추징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부동산 투기를 제한하는 법 제도는 있어도 투기 그 자체를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투자와 투기의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개발 이익이 공공에 환수되지 않는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며 과거 폐지된 토지초과이득세법 및 현행 개발이익환수제도의 대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후 처벌보다 사전 방지를 위해 상시적인 부동산 거래 신고 및 검증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이들은 강조했다. 공공주택사업 관련 공직자는 자신과 배우자, 부모·자녀 등이 관련 부동산을 취득할 경우 투기 여부 검증을 위해 2주 이내 거래 사항을 서면으로 신고해 투기 여부를 검증하자는 취지다.

미공개 정보이용만을 규제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공직자의 이해충돌 자체를 방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공직자윤리법은 재산 등록과 주식 백지 신탁 등 내용만 담겨있고 부동산은 제외됐다. 이에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해 관련 공직자와 배우자 등 명의로 부동산 취득을 제한하는 등 소유와 관련해 이해충돌이 발생하는 경우를 구체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이들은 강조했다.

이해충돌방지법 부칙에 해당 법 시행 전 토지를 매입했어도 시행 후 판매·수용 등을 통해 이익이 생긴 경우 몰수한다는 부진정 소급을 규정하면 위헌성을 피하면서도 투기 이익을 환수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장충모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권한대행이 9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안보고를 하고 있다. 2021.03.09
장충모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권한대행이 9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안보고를 하고 있다. 2021.03.09ⓒ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이번 계기로 부패와 투기 근절해야”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미공개 중요정보가 유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먼저 지적됐다. 신도시 지정 과정에서 국토부 장관과 공공주택사업주는 중앙행정기관의 장, 지자체장, 지방공사 등 관계기관과 사전 협의를 거친다. 많은 관계자가 참여하는 만큼 정보 유출을 피할 수 없고, 수사를 통해 유출자를 찾는 문제도 쉽지 않다.

이 변호사는 비밀을 지킬 수 없다면 비밀일 필요가 없게 만들자고 제안했다. 주택지구 예상지역에 몇 해 전부터 투기가 성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취득하는 토지 보상의 공시지가를 사업인정고시일과 가깝게 계산하지 말고 3년 정도 전 시점을 기준으로 정상적인 가격 상승률 등을 반영하는 방식이다. 공공주택지구의 택지를 매각하지 않고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방법도 검토해볼 수 있다. 최근 경기도의 기본주택이 이와 비슷한 취지다.

이번 투기의심자들 대부분 농지를 선매입한 만큼, 농지 투기를 막는 것도 중요하다. 이 변호사는 헌법에 기초한 경자유전의 원칙을 언급하며 “부재지주를 대폭 용인하는 농지법상 농지의 소유 제도와 비농업인의 농지 취득이 매우 완화된 것이 농지 투기를 불러일으키는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농지취득자격증명을 허위로 발급받아 투기한 경우 묘목 등에 대한 농업손실보상이 없도록 하고, 협의양도인 택지 공급 및 주택 특별공급 자격을 제한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부패와 투기를 근절해야 한다고 이들은 강조했다. 박현근 변호사(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누구에게 투자라고 보장된 것의 의미와 실체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소수만이 개발 이익을 누려왔고, 선량한 다수의 국민은 소수가 몇 번이나 회전시켜 사유화한 개발 이익을 떠받치고 있었다”라며 “이 사건을 계기로 주택 토지 시세차익에 대해 왜 공공이 철저히 개입해야 하는지, 개발 사유화를 막아야 하는지 사회적 합의 이뤄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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