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불감증이 부른 참사

‘미리 준비되어 있으면 근심이 없다’는 뜻의 한자 성어 유비무환(有備無患)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지난달 29일 155명이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과거 핼러윈 때는 올해 4배 수준인 경찰 800명을 투입했다”, “참사 3일 전 ‘압사’ 경고에도 당국은 아무런 대비 안 했다” 등 책임 공방이 거세다.

윤석열 정부는 “경찰·소방 인력 배치 부족이 사고의 원인이 아니었다”며 모면을 시도하지만, 안전 대책 미비 책임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윤석열 정부에 검사 출신이 많은 탓인지 위기를 예방하고, 안전대책을 미리 세우는 법이 없다. 검찰이 주로 사건 발생 후 결과를 처벌하는 데 습관 된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윤 대통령은 매번 때늦게 사고현장에 나타나 뒷북 대책을 남발하기 일쑤다. 지난여름 ‘반지하 장마 피해’ 때도 그랬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탄식이 절로 나는 대목이다.

국민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재난을 미리 대비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민생 불감증이 부른 최악의 경제위기

재난이 닥치기 전 반드시 위험를 알리는 징조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위험 신호를 미리 감지하지 못하면 직면한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

결국, 불감증이 위기를 자초한다는 소리다. 특히 정부 책임자가 불감증에 걸리면 그의 지위만큼 피해는 더 심각해진다.

현재 우리 사회를 강타한 경제위기도 윤석열 정부의 민생 불감증에서 기인한 바 크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연속적으로 0.75%P 인상(자이언트 스텝)하면서 한국과의 금리 폭이 1.0%나 벌어졌다. 이에 한국은행은 미국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금리인상을 예고했다.

문제는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오르면 시중은행 대출금리도 따라올라, 주택을 담보로 은행에 돈을 빌린 서민들의 생계에 직격탄을 맞게 된다는 데 있다.

지난해 연 3%대던 대출금리가 최근 7%를 뚫었다. 더 큰 위기는 부동산 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조건에서 원금 상환 시기가 도래한 경우다. 집을 팔 수도 원금을 갚을 돈도 없는 가구는 파산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 자료에 의하면 올해 2분기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6%(1,869조4천억 원)로 세계 1위다. 대체로 80%를 넘으면 위험 수위에 이른 것으로 본다.

한국은행은 집을 비롯한 보유자산을 다 팔아도 부채를 갚기 어려운 ‘금융부채 고위험가구’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가구의 1.8%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최근 급격한 집값 하락으로 고위험가구 수는 전년 대비 3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가계대출 평균 금리가 연 7%로 오르면 약 190만 명(4.3%)이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그런데 11월 대출금리가 7%를 넘기고 말았다.

2008년 미국은 주택담보대출로 인한 파산 가구 규모가 7%일 때 금융위기(리먼브러더스 사태)를 맞은 바 있다.

 

기업부채 현황도 가계부채에 못지않다. 6월 말 기준 명목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116.6%로 집계됐다. 1997년 IMF외환위기 당시의 107.1%를 뛰어넘는 위험 수준이다.

게다가 한국은행의 가계부채 통계에는 빠진 빚이 있다. 영세 자영업자의 부채다.

영세 자영업자는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는 목적이 ‘사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통계상으론 가계부채에서 제외되지만, 그렇다고 기업부채로도 분류되지 않는다. 그 규모가 약 344조3천억 원으로 2021년 세수와 맞먹는다.

이처럼 민간부채(가계부채+기업부채)를 비롯해 고금리·고물가·고환율로 인해 국민은 파산 위기에 직면했는데, 윤석열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는다. 어쩌면 대책이 없는지도 모른다.

숱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레고랜드 부실 채권을 방치하다 결국 국고 50조 원을 쏟아붓고도 아직 이렇다 할 해결책을 찾지 못한 것을 보면, 윤석열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 얼마나 천박한 수준인지 알고도 남는다.

지난달 27일 윤 대통령 주재로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생중계했다. 비상회의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어떤 위기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민생 위기를 극복할 비상한 대책은커녕 80분을 자화자찬에 할애하며 너스레만 떨었다.

진짜 위기는 전쟁 불감증

윤석열 정부가 인정하든 안 하든 북한(조선)은 엄연한 핵보유국이다. 과거 북은 자신들의 핵미사일이 미국 본토까지 도달하기 때문에 미국이 감히 북침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나토(NATO)를 앞세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는 것을 본 후에는 ‘강대강’ 전략으로 선회했다.

북은 미국이 핵무기로 북을 공격할 기회만을 엿본다고 믿는다.

지난달 31일 발표한 북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도 “미국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주권국가의 ‘정권 종말’을 핵전략의 주요목표로 삼고 있다”라고 단정하곤,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이 올해에 들어와 연중 매일같이 벌려놓고 있는 대규모 전쟁연습소동으로 하여 한반도는 세계에서 군사적 긴장도수가 가장 고조된 열점으로 되었다”라고 분석했다. 여기서 추종세력이란 윤석열 정부와 일본 자위대를 일컫는다.

북은 예나 지금이나 미국을 상대로 군사 대결을 펼친다. 그들에게 윤석열 정부는 한낱 추종세력에 불과하다. 만약 전쟁이 나면 미 본토와 한국을 비롯한 인도·태평양 지역 미군 기지가 1차 타격 대상이다.

문제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이어 대만 위기를 격화하고, 한미일 군사훈련을 통해 한반도 전쟁위기를 고조하는 데 있다. 여기에 일본이 가세했다. 미국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헌법을 개정해 재무장을 통한 군국주의 부활을 시도한 것이다.

이에 지난 1일 박정천 조선로동당 비서는 담화에서  "더이상의 군사적 객기와 도발을 용납할 수는 없다"면서, "때없이 허세를 부리기 좋아하는 미국과 남조선의 책임있는 자들은 저들의 체면관리가 중요한지 자국의 안전이 더 중요한지 옳바른 선택을 해야 할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조성된 정세는 대만이든 한반도든 미국이 자그마한 불집만 튕겨도 중국과 북은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주둔한 미군기지를 향해 미사일 폭격을 가하는 첨예한 국면이다.

이런 때 윤 대통령이 ‘선제공격’이니 ‘미국 핵 전략자산 상시 배치’니 하는 위험천만한 소리를 마구 내뱉으며 전쟁 불쏘시개를 자임하고 있어 위기에 위기를 더한다.

사실 지금은 어느 편도 들지 않고 가만히만 있어도 50점은 된다. 미국의 돌격대마냥 쓸데없이 거들먹대는 것보다 이편이 훨씬 낫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