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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호평’ 전하면서 피해자 목소리 지운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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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홍보비서관실, 사흘 연속 ‘외신 보도가 짚은 의미’ 알림

    의미 짚는 대목 부각해서 전달…국내 피해자들 언급은 없어

    대통령실 해외홍보비서관실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아닌 국내 기업이 배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에 대한 ‘외신의 호평’을 연일 전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비판과 우려, 야권의 반발 등을 종합적으로 다룬 기사 중에서도 정부에 유리한 대목만을 발췌한 경우가 확인된다.

    해외홍보비서관실은 윤석열 정부가 이른바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한 이래 사흘째 대통령실 출입기자 대화방에 해외 언론의 보도 사례들을 공지하고 있다. 특히 발표 당일인 6일엔 “우리 정부의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입장 발표 이후 주요 영미권 언론들이 한국과 일본 측 발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환영 입장 등을 반영해 동 발표의 의미를 평가하는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련 사례로는 뉴욕타임스(NYT), AP, 로이터, 블룸버그, 월스트리트저널(WSJ), 파이낸셜타임스(FT), AFP 등 매체의 보도 8건이 소개됐다.

    미국 중심의 주요 영미권 언론은 한·미·일 협력 강화와 중국 견제라는 미국 중심의 실익에 초점을 두고 배상안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주요 언론의 기사들은 해외홍보비서관실의 설명처럼 ‘긍정적 의미’만을 평가하지 않았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 ⓒ연합뉴스

    일례로 6일자 블룸버그 보도(https://tinyurl.com/2p8prc5e)를 꼽을 수 있다. 해외홍보비서관실은 이 보도에 대해 “한국과 일본이 무역에서 안보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대에 악영향을 끼친 분쟁을 끝내기 위한 돌파구 마련을 시작”했고,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는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인 양국의 협력과 파트너십의 획기적인 새 장을 여는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실제 기사는 윤 정부 배상안이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비중 있게 소개하고 있다. “여전히 의회에서 과반을 차지하는 야당은 이날을 ‘수치스러운 날’로 규정하고 윤 대통령을 향해 ‘일본에 대한 굴종’이라 비난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대변하는 한 단체는 윤 대통령에 대해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외교적 성과를 위해 피해자들에게 배상이 아닌 기부금이라는 부당한 선택을 강요함으로써 그들의 인권과 존엄을 짓밟고 있다’고 했다”고 보도한 것. 이 기사는 또 로렌 리처드슨 호주국립대 국제관계학 교수를 통해 집권 정당의 성향에 따라 한국 정부의 배상안 관련 입장이 변화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같은날 해외홍보비서관실이 소개한 NYT, AP, AFP 등의 기사들도 피해자들이 ‘일본의 사과와 일본 기업의 보상 없는’ 배상안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목소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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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튿날인 7일에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됐다. 해외홍보비서관실은 “외신들은 주요 국제기구 및 미국 전문가들의 분석과 논평 등을 중심으로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며 “이들 보도에는 ‘협력과 파트너십의 새로운 장’, ‘과감한 지도력’, ‘리더십과 전략적 결단의 승리’ 등 평가가 반영돼 있다”고 했다. MSNBC, 블룸버그, 이코노미스트, 도쿄경제신문, 미국의소리(VOA) 기사들에 대한 설명이다.

    ▲이코노미스트 홈페이지 갈무리

    대통령실은 이날 이코노미스트 보도(https://tinyurl.com/24aun87f)가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합의로 수십 년 동안 양국 관계를 악화시켜온 분쟁이 종식되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를 (한일) 양국의 협력과 파트너십의 획기적인 새 장을 여는 것이라고 환영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실제 이 기사는 올해 95세인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씨 이야기로 시작된다. 기사 사진 속엔 휠체어에 앉아 ‘윤석열 정부 굴욕외교 OUT!’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에 나선 그의 모습이 담겼다. 13살 나이에 유학인 줄 알고 찾아간 일본의 미쓰비시 공장에서 월급 한 푼 없이 일해야 했던 양씨가 “내가 죽기 전에 가해자들이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것”이라는 희망을 말했다는 내용이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임재성 변호사의 목소리도 기사에 담겼다.

    이코노미스트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일본과의 더 나은 관계를 원한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64%가 일본의 추가적인 사과와 과거 잘못에 대한 조사가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라고 답했다”며 “촛불을 든 시위대는 윤 대통령의 ‘굴욕적인 친일외교’와 이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비난했다”고 했다. 이 기사는 “가장 큰 의문은 윤 대통령이 분노를 달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했는지, 분노를 부추겼는지에 대한 것”이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대통령실이 인용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환영 발언은 9개 문단으로 이뤄진 전체 기사 가운데 두 번째 문단에 등장한다. 미쓰비시 등 일본 기업의 참여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배상안을 발표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를 환영했다는 대목이다. 외신 중에서도 피해자 목소리에 집중한 보도에서 극히 일부분만을 떼어내 소개한 것이다.

    이후 해외홍보비서관실의 기사 소개는 한일관계와 미국의 관계에 집중한 미국 전문가들의 기고글을 중심으로 보도 사례를 전했다. 이른바 ‘북한 붕괴론’을 주장했던 빅터 차 미국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를 비롯해 크리스토퍼 존스톤 CSIS 일본 석좌, 수미 테리 우드로윌슨센터 국장, 맥스 부트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등의 주장 등이다.

    ▲3월6일 이후 대통령실 해외홍보비서관실의 외신 반응 설명을 인용한 주요 보도들. 사진=네이버 뉴스 검색 결과 갈무리

    그간 해외홍보비서관실은 외교활동 괸련보도를 주로 전해왔다. 특정 현안에 대해 며칠 연속 주요 보도 사례들을 소개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피해자와 야권 반발이 높은 국내 여론과 달리 배상안을 호평할 가능성이 높은 영미권 및 일본 언론의 목소리를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간 윤 대통령과 정부의 언론관 논란을 비판하는 외신에 대해 무대응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던 것과도 대비되는 지점이다.

    이런 해외홍보비서관실의 대응은 ‘주요 언론’으로 꼽히는 일부 매체의 기사화를 통해 홍보 효과를 얻었다. 강제징용 보도 사례가 배포된 직후부터 <韓정부 ‘강제징용 배상 해법’ 발표에 외신…“韓-日 관계개선 첫발”(매일경제)> <대통령실 “주요 외신, ‘한국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 첫 발’ 평가”(조선일보)> <대통령실 “주요 외신, 징용해법‘ 韓-日 관계개선 첫발 평가”(동아일보)> <尹정부 강제동원 해법에 외신 “한미일 협력 강화 위해 일본이 조치 취할 차례”(조선비즈)> <정부, 강제징용 해법에…주요 외신 “한일 협력 새로운 장 열었다”(노컷뉴스)> <외신, 윤석열 정부 강제동원 해법 호평…“일본 화답해야”(MBN)> 등의 기사가 이어진 것이다.

    외신이 피해자와 야권 반발을 조명했다고 밝힌 경우는 대통령실 설명을 고려하지 않은 개별 매체의 자체적인 외신 모니터링 기사에 그쳤다. <외신들 “강제징용 해법에 피해자들 반발” 일제히 언급(뉴시스)> <[강제징용 해법] 외신 “한일 반목 끝낼까…피해자들은 반발”(연합뉴스)> <외신 “尹, 日강제징용 3자변제 야당 거센 비판 직면”(아시아경제)> 등이다. 윤 대통령을 비롯한 대통령실 측에선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나 설득의 메시지를 내지 않고 있다.

    #대통령 #윤석열 #외신 #강제징용 #강제동원 #위안부 #해외홍보비서관실 #강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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