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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령 통치 경보 ①] 박근혜 정권 몰락의 도화선 반복되나

“영치주의 지배하는 신 유신” 비판 들었던 박근혜 정부의 시행령 통치

 
 
박근혜 취임 4년인 25일 오후 17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헌법재판소를 향해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정부 시행령 통치

“법치주의”를 외치며 집권한 정권에서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른바 ‘시행령 통치’ 때문이다. 시행령은 헌법과 법률의 하위 개념으로, 국회의 영역인 헌법·법률과 다르게 시행령은 대통령의 영역이다. 하지만 시행령은 국회가 만든 법률의 취지를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게 중·고등학교 사회교과서에도 나오는 법치주의의 기본 원리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법률의 취지와 다른 시행령 개정을 통해 국가를 운영하려는 모습을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시행령 통치, 이대로 괜찮은 걸까?

① 박근혜 정권 몰락의 도화선 반복되나
② 검찰 수사권 되찾기 위한 무리수
③ 경찰국 설치로, 31년 전으로 회귀?
④ “국회법 개정 등 사전·사후적 통제방안 마련해야”

 박근혜 정부의 몰락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정권이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도화선은 여권의 분열이 시작된 이른바 ‘시행령 통치’였다.

 

시행령(대통령령)은 어떤 법률을 시행하는 데 필요한 상세한 세부 규정이다. 박근혜 정부는 국회 입법과정을 생략하고 시행령 개정을 통해 손쉽게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 대표적인 예로 신문법 시행령 개정,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 그리고 비슷한 성격의 양대지침 선포 등이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 시행령과 지침은 법률의 테두리를 벗어난 위법·위헌적 성격을 보였다.

 

이는 곧 국회를 무시하는 행위로 여겨졌다. 법률 취지를 왜곡하여 법률에 근거하지 않는 시행령을 만들어 법을 집행한다면, 국회 고유의 권한인 입법권이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이는 곧 ‘삼권분립의 원칙’을 흔드는 일로도 여겨졌다. 이에,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를 일컬어 “법치주의 대신 영치주의가 지배하는 신 유신시대”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이 법률에 위배되는 명령을 할 수 있을 때는 긴급조치가 필요한 ‘국가비상사태’뿐인데, 국가 주요 정책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시행령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나온 비판이었다.

 

민주노총 김종인 부위원장(왼쪽)과 한국노총 최두환 상임부위원장이 2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노동개악 2대 행정지침 무효 양대노총 공동선언 및 국가인권위원회 의견표명과 정책권고 요구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민주노총 김종인 부위원장(왼쪽)과 한국노총 최두환 상임부위원장이 2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노동개악 2대 행정지침 무효 양대노총 공동선언 및 국가인권위원회 의견표명과 정책권고 요구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양지웅 기자

 

“위헌”으로 결론 난

박근혜 시행령 통치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신문법 시행령 개정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신문법에 위배됐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1월 3일 국무회의에서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8일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입법예고했다. 이는 인터넷신문등록제를 강화해, 취재 및 편집 인력 5인 이상 회사만 인터넷언론으로 등록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사실상 언론통폐합이라며 반발했다. 당시 한국인터넷기자협회는 최대 85%의 인터넷 언론사가 사라질 수 있다고 봤다. 이해관계자도 많고 반대도 많은 사안이었지만, ‘정부의 통보 → 시행령 개정’이라는 간단한 절차만 거쳐 확정됐다. 이 개정 시행령으로 실제 ‘미디어충청’ 등과 같은 대안언론이 폐간했다.

 

신문법 시행령 개정은 한국인터넷기자협회 등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결과, 위헌으로 판정 났다. 헌재가 시행령 개정으로 언론을 통제하려 했던 박근혜 정부의 시행령 통치에 제동을 건 것이다.

 

양대지침(저성과자 해고에 관한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관한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도 있었다. 이는 2016년 1월 22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으로, 근로기준법 위배 지침이라는 논란을 낳았다.

 

양대지침 중 하나인 ‘공정인사 지침’은 기업이 저성과자들을 뽑아 일정한 교육을 시행하고 그 뒤로도 성과가 없으면 해고할 수 있도록 한 지침이다. ‘비리를 저질렀을 때, 그리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을 때만 해고가 가능하다는 근로기준법’에 위배되는 내용이어서 논란이 됐다. 실제 이 지침이 활용되면서 기업에서는 칼바람이 불었다. 기업은 희망퇴직 거부자들을 저성과자로 분류한 후 직무역량향상교육을 받게 하고,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면서 해고했다. 현대중공업 저성과자 해고자 1호로 불렸던 배윤철 씨가 대표적 사례다.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받아야만 변경 가능한 취업규칙을 기업 마음대로 바꿀 수 있도록 한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도 모법을 위배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 같은 논란은 비교적 정부에 협조적이던 한국노총마저 등을 돌리게 했고, 양대노총의 저항을 불러왔다.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도 대표적인 박근혜 정부의 시행령 통치였다. 이는 중앙부처와의 협의조정 결과를 따르지 않을 경우 지방교부금을 삭감할 수 있다는 시행령 개정안으로, 자치단체장들의 단식투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시행령 개정안도 지방자치를 보장하는 지방자치법을 위배한다는 논란을 낳았다. 또 야당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견제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며, 지방자치를 억압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다만, 이는 서울시와 성남시가 헌법재판소에 낸 권한쟁의심판에서 “지방자치권 침해가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

 

2015년 7월 8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국회 정론관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떠나고 있다.

2015년 7월 8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국회 정론관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떠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여권 분열 부른 ‘시행령 통치’

윤석열 정부에서도 반복된다

 

국회의 고유 권한을 침해한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신 유신시대’ 행정입법은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에도 골칫거리였다.

 

국회의 권한을 침해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여당은, 대통령이 입안한 시행령을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시행령이 모법의 취지나 내용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국회 소관 상임위가 정부에 수정이나 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국회법을 개정했다. 유승민 당시 여당 원내대표가 발의한 이 국회법 개정안은 압도적인 찬성률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법 개정은 좌초됐다. 박 대통령은 유승민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라고 비난했다.

 

결국 유승민은 사퇴했고, 여권의 분열이 시작됐다.

 

그런데 정권 몰락의 도화선이 됐던 시행령 통치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현재 국민의힘 상황은 여러모로 2016년 20대 총선 전야의 새누리당과 빼닮았다. 이런 상황에서, 0.73%p의 근소한 차이로 집권한 윤석열 정부는 ‘협치’보단 손쉬워 보이는 ‘시행령 통치’를 선택했다. 시행령으로 법무부에 인사정보관리단을 설치했고, 시행령으로 경찰국 설치를 강행했으며, 시행령으로 검사의 수사 범위도 확대했다. 중대재해처벌법도 시행령으로 무력화할 것이란 말이 들려온다. 모두 위헌·위법 논란이 따르는 사안이다.

 

박근혜 정부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수라장인 여당도 시행령 통치에 동조하는 분위기라는 점이다. 다만, 보수여당이 이를 계속 동조한다고 하여,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시행령 통치가 계속 굴러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중고등학교 사회교과서에서 배우는 ‘법률에 의한 행정’ 또는 ‘법치행정의 원리’라는 말이 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정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두산백과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자주 언급하는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법치국가의 기초 원리라고 정의한다. 헌법 제75조를 보더라도, 대통령령인 시행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정한 범위 안에서 위임받은 사항에 한해 규정할 수 있다. 이 기초 원리를 무시하는 정부가 정말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부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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