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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 사망 사고 재발 방지 대책은 ‘인력 충원’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2/10/26 10:03
  • 수정일
    2022/10/26 10:0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대책위, 중간 보고서 발표…개선안으로 2인 1조·공정 개선·교대 조 확대 제시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SPC 파리바게뜨 평택공장, SPL 산재사망 사고 원인과 책임소재 규명을 위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2.10.25. ⓒ뉴시스(공동취재사진)
 
SPC 계열 제빵공장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의 원인과 재발 방지 대책을 담은 보고서가 나왔다. 이번 사고는 장시간 고강도 노동과 과도한 물량 배정 탓으로 분석됐다. 근본적인 개선안으로 인력 충원이 제시된다.

‘SPL 산재 사망 사고 대책위원회(대책위)’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고 중간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현장 노동자와 정부, 언론을 통해 조사된 정보를 토대로 작성했다.

지난 15일 오전 6시경 SPL 평택 공장에서 샌드위치 소스 배합 작업 중이던 여성 노동자 A(23) 씨가 소스 혼합기에 빨려 들어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발견 당시 혼합기에는 고추냉이 소스가 가득 차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결과 ‘질식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의 구두 소견을 경찰 등에 전달했다.

SPL은 냉동생지와 빵, 샌드위치 등 완제품을 생산해 파리바게뜨에 납품하는 회사다.

대책위는 A 씨가 높은 노동강도로 집중력이 흐려져 혼합기에 손을 짚었거나, 과도한 물량을 채우기 위해 작업 속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혼합기에 손을 넣었다가 끼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2인 1조·공정 개선·교대 조 확대, 답은 ‘인력 확충’

이번 사고 원인으로 ▲2인 1조 작업이 무시된 1인 작업 ▲생산속도를 위한 안전조치 위반 ▲안전망 부재 등 세 가지가 지목됐다.

배합 작업은 사고 위험이 높아 2명이 함께 작업해야 하지만, 현장에서는 단독으로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고 당시 A 씨는 혼자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배합 작업은 2명이 한 팀으로 일하지만, 각자 작업이 달라 분리되는 시간이 길다. 1명은 혼합기에 재료를 넣어 섞는 일을 하고, 나머지 1명은 창고에서 재료를 가져다준다. 실질적인 2인 1조가 지켜졌다면 사고 당시 비상정지를 통해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터다.

현재순 일과건강 기획국장은 “작업자 1명이 이탈하는 상황이 일상적으로 생길 수 있다는 현장 상황을 감안해 위험 작업 시 반드시 2명이 함께 작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혼합기에는 안전장치도 없었다. 회사는 뚜껑을 열면 스크루 작동이 자동으로 멈추는 자동멈춤장치(인터록)를 조합기에 설치하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자들에게 작업을 시켰다. 노동자들은 재료를 조합기에 넣고 잘 섞이는지 확인하고 덩어리가 지면 손으로 풀어줘야 해, 인터록 적용 시 물량을 채우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작업 특성을 고려해 뚜껑을 연 상태에서도 안전장치 역할을 할 수 있는 망도 없었다. 혼합기에 망을 거치하고 그 위에서 재료를 부으면 신체가 스크루에 빨려 들어가는 걸 방지할 수 있다.

안전장치 적용이 가능하도록 공정을 바꿔야 한다는 게 현 국장 지적이다. 그는 “자동멈춤장치를 부착해 덮개가 닫힌 상태 또는 안전망을 설치한 상태로 작업이 가능하도록 공정을 개선해야 한다”며 “혼합기 1개당 생산량(생산속도)을 줄여 기계적인 작업 절차를 준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거운 재료를 반복적으로 투입하는 데 따른 위험성도 문제다. 배합 작업을 할 때 넣는 재료는 1통에 15kg 정도다. 무게를 못 이겨 혼합기에 빨려 들어갈 위험이 있다. 대책위는 사고 당시 재료가 담긴 통이 혼합기 안에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투입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하기는 했지만, 고중량 작업이 위험하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현 국장은 “혼합기에 재료를 투입하는 과정에서 중량 문제로 위험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투입 작업을 할 때만이라도 2명이 동시 작업할 수 있도록 안전메뉴얼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근본적으로는 15kg에 달하는 재료 중량을 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시간 노동도 위험성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사고 발생한 샌드위치 작업은 12시간 맞교대로 이뤄진다. A 씨는 사고 당일 야간 조로, 전날 저녁 8시부터 작업을 시작해 10시간 정도 지난 시점에 사고를 당했다. 게다가 SPL은 올해에만 두 차례에 걸쳐 특별연장근로를 실시했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PL지회는 과중한 업무에 대해 인력 충원을 통한 해결을 요구해왔으나 회사 측은 무시했다.

현 국장은 “노동강도가 높아지면 육체적으로 집중력이 떨어져 실수가 더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이어 “사람은 언제든 실수를 할 수 있다”며 “안전관리는 실수가 있더라도 사고가 나지 않게 하거나, 사고가 나더라도 그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하는 것”이고 강조했다. 그는 인력을 늘려 교대 조를 2개에서 3개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가장 효과적인 안전 강화 투자는 인력 확충이라고 현 국장은 강조한다. 2인 1조 작업 개선과 공정 개선, 12시간 맞교대 개선 모두 인력 충원이 전제돼야 실현 가능하다.

SPC 그룹은 사고 발생 일주일 뒤인 지난 21일, 향후 3년간 안전관리 강화에 총 1천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SPL은 산업안전 개선을 위해 100억원을 투자한다.

현 국장은 “SPC가 발표한 1천억원 투자는 혼합기 설비 확충과 공장설비 증설, 안전 공정과 노동강도, 교대제 개선을 위한 인력 충원을 위해 투자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고진상조사가 형식적인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자와 유족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SPC 그룹은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모든 사업장에 대한 산업안전보건 진단과 안전경영위원회 설치를 약속했다.

현 국장은 “SPC가 발표한 형식적인 진단과 위원회 운영은 근본적인 재발방지책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안전보건진단 기관을 통한 진단은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상 가능한 제도로, 그 실효성에 문제제기가 돼 왔다”며 “종합적이고 시스템적인 안전관리대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사고의 직·간접적 원인을 전반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업 공정의 기술적, 관리운영적 요인뿐 아니라 업무환경적인 요인까지 진단해야 한다”며 “노동조합과 시민사회, 유족이 추천한 민간전문가가 참여하는 사고진상조사위원회 구성하여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PL 사망 사고 원인 분석 ⓒSPL 산재 사망 사고 대책위원회

허인영 회장은 실질적인 SPL 경영책임자

이번 사고와 관련한 회사 측의 법적 책임도 검토됐다.

회사 측은 산안법상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분석됐다. 현행법에는 혼합기 등 기계의 회전축에는 끼임 사고 방지를 위해 덮개를 설치하는 등 조치를 하도록 돼있다.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은 점도 법 위반 사항이다. 현장 노동자들은 매월 1회 안전교육 서명지에 서명을 했으나, 실제 교육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사업주는 생산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매 분기 6시간 이상 안전보건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위험한 작업에 대해서는 추가 교육을 해야 한다.

SPL은 소속 노동자 수가 1천명 이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 사업장 노동자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보건관리체계 수립·이행 등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중대재해법 관련 쟁점은 허영인 SPC 그룹 회장을 경영책임자로 볼 수 있느냐 여부다. 권영국 변호사(파리바게뜨 공동행동 대표)는 SPC 그룹 지배구조에 주목한다. SPC 그룹 지배구조를 보면, 허 회장이 지분 63%를 보유한 파리크라상이 다수 계열사를 지배하는 형태다. SPL은 파리크라상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권 변호사는 “SPC 그룹은 허 회장이 단독으로 지배하고 있다”며 “SPL의 최고결정권자 역시 허 회장”이라고 말했다.

서류상 SPL 경영책임자는 이 회사의 강동석 대표이사다. 다만, 회사의 대표를 판단할 때는 형식이 아니라 실질의 측면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게 권 변호사 설명이다. 그는 “이번 사고가 발생하자 허 회장이 대표로 사과했다”며 “SPL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게 누구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계 당국이 허 회장에 대한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데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앞서 최태호 노동부 산재예방감독정책관은 지난 18일, 허 회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 여부에 대해 ‘SPL이 경영상 독립된 법인이라는 점에서 SPC 그룹에 책임을 물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권 변호사는 노동부 측 발언을 두고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는 데 대해 매우 유감”이라며 “수사 기관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의 적극 수사도 촉구했다. 그는 “검찰이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강제 수사하면 허 회장이 안전보건 관련 SPL에 영향력 행사한 정황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국회가 허 회장에 대한 청문회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허 회장은 안전관리 강화에 1천억원 투자를 약속할 게 아니라, 앞에서는 사과하고 뒤에서는 노동자를 갈아 넣는 노동착취 행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의 중대재해법 무력화 시도도 반드시 막겠다”고 밝혔다.
 
허영인 SPC 그룹 회장은 지난 21일 오전 11시 서울시 서초구 SPC 그룹 본사 건물에서 SPL 평택 공장 사고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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