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2.01.07. 21:24:39 최종수정 2022.01.07. 21:42:22
10년만에 김종인이 실패했다. 왜 그랬을까.
김윤철 경희대 교수는 김종인 국민의힘 상임선대위원장을 "체계(시스템)의 자식"에 비유했다. '여의도 짜르'같은 그의 과거 별칭은 김종인을 계몽군주적 전근대 리더십의 상징성에 빗댄 것인데, 그를 불쾌한 존재로 여기는 '여의도 토박이'들의 감수성을 내포하고 있어 썩 입에 붙는 별칭이 아니다. '체계의 자식'이라는 비유는 그것보다 훨씬 더 현대적인데다, 한국 정당 정치의 특징과 한계를 잘 담아내고 있다고 본다.
그간 김종인이 오고 갔던 '여야'는 사실 같은 시스템 안에서 벌어지는 다툼의 세계관이다. 1992년 문민정부부터 따져보면 양당 체제는 30년간 이 땅에 뿌리를 내려 왔다. 87년 대선의 김대중, 김영삼 '양김 분열'이 92년 '양김 대립'으로 재구성된 이후 한국의 대선은 언제나 양당 체제의 무대였다. 그 과정에서 반짝했던 '제 3의 후보'나 '제 3의 정당'이라는 건 양당 체제의 정치지역인물 갈등으로 파생된 '양념'이었다. 노선으로나 이념적으로 특별했던 '제3의 정당'은 유일하게 민주노동당(과 그 후신)의 등장이었으나, 양당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양당제가 옳다 그르다 여부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2022년 대선도 완벽한 '양당 체제' 하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아직 혁신 세력과 결사체가 등장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쓴다.
김종인은 '양당 체제' 그 자체로서, 한국 정치의 '시스템'을 상징하는 독특한 인물이다. 양당 체제 '시스템' 안에서 김종인의 거취란 건 무의미하다. 실제로 그는 여당(2012년 대선의 박근혜 승리)과 야당(2016년 총선의 문재인 승리)을 오가며 결정적 흐름을 만들어왔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중도'의 신화다. 정치색과 경제 정책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의 보수 원심력이 심화될 때 김종인이 등장했고(2012년), 야당인 민주당의 진보 원심력이 심화되고 투쟁성이 강화될 때 김종인이 등장했다(2016년). 보수 정당의 보수색을 희석하고, 리버럴 정당의 진보색을 희석하는 게 그의 역할이었다. 양당 체제 시스템 속에서 좌우로 튕겨나가려 하는 후보와 정당의 멱살을 붙들고 들어와 시스템 자체의 붕괴를 막은 게 그의 역할이었다. 여야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더라도 김종인 정치는 '양당 체제'에서의 '매직 포지션', '중도'의 자리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그리 어색하게 느끼지 않는다. '배신'과 같은 낡은 정치적 감수성도 최소한 그에게 통하지 않는다. 유권자들도 이걸 잘 알고 있다.
양당 체제가 무너지지 않은 이상, 김종인은 정을 든 석공과 같다. 시스템 밖으로 돌출되면 깨트리고, 시스템 밖의 인물은 시스템 안으로 끌어 온다. 김종인 정치는 그래야 작동한다. 김종인 정치의 '영점'은 한국 정치지형에서 가장 효과적인 '득표 가능성'에 맞춰져 있고, 득표를 위한 유무형의 수단도 매우 효율적으로 사용해 왔다. 정치가들 대부분이 이를 인정한다. '승리가 예정된 곳에 김종인이 있었을 뿐'이라는 평가보다는 '양당 체제가 존재하는 한 김종인 정치는 통한다'는 명제가 더 설득력 있다.
양당 체제와 중도의 신화, 이것이 불변하는 한 김종인 정치의 본질은 이것이다. '정당을 따르지 말고 (양당) 시스템을 따르라.' 그가 정당을 넘나들며 제기했던 경제민주화는 '중도'를 상징하는 그의 정치 도구가 됐다. 실제 김종인은 2012년 11월 대선 직전에 발간한 자신의 책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에서 박근혜를 돕고 있었음에도 "경제민주화는 누가 집권하든, 집권 여당이 어느 당이 됐던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했다. 그가 곱씹는다는 "세상에 권력과 금력, 인연 등이 우리들을 둘러싸고 유혹하며 정궤(正軌)에서 일탈하도록 얼마나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는가. 만약 내 마음이 약하고 힘이 모자라서 이런 유혹들에 넘어가게 된다면 인생으로서 파멸을 의미할 뿐이다"는 자신의 조부 가인 김병로의 말에도 그의 '세계관'이 들어있다.
윤석열, 청년정치 깃발 달고 오른쪽으로 맹렬히 질주하다
30년 간 양당 체제를 상징해 왔고, 비열한 정치 술수의 틈바구니에서 지난 10년간 매우 높은 승률을 보여왔던 김종인이 이번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과 결별하며 대선 판에서 발을 뺀 것이다.
그가 '양당 체제' 안에서 진영을 바꾸든 어쨌든, 선거에 직접 뛰어들기 위해선 몇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
첫째, 문재인 정부가 정궤를 이탈했는가. 애매하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평가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 실패했을지언정, 검찰개혁에 실패하고 '조국 사태'로 상징되는 집권세력의 부패를 드러냈을지언정 대한민국 시스템을 부정하고 독재를 일삼는 수준으로 정궤를 이탈했는지 여부는 의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을 봐도 이명박 정부 말기, 박근혜 정부 말기에 여당과 야당에 뛰어들었을 수준의 징후가 보였다는 평가는 유보할 수밖에 없다.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정부가 먼저 무너뜨렸고, 국민의힘은 여전히 탄핵의 강 언저리에서 머물고 있다.
둘째, 그가 뛰어들려고 했던 정당은 '정궤'를 이탈했는가. 그렇다. 황교안 대표 체제의 자유한국당은 이념 투쟁으로 무장하고 정권 심판만을 외쳤을 뿐, 태극기 부대의 제도권 진입 시도를 용인하고, 구체제로 회귀하려는 반동적 힘을 제어하지 못했다. 총선에 뒤늦게 뛰어든 김종인은 야당의 시스템을 점검하고, 지난해 재보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절반의 전제조건을 충족한 상황에서 김종인은 또 다른 의외의 인물을 맞닥뜨리는 데 그게 윤석열이다. 김종인의 눈에 윤석열은 다듬지 않은 원석이었고, 시스템 밖의 인물이었다. 김종인이 원한 것은 간단했다. '당신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체계 안으로 들어오시게.' 윤석열의 좌충우돌이 계속되자 그는 공개적으로 '연기자'가 될 것을 주문했다. 정치인 윤석열의 존재를 '체계를 벗어나는 위협'으로 느낀 셈이다. 윤석열도 그에 호응할 생각은 있었을 것이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 그 스스로 "나는 이제 앞으로 배우만 하겠다"며 "여러분이 알아서 잘해달라"고 말한 바 있다.(2021년 7월 25일자 <데일리안> 보도) "대선 후보는 '배우' 역할만 해야지,
지금처럼 자신이 '감독'과 '배우' 역할을 다하려고 해서는 안되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고 말했던 김종인에 대한 화답이었다.
하지만 '감독'과 '배우'는 결국 결별했다. '체계' 안에 들어오는 걸 거부한 윤석열은 김종인이라는 구심점을 거부하고 양당 체계 세계관의 '나침반'을 집어던졌다. 그리고 대안으로 '청년 정치'를 내세웠다.
김종인과 결별한 다음날인 6일 그는 '변화와 쇄신'이라는 이름 당 '청년보좌역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했다. 윤석열이 청취한 청년들의 목소리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간담회를 보며 청년 정치의 민낯이 드러났다. 청년 정치를 성찰해야 한다"는 이상돈 중앙대학교 명예교수의 지적이 떠올랐다. (이날 간담회에서 '여성인 청년' 발언자는 딱 한명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두 군데를 추천한다. 하나는 에프엠코리아(펨코) 2030 남초 커뮤니티 사이트로는 제일 규모가 큰 곳이다. 거기와 청년의 꿈. 홍준표 지지자 그룹이 모여 있는 사이트다."
"3권을 틀어쥔 여당의 사실상의 독재를 벗어나고 보수를 재건을 위해서 우리 사회를 틀어쥐고 있는 민주화 세대의 구태한 잔재를 쓸어담고 세대 교체를 위한 교두보를 만드는 게 (윤석열의) 역할…민주화 세대의 잔재, 이익단체로 변질된 귀족노조와, 사상 개조 교육을 일삼고 있는 전교조, 각종 시위를 주도하는 시민단체들, 국정을 혼탁하게 만드는 사람들, 586 세대 조국으로 대표되는 이 사람들에 의한 기득권을 철폐하고 새로운 세대가 도약하게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페미니즘은 하나의 사상일 뿐이다. 페미니스트가 여성인 것도 아니고 페미니즘 정책이 여성 정책인 것도 아니다. 2030 여성 절반 이상이 페미니즘을 싫어하고 남성들은 90% 이상이 반감을 갖고 있다…(페미니즘은) 보수 정당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아니다."
이 자리에선 '이준석과 결별하지 말라'는 주문이 주를 이뤘다. 윤석열은 '청년들'의 의견을 청취한 후 대표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 의원총회에서 이준석과 포옹을 하고 화해의 제스처를 보였다. 이런 주문들에서 '윤석열의 홀로서기'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김종인 감독'으로부터 독립한 그는 오른쪽으로 맹렬히 달려가는 모양새다.
'양당제 시스템'의 상징 김종인이 사라지자, 곧바로 안철수가 주목을 받고 있다. 제 3의 대안이 아니라 양당 체제의 한 축인 국민의힘에 대한 대체재 성격이 크다. 안철수는 양당 체제를 혐오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극중주의'는 '양당 체제' 안에서 '극중'을 추구하는 일종의 파생상품이다. 2016년 총선에서 지역주의에 기대 '제3의 정치' 세력화를 꾀하다 실패했던 그는 여전히 '양당 체제' 안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진보 정치가 실종된 시대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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