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아르바이트 쓰시는 사장님들, 주5일 1시간인데 3.3 떼시나요?”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서 이런 글들이 자주 보인다. 반복되는 ‘3.3’, 사업소득세 3.3%를 뜻한다. 의미를 알고 다시 글을 읽으면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직원과 관련된 글에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라니.
거꾸로 생각해보자. 사업소득세 3.3%를 떼는 대상은 누굴까. 프리랜서다. 그렇다면 사장님들이 노동자가 아닌 프리랜서를 고용한다는 말이 된다. 분식집 주방장과 카페 서빙 아르바이트생이 프리랜서라니. 여전히 이상하다.
업종 불문 전국의 사장님들이 프리랜서를 찾고 있다. 노동자를 프리랜서로 위장해 근로기준법을 빗겨나가려는 꼼수다. 개인사업자인 프리랜서는 노동자와 달리 주휴수당, 연차, 4대 보험, 퇴직금, 해고 제한 등 최소한의 노동환경을 보장받지 못한다.
일부 악덕 사장들의 일이 아니다.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노동자에게 노동자성을 빼앗는 고용 형태가 기본이다. 더는 택배/배달기사·학습지 교사·골프장 캐디 등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는 일부 업종의 문제만이 아니다.
노동자를 프리랜서로 속인, 이른바 ‘가짜 3.3’ 사업장 고발 운동을 벌이고 있는 권리찾기유니온의 정진우 사무총장을 만나 실태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가짜 3.3’ 고발 운동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고발 운동 과정에서 시작됐다. 근로기준법의 핵심 조항을 피하려고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한 사용자들을 쫓던 중, 가족 등 명의로 서류상 사업장을 여러 개로 쪼개는 것(서류 쪼개기형)보다 주된 꼼수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직원 미등록형이다. 이른바 4+α(알파)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체 직원이 7명이라면 4명까지만 4대 보험을 가입시키고 나머지 3명은 가입시키지 않는다. 4대 보험 미가입으로 노동자의 존재를 감추고 상시 근로자가 4명인 사업장으로 위장하는 식이다.
물론 ‘4대 보험 미가입자=노동자 아님’이 바로 성립되는 건 아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근로소득세, 사회보장제도 등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노동자성을 쉽게 부정해선 안 된다.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마음대로 결정할 여지가 크다는 이유다.
하지만 현실에서 위장술의 효력은 강력하다. 부당해고로 노동청이나 무료 법률센터를 찾았을 때 문제의 사업장이 위장일지라도 5인 미만으로 분류됐다면 그대로 돌려보낼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런 방법으로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일이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α(알파)는 얼마든 늘어날 수 있다. 정 사무총장은 “상담했던 한 고객센터의 경우 관리인 1명만 4대 보험 가입자였고, 전화를 받는 직원 150명은 미가입자였다”고 말했다.
“4대 보험 미가입은 노동자를 노동법 바깥으로 밀어내는 신호”라고 그는 지적했다.
하지만 4대 보험 미가입은 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드러나기 어렵다. 그래서 권리찾기유니온이 찾아낸 것이 바로 사업소득세 3.3% 원천징수다. 근로소득자(노동자)가 아닌 사업소득자(노동자 아님)로 위장하는 적극적 행위다.
사장님이 아니라면 익숙지 않은 개념이다. 우선 사업소득세는 독립된 사업으로 용역을 공급하고 얻은 소득에 대한 세금이다. 특정 사업주에게 고용된 직원이 근로의 대가로 지급받은 급여에 대해 납부하는 근로소득세와는 취지 자체가 다르다. 그런데도 근로소득세와 같은 방식으로 해당 비용을 지불한 사업주가 원천징수하여 세무서에 납부한다. 쉽게 말해 소득을 번 사업소득자가 아닌, 금액을 지급한 고용주가 대신 세금을 낸다.
예를 들어 계약금이 100만 원이라면 고용주는 사업소득세 3만3천 원을 제외한 금액을 사업소득자에게 지급한다. 세무처리는 4대 보험 등록보다 간편하다. 고용주는 3만3천 원을 모아뒀다가 일정 기간(월별 또는 6개월)마다 세무서에 납부하면 된다.
세무서에 개인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은 사업소득자가 처리할 세금은 없다. 이에 사업주가 3.3%를 뗀다는 사실조차 모르거나 자신이 3.3% 환급대상(저소득자)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3.3을 대신 받아준다’며 환급금을 조회해 국세청으로부터 환급받아주는 사이트가 흥행한 이유다.
정 사무총장은 “사이트를 통해 환급받는 세금 평균이 20여만 원이라더라. 떼인 세금이 20만 원이면 떼인 임금은 얼마일까”라고 지적했다.
권리찾기유니온은 ‘가짜 3.3’을 계약서 형식에 따라 A, B, C 형으로 나눴다.
A형:무작정형 A형의 계약서들은 막무가내다. 근로계약을 맺었지만 4대 보험 가입 대신 사업소득세를 원천징수한다. 계약서에 ‘세금은 3.3%로 적용한다’고 대놓고 끼워 넣거나 ‘4대 보험을 원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받는다. 급여를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으로 나눠 신고한다는 계약서도 있다.
처음 소개했던 글처럼 음식점·카페·숙박·노래방 등 일상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노동자들이 A형과 같은 계약을 체결한다. 3.3%의 존재를 모르고 계약을 체결하거나 알아도 채용 단계에서 거부하긴 어려운 현실이다.
B형:이상한 계약형 B형은 A형만큼 허술하진 않다. 도급·위탁·용역 계약을 맺고 사업소득세 3.3%를 원천징수한다. 하지만 계약형식만 위장했을 뿐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는 노무 환경은 똑같다. 근무·휴게 시간, 업무보고, 해고 사유 등에 따라 일을 시키면서도 계약형식과 4대 보험 미가입을 근거로 사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는 식이다. ‘일할 땐 노동자, 해고할 땐 사장님’인 격이다.
B형 계약을 맺은 노동자가 부당해고를 당했을 경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한 노동자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사업주가 계약형식을 선택했는데 입증 책임은 노동자의 몫이다.
C형:사장님 위장형 C형은 널리 알려진 택배·배달 기사,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직이다. 직원을 개인사업자로 등록시키거나 개인사업자 등록자와 노무 계약을 체결한다.
정 사무총장은 “대기업들이 계약형식뿐 아니라 전문적인 노무관리로 특수한 고용 형태를 도입했다. 이에 고용 형태가 전국적으로 표준화됐다. 직군이 한정적으로 표현되는 이유다. 법적으로 유리하도록 사 측이 근로관계 전반을 위장해 개별 대응으로는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C형은 개인사업자로 등록돼있다. 지휘·감독을 받아 일할지라도 세무법상 개인 사업을 이끄는 사장님이다. 그러나 A·B형은 사업자 등록증이 없다. 법적으로도 사장님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고용주는 무슨 명분으로 사업소득세 3.3%를 뗄까? 사업소득 원천징수 신고에서 업종 분류코드를 ‘기타 자영업’으로 입력하면 문제가 없다. 원래 바둑기사·프로야구 선수 등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계약하는 사람을 위해 만든 분류코드가 악용되고 있다.
최근 기타 자영업이 크게 늘었다고 정 사무총장은 지적했다. 2019년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기타 자영업에 300여만 명이 등록돼있다.
“A·B형은 급속도로 늘 수밖에 없다. C형은 무한 확장하기 어렵다. 해당 산업 자체가 커지지 않는 이상 정해진 틀이 있고, 노무관리에 비용이 들어 큰 기업이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규모 기업이 특별히 고용 형태를 안 바꿔도 마구잡이로 가능한 것이 3.3이다.”
“전체적으로 노동자를 노동자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게 가장 손쉽고 비용도 절감되면서 안전한 노무관리라고 여기는 것이 정석이 됐다.”
노동법 바깥의 노동자라고 하면 특수고용직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정 사무총장은 이러한 프레임을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4차 산업혁명에 의한 새로운 산업의 대두로 근로기준법 밖의 노동자가 생긴다는 건 사용자들의 프레임이다. 근로기준법이 낡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할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현행 근로기준법을 적극적으로 악용하고 있는 사업주들의 노무관리 방식이 진화하고 간편해지고 보편화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라는 표현도 문제라고 그는 지적했다. “사각지대의 정의는 거울이 사물을 비출 수 없는 각도다. 노동권 보장이 어려운 곳은 불가피하게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지대가 의도적으로 설정되고 있다. 사각지대가 아니라 ‘차별 지대’라고 해야 한다.”
소송을 통한다면 A·B형은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쉽다. 문제는 법원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분식점 주방장이 실업급여를 못 받게 됐다고 했을 때 고용주를 상대로 소송에 나설 수 있을까. 장시간 고비용의 법정 싸움을 선택할 노동자는 사실상 없다. 설령 소송에서 이겨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해도 주방장의 인생이 크게 달라질까. 다음 직장에서 또 ‘가짜 3.3’ 계약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에 권리찾기유니온과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민변 노동위원회 등이 함께하는 입법추진단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사용자 정의를 넓혀 ‘가짜 3.3’을 무력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타인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을 노동자로 추정하고, 근로계약 체결의 형식적 당사자가 아니라 근로조건에 실질적·지배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사용자로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사용자 재정의로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4대 보험 미가입자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법에 쓰여있지 않지만, 현실에선 고용주가 4대 보험 미가입을 이유로 노동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 노동자가 아니게 된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판단을 구할 수밖에 없는데, 비용과 시간뿐 아니라 노동자가 스스로 노동자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입법추진단의 근로기준법 개정안 핵심은 입증 책임 전환이다. 타인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을 노동자로 추정한 뒤, 사업주가 노동자 아님을 주장한다면 사업주에게 입증 책임이 있다는 취지다.
‘사업장 규모와 관계없이, 계약의 형식과 관계없이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을 위한 개정안이다. 정 사무총장은 “사업주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마음대로 노동자성을 빼앗을 수 있는 사회적 구조를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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