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7일 서울 송파 유세에서 문재인 정부의 예산과 국가채무가 높다고 말하면서 박근혜 정권 때보다 약 700조 원을 더 썼다고 주장했는데, 이 발언은 완전히 사실과 달랐다.
윤 후보는 이날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 유세에서 “국가가 무너지고 부도나게 생겼다”며 “전 정권에 비해 전 정권 마지막 예산이 한 375조, 400조 가까이 됐다. 이 정부 마지막 예산이 600조 조금 넘는다”고 말했다.
이어 “4~5년 동안 1년에 50조씩 늘었다고 치자. 400조가 450조, 550조, 600조가 되면 그게 얼마나 늘어난 것이냐”며 “50조, 100조, 150조, 200조를 더하면 500조 가까이 된다. 그리고 국채가 한 200조 더 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럼 전 정권보다 이 정부가 한 600조에서 700조 돈을 더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후보의 말을 정리하면 이렇다. ‘박근혜 정권 마지막 예산보다 현재 문재인 정부 예산이 500조 원 늘었고, 국채는 박근혜 정권 마지막 년도 대비 200조 원이 늘었으니, 둘을 합치면 700조 원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가 700조 원 돈을 더 썼다’는 것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박근혜 정부 마지막 예산이 400조 원 정도였고, 문재인 정부 예산은 600조 가까이 된다고 한다면 약 200조 원이 늘어난 것인데, 어떻게 500조 원이 늘어났다는 주장이 나왔을까?
여기엔 황당한 수식이 결정적인 몫을 했다. 윤 후보는 1년에 50조 원씩 늘었다고 하면서 연간 증가분을 더하지 않고 누적 증가분을 더해서 실제로는 약 200조 원이 증가한 것을 500조 원 증가한 것으로 둔갑시켜버렸다. ‘50+50+50+50’이 아닌, ‘50+100+150+200’으로 계산한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마지막과 비교하면 문재인 정부 가장 최근 예산과 국채는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기획재정부 재정정보공개시스템을 보면 박근혜 정부 마지막 해인 2017년 예산(총지출 기준)은 400.5조 원이며, 2021년 예산은 558.0조 원으로, 총 157.5조 원 늘어났다. 국채는 2017년 660.2조 원에서 2021년 965.3조 원으로 305.1조 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예산 증가분과 국채 증가분을 합치면 462.6조 원이다. 윤 후보가 말하는 증가분 700조 원과는 약 240조 원 차이가 난다. 2022년 예산은 결산이 이뤄지지 않았으므로 논외다.
윤 후보의 주장에는 더욱 치명적인 문제점이 하나 더 있다. 예산 증가분과 국채 증가분을 합친 금액 만큼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 때보다 돈을 더 많이 썼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 역시 명백한 허위주장이다. 예산과 국채를 따로 쓰는 게 아니라, 국채는 예산과 연동되기 때문이다.
예산 분석 전문 기관인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황당해했다. 이 연구위원은 “전혀 성립 안 되는 중복 계산이다. 예산 자체에 부채가 포함된다”며 “내가 500조, 600조를 썼으면 600조를 쓰기 위해서 국채를 발행할 수 있고, 세수를 늘릴 수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 호도하는 재정 공포 마케팅
윤 후보는 현재 기준 예산과 국채 규모를 근거로 “국가가 무너지고 부도나게 생겼다”고 연일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은 맞는 말일까? 실상은 공포 마케팅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것에 가깝다.
이상민 연구위원은 “윤 후보는 빚이 늘어서 문제라는 말과 소상공인에게 화끈하게 지원해야 한다는 말을 동시에 하고 있지 않나”라며 “하나만 말하는 건 가능한데, 둘 다 말하는 건 맞지 않다. 국채를 비판하려면 소상공인 지원하는 걸 반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후보가 문제라고 말하는 예산과 국채가 매년 늘어나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매년 경제가 성장하고 GDP(국내총생산)와 세수가 늘어나는 만큼 사회적으로 필요한 지출도 같이 증가하는 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정 상태가 좋은지 나쁜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경상 성장률과 총수입·총지출 증가율,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등 각종 재정지표와의 비교, OECD 국가들과의 공시적 비교가 필요하다.
일단 올해 경상 성장률 예측치는 6.2%로, 최근 10년 내 가장 높다. 총수입 증가율도 13.7%로 지난 10년 간 가장 높다. 총지출 증가율은 8.3%이므로 총수입 증가율과 비교했을 때 확장 규모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없다. 반면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는 올해 기준 -2.6%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2019년 -0.3%, 2018년 -1.6%)보다는 높다.
다른 OECD 국가들의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비율을 비교해보면 OECD 국가들의 올해 평균 재정수지 비율은 -6.0%다. 미국 –9.4%, 프랑스 –4.8%, 일본 –4.0% 등 주요 선진국들이 우리나라에 비해 2~3배가량 높다. 올해 기준 우리나라의 OECD 재정건전성 순위는 11위로 비교적 상위권에 속한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작년 9월 ‘190호 브리핑’에서 “정부의 2022년 예산안은 확장적 성격을 띠고 있으나, 코로나19 이후 확장적 성격의 재정 운용 추세가 다소 꺾였다”며 “특히 높은 경상 성장률과 큰 폭의 세수 증대로 뒷받침되고 있어 정상 예산 증가율 범위를 넘지 않는다. 이에 ‘슈퍼예산’이라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는다”고 평가했다.
국채의 경우도 단순히 국채가 증가했다는 것만으로 재정 상태를 판단하기 어렵다. 국가 재정에 직접적으로 부담이 되는 건 국채 총량이 아니라 국채 이자비용이기 때문에 총지출 및 GDP 대비 국고채 이자비용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 이자비용의 증가율 등을 놓고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이명박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비교한 국고채 관련 통계에 따르면, 각 정부별 연평균 총지출 대비 국고채 이자비용은 이명박 정부 5.2%, 박근혜 정부 4.8%에 비해 문재인 정부 때 3.75%로 오히려 현저히 낮다. GDP 대비 국고채 이자비용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문재인 정부 때까지 1.0% 내외로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 국고채 이자비용 연평균 증가율의 경우도 문재인 정부 때 5.3%로, 이명박 정부 7.1%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채 비율은 OECD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채 비율은 47.3%인데, OECD 평균은 100%를 웃돈다. 일본(237%)이나 미국(108%) 등에 비해서는 현저히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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