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지』 작가 남정현 선생 1주기 추모제가 18일 낮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열사묘역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분지』 작가 남정현 선생 1주기 추모제가 18일 낮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열사묘역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분지』 작가 남정현 선생 1주기 추모제가 18일 낮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열사묘역에서 진행됐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12월 21일 향년 87세로 타개한 뒤, 지금까지 맹위를 떨치는 감염병으로 인해 이날 1주기 추모제도 유가족들과 고인을 기리는 이들이 모여 조심스럽게 진행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이 "우리의 자주화와 통일을 막는 세력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하는 작가의 평소 성품과도 닮아 있다"고 말한 대로 오전부터 바람은 매섭고 기온은 뚝 떨어진 날씨였다.

지난해 코로나19 와중에도 한국소설가협회, 국제PEN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한국작가회의 등 4개 문인단체가 처음으로 합동문인장을 진행한 뒤 모란공원에 안치된 고인의 묘비에는 '오늘을 가장 정직하게 그리고 용감하게 얘기하고 있는 그의 작품'에 대한 상찬이 적혀 있다.

"남정현의 문학은 결코 농담에 가까운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일깨우는 처절한 목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에는 웃음이 있다는 것이 한 특징이다. 그것이 말하자면 남정현의 삶의 여유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분명히 훗날 재평가를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을 가장 정직하게 그리고 용감하게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병욱 문학평론가가 '천부적 이야기꾼'이라는 글에서 남정현 선생에 대해 언급한 대목으로, 묘비에 새겨 있는 글귀이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추모사에서 "한국 문단사에서 '분지'를 능가하는 반미작품은 없다'고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추모사에서 "한국 문단사에서 '분지'를 능가하는 반미작품은 없다'고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임헌영 소장은 추모사에서 "한국 문단사에서 '분지'를 능가하는 반미작품은 없다"고 말했다. 

독립운동가의 아내인 홍만석의 어머니가 미군 환영식에 나갔다가 미군들로부터 강간을 당해 광증을 일으켜 죽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홍길동의 10대손인 홍만석을 잡기 위해 핵무장한 무력을 동원해 향미산을 둘러싸는 장면으로 끝이나는 '분지'는 여전히 미국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드러내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임 소장은 "작가의 1주기 추모식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작가들은 많지 않고 제일 많이 와 주신 분들은 범민련 어르신들이다. 고인도 굉장히 기뻐하실 것"이라고 했다.

이태형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은 "최고의 문학작품인 남북합의가 가장 아름답게 빛날 수 있도록 방방곡곡을 누비겠다"고 다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태형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은 "최고의 문학작품인 남북합의가 가장 아름답게 빛날 수 있도록 방방곡곡을 누비겠다"고 다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태형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은 "선생님은 필설로 외세와 그에 기생하는 사대매국을 단죄한 선구자였다"고 추모하고는 "최고의 문학작품인 남북합의가 가장 아름답게 빛날 수 있도록 방방곡곡을 누비겠다"고 다짐했다.

고인이 생전에 6.15남북공동선언을 '최고의 문학작품'이라고 하면서, 이 선언을 지키는 것이 '통일과 분단, 애국과 분단'을 가르는 시금석이라고 했던 말을 되새긴 것.

씨알의소리 전 창간편집장이자 소설가인 전덕용 사월혁명회 공동의장은 "76년 동안 이 땅이 미국의 똥땅이 되었는데, 제대로 된 말 한마디 하는 놈이 없다"며 아쉬움을 표하고는, "이 가녀린 체구의 남정현이 지금부터 55년 전에 미국놈 나가라고 했다. 젊잖게 문학적 표현으로 한 게 아니었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전덕용 사월혁명회 공동의장은 "이 가녀린 체구의 남정현이 지금부터 55년 전에 미국놈 나가라고 했다. 젊잖게 문학적 표현으로 한 게 아니었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전덕용 사월혁명회 공동의장은 "이 가녀린 체구의 남정현이 지금부터 55년 전에 미국놈 나가라고 했다. 젊잖게 문학적 표현으로 한 게 아니었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고인의 아들 돈희씨는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서 평화롭게 잘 사는 그런 사회를 자식들에게도 항상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올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고인의 아들 돈희씨는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서 평화롭게 잘 사는 그런 사회를 자식들에게도 항상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올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고인의 아들 돈희씨는 "추모제와 와주신 분들을 뵈니 아버님은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저희들과 함께 계신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셨고 워낙 다정 다감한 분이셨다. 옆에 계시는 것만 같고 보고싶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버님이 바랐던 사회는 약자와 강자가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서로의 행복을 쌓아가는 그런 모습이었다.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서 평화롭게 잘사는 그런 사회를 자식들에게도 항상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그런 날이 하루 빨리 올 수 있도록 저희들도 노력하면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박금란 시인은 지난해 영결식장에서 낭송했던 조시를 다시 소리내어 읽었다. 

"하늘을 가르던 번개 같던 그 필치로/ 세상 눈치 보며 반만 눈뜨고 망설이는/ 우리 문인들에게/ 가시는 걸음/ 편지 한통 써주시고 가세요/ 가슴 가득 넘치는 선생님의 그 사랑으로/ 우리들을 울려주시는/ 통일의 우렁찬 북소리로 가세요"라고 고인을 기렸다.

왼쪽부터 양희철, 이규재, 박희성 선생이 추모 묵상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왼쪽부터 양희철, 이규재, 박희성 선생이 추모 묵상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고인의 유가족들이 묵상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고인의 유가족들이 묵상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편, 이날 남정현 작가 1주기를 마친 일부 참가자들은 묘역 내 최백근 선생 묘소로 자리를 옮겨 '항일운동가, 민족통일운동가 수암 최백근 선생' 60주기 추모제를 약식으로 진행했다.

1961년 당시 사회당 창당준비위원회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최백근 선생은 박정희 쿠데타 세력이 혁신계를 탄압할 목적으로 제정한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1961년 6월 22일 제정)’에 의해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과 함께 그해 12월 21일 사형당했다.

그동안 경기도 구리시 교문리 소재 망우리 묘역에 있던 유해를 지난 2018년 4월 11일 모란공원 열사묘역으로 이장했다.

최백근 선생 60주기 추모제가 약식으로 진행됐다. 묘비명에는 "사람이 사람을 억압해서는 안되고 사람이 사람을 수탈해서도 안되며 갈라진 나라가 자주적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던 선생님의 깊은 높은 뜻은 이룩되고야 말 것입니다"라고 쓰여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최백근 선생 60주기 추모제가 약식으로 진행됐다. 묘비명에는 "사람이 사람을 억압해서는 안되고 사람이 사람을 수탈해서도 안되며 갈라진 나라가 자주적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던 선생님의 깊은 높은 뜻은 이룩되고야 말 것입니다"라고 쓰여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문학의 큰 별 남 정 현 선생님

박금란


어둠이 강물처럼 휘감아 흐르던
가시 돋친 동토의 벼랑에서
진달래꽃 한 아름 품에 고이 품고
불의에 항거하는 양심의 붓 창끝으로
힘차게 써내려간 소설 '분지'

여느 어머니 아버지 모두 똑같이 핏발 선
물동이 이고 흐르는 눈물 무명저고리 앞섶에 뚝뚝
철모르는 우리들에게 한 마디도 해줄 수 없는
억겁의 어머니의 한 맺힌 비밀을 받아먹고
산업전사 공돌이 공순이로 내몰렸다
'이 뒤집어져야 할 세상 망할 세상'
세상의 끝을 향해 달리는 완행열차
기적소리처럼 울리던 아버지의 통곡을
어렸을 적 안 들었던 자 누가 있겠는가

4.19를 덮친 5.16의 총칼
비수같이 민중을 향해 찔러대던
반공법의 폭압을 뚫고
벼락같이 내리쳤던
귀머거리 벙어리를 대변해
양심의 무기 소설 '분지'를 휘갈겨
싸웠다 남정현 선생님
용맹은 하늘을 찔러
하늘 붓이 되었다
문인들의 귀감이 되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차곡차곡 쌓여가는
민중의 벙어리 냉가슴 속 뜨락에
폭포 같은 생명줄 이어준
속 시원한 글 줄기 '분지'는
미군이 먹고 버린 통조림 빈 깡통
질겅질겅 노랑머리가 씹다 버린 껌 딱지
양코배기 쓰레기들이
쓰나미처럼 남녘을 뒤덮을 때
선생님은 시퍼런 날선 눈으로
양심의 붓끝으로 휙휙
쓰레기를 쓰레기라 징을 쳐서 알렸고
파괴자 미군의 손목을 꺾어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 승리의 웃음 삼천리를 울렸다

시로은 으뜸 김남주 선생님
소설로는 으뜸 남정현 선생님
새 시대 문학의 혁명적 실천
서슬 퍼렇게 배인 이슬 먹고
옥구슬 같은 혁명을 꿰어 나아갔던
벼랑을 넘나들었던 문학의 해방을
열어갔던 그 가슴속에는
뜨거운 인간사랑으로 달구어진
식지 않는 인간해방의 조약돌
우리도 그 조약돌을 품고 싶어요
참다운 문학인이고 싶어요
혁명가이고 싶어요

하늘을 가르던 번개 같던 그 필치로
세상 눈치 보며 반만 눈뜨고 망설이는
우리 문인들에게
가시는 걸음
편지 한통 써주시고 가세요
가슴 가득 넘치는 선생님의 그 사랑으로
우리들을 울려주시는
통일의 우렁찬 북소리로 가세요
민족승리의 발걸음으로 척척 가세요
당당하신 선생님의 발자국 따라
우리들도 척척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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