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밤늦게 계고장을 들고 왔고, 분향소를 강제철거하겠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았다. 경찰은 1인 시위를 위한 피켓과 추위를 견디기 위한 난로의 반입도 막았다. 이러한 대치와 실랑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필두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윤희근 경찰청장으로 대표되는 정부는 수천 명의 경찰과 공무원을 동원해 참사에 대한 추모와 애도도, 추가적인 진상규명도 원천봉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2023년 대한민국의 참혹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참사는 계속된다
2022년 10월 29일과 30일 참사로 159명의 소중한 생명이 스러졌다. 참사의 현장은 CCTV가 촘촘히 깔려있는 도심 한복판, 최고 권력기관인 대통령실과 불과 2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재난안전 관리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정부도 국가도 없었다. 참사 당시 제 역할을 방기했던 정부와 고위공직자들은 참사 직후부터 정부 책임을 부인하고 축소하기에 바빴다.
이상민 장관은 참사 직후 "경찰이나 소방을 배치했다고 막을 수 있었던 사고가 아니"라며 정부의 책임을 부인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핼러윈 축제를 "축제가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라며 지자체의 관리 책임을 애써 외면했다. 그리고 갑작스레 '국가애도기간'이 선포되었다. 영정도 위패도 없는 분향소가 세워지고, 뿔뿔이 흩어진 유가족들은 서둘러 장례를 치르게 된다.
전대미문의 참사에 온 나라와 국민들이 충격과 슬픔에 빠져있을 때 기민하게 움직인 국가조직은 정보경찰이었다. SBS가 공개한 정보경찰 내부 문건에 따르면 경찰과 정부는 참사의 책임이 정부와 윗선으로 옮겨가는 것을 막고자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애도기간 중 거의 매일 조문을 다니며 애도를 표했다. 그러나 이 참사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 아니었다.
112 녹취록이 공개되고 민심이 들끓자 대통령은 사과 대신 '격노'하며 현장에 출동한 경찰을 지목해 형사처벌을 요구한다. 본격적으로 수사가 시작되자 관련 공직자들은 책임을 벗어나기 위해 정보를 조작하거나 증거를 훼손하기 시작한다. 수사의 착수는 진상규명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현장 책임자에게 책임을 미루는 꼬리 자르기에 가까웠다. 참사는 계속되고 있다.
움직이기 시작한 유가족과 시민들
▲ 2022년 11월 12일 서울 남대문 앞에서 열린 시민추모 촛불에 참여한 시민이 핸드폰에 촛불을 켰다.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참사 한 달여 만인 지난해 11월 말 국회는 국정조사를 결정한다.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한 여야의 전격 합의였다. 참사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국회가 제 역할을 하자는 야당의 요구에 여당도 반대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여당은 예산안 처리 후부터 국정조사를 시작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45일간으로 합의된 국정조사는 예산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기약없이 연기된다. 국정조사를 막기 위해 여당이 예산안 합의를 거부한다는 의혹이 제기될 지경이었다.
자신의 가족이 어떻게, 왜 죽었는지 알고 싶은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지는 권리이다. 희생자 유가족들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도움을 받아 모임을 가지기 시작한다. 12월이 돼도 국정조사가 시작될 기약이 없자 유가족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알음알음 연락처를 구해 만난 유가족들이 100가족을 넘어섰다. 그들은 12월 3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를 구성한다. 참사 35일째 되는 날이었다.
시민들의 자발적 추모와 진상규명의 움직임도 시작된다. 국가가 책임을 부인하고 애도와 진상규명을 막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드러났기 때문이다. 추모와 진상규명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시민사회단체들은 11월 중순부터 모임을 가지기 시작했고 12월 7일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를 발족시켰다. 유가족 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녹사평역 부근 이태원광장에 분향소를 함께 차리고, 12월 16일 49재를 기점으로 공동활동을 본격 시작했다.
국정조사, 절반의 진상규명 불과
▲ 2022년 12월 7일 서울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발족식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고 국정조사가 기약없이 미뤄지자 유가족들은 국회를 찾아가 여야 원내대표들에게 국정조사 착수를 호소했다. 국회 국정조사특위는 이에 응답해 12월 19일 여당이 불참한 가운데 현장조사와 기관보고, 청문회 일정을 의결한다. 마침내 12월 21일 현장조사를 시작하고, 유가족 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현장조사와 청문회 일정에 맞춰 진상규명 과제를 제시하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행동을 이어갔다.
어렵게 시작한 국정조사였지만 현장조사와 기관보고 과정은 부실한 보고와 자료 미비, 일부 여당의원의 방해로 졸속이라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올해 1월 4일 1차 청문회가 시작되면서 국면은 바뀐다. 국민 앞에 선 공직자들의 의미있는 증언이 나오고, 이상민 장관이 재난안전법상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그러나 청문회는 두 번뿐이었고, 남은 국정조사 기간도 단 이틀뿐이었다.
유가족 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1월 5일 국회 본청 앞에서 국정조사의 연장과 충실한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1월 6일 우여곡절 끝에 국정조사 기간이 10일 연장된다. 애초 유가족이 참여하기로 한 3차 청문회 대신 재발 방지 관련 1차 공청회와 유가족이 참여하는 2차 공청회로 진행됐다. 국정조사의 맨 마지막에 가서야 유가족의 참여가 이뤄져 공식적으로 국정조사에서 증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정조사특위는 1월 17일 여당이 퇴장하고 야 3당 소속 위원들만으로 결과보고서를 채택한다. 결과보고서에는 참사가 국가책임임을 확인하고, 이상민 장관의 책임 확인과 파면 요구, 독립적 조사기구의 구성 등을 조치사항으로 담았다.
이번 국정조사는 청문회까지 진행하고 결과보고서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청문회조차 열지 못했던 세월호 참사 때와 비교된다. 행정부가 역할과 책임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그래도 유가족과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준 것은 국회였다. 절반의 진상규명, 미완의 국정조사였지만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900쪽이 넘은 결과보고서는 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소중한 디딤돌이자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다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이유
▲ 2022년 12월 16일 이태원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49일 추모제. 이종철 유가족 협의회 대표가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국회의 국정조사와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수사가 마무리되었다고 진상규명이 끝난 것일까? 아니다. 국정조사를 통해 참사의 1차 원인이 드러나고, 이상민 장관과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했지만 참사의 구조적 원인 규명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국정조사는 미완이었다.
특수본의 수사는 현장책임자인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을 구속하고 20여 명의 공직자를 재판에 넘겼지만 진짜 책임자들은 수사대상에서 제외했다. 꼬리 자르기로 마무리한 것이다. 이상민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은 입건조차 되지 않았고, 오세훈 시장을 비롯한 서울시 관계자들도 수사에서 사실상 제외되었다. 한편 국회는 이상민 장관을 재난안전관리법 위반으로 2월 8일 탄핵소추했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앞두고 있다.
사회적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의 잘잘못을 철저하게 가리고, 재발 방지대책까지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것은 참사에 책임을 져야 할 행정안전부, 경찰은 물론 행정부에 속한 검찰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태원 참사에서 대표적인 구조적 원인 규명의 과제는 다음과 같다. 이들 과제를 위해 독립 조사기구의 설치와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의 제정이 필요하다.
첫째, 왜 행안부와 경찰은 인파 밀집과 압사 위험을 일정하게 예상하고도 대비하지 않았는가? 국정조사를 통해 대비가 없었던 것은 확인했지만 그 이유는 분명하게 규명하지 못했다. 경찰이 제대로 대비하지 않은 이유가 용산 대통령실 경호 때문인지, 아니면 마약수사나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그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둘째, 왜 재난 안전관리 체계와 컨트롤타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가? 재난안전기본법 등에 따르면 국가위기관리센터와 국정상황실, 행안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등은 대규모 재난이 발생했을 때 상황 전파와 임무 조정 등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위기관리센터나 이상민 장관은 이태원 참사 직후 사실상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이 개정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컨트롤타워에 해당하는 기관의 직무유기인지 밝혀야 한다.
셋째, 경찰과 소방은 왜 구조에 실패했는가? 시민들의 긴급한 구조요청에도 경찰과 소방은 제대로 대응하지도, 구조하지도 못했다는 것이 국정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또한 참사 발생 한참 후에도 경찰과 소방이 구조와 응급이송 등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어떠한 구조적 원인이 구조의 실패를 가져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넷째, 왜 정부는 피해자들이 모이는 것을 방해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박탈했는가? 참사 직후, 정부는 유가족이 모이는 것을 사실상 적극적으로 방해했다. 왜 정부가 앞장서서 피해자의 권리를 박탈했는지, 누가 그러한 결정을 했는지 등은 국정조사와 수사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
애도의 암매장이 진영 대결 유발
▲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오전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지난달 31일 이후 엿새 연속으로 조문했다. 국가애도기간 마지막 날인 이날 조문에는 한덕수 국무총리,박진 외교부 장관, 조규홍 복지부 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대기 비서실장, 강승규 시민사회수석, 김은혜 홍보수석, 안보실2차장, 김용현 경호처장, 김일범 의전비서관, 천효정 부대변인이 함께 조문했다. 2022.11.5 ⓒ 유성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거대한 슬픔을 가져온 이태원 참사는 왜 추모와 애도가 사라지고 사회적 갈등과 진영 대결로 격화되었을까? 그 첫 번째 이유는 국가가 애도를 독점하고 유가족과 국민들이 슬퍼할 권리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추모와 애도의 암매장이다.
참사 직후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고 영정과 위패도 없이 설치된 분향소는 기괴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근조 리본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어떤 광역자치단체는 청사 4층 한구석에 분향소를 설치했다고 한다. 시민들은 강제로 주어진 일주일의 국가애도기간 이후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강요받았다.
하지만 시민들은 국가의 일방적 애도 기간 설정에 동의하지 않았다. 11월 중순 이태원에서 자발적인 추모 촛불을 켜고, 12월 녹사평에 분향소를 설치하며 추모와 애도는 비로소 사회적으로 호명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이유는 국가가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참사에 대한 책임 요구가 정부 윗선으로 번지는 것을 막고자 했다. 경찰이 작성하여 지난해 10월 31일 대통령실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정보문건에 따르면 정부와 경찰은 겉으로는 애도를 말하면서도 속은 달랐다. 이들은 주요 단체 등을 사찰하며, 정치적 부담을 줄이는 데만 골몰했다. 또한 추모와 애도의 요구, 진상규명 요구를 사실상 반정부 활동으로 규정하고 대응했다. 애도나 추도, 진상규명은 권리로 보장받지 못했다.
한편 신자유연대가 녹사평 분향소에서 연일 집회를 열고 현수막을 걸어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를 비난하고 조롱해도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한 행정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조롱과 혐오를 막기 위해 유가족들이 낸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은 집회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법원에 의해 기각되었다. 2014년 광화문광장에서 단식을 하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조롱했던 '폭식투쟁'을 연상시키는 조롱과 혐오는 올해 2월 분향소를 서울시청 앞으로 옮길 때까지 지속됐다.
세월호처럼 하지 마라?
▲ 2023년 2월 4일 이태원에서 이태원 참사 100일 추모제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들이 서울 시청광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정부·여당의 정치인 또는 이들을 지지하거나 대변하는 사람들은 유가족과 시민들에게 '세월호처럼 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세월호를 정쟁거리로 삼아 정권에 대한 반대 수단으로 삼았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이 요구한 것은 참사의 진상규명이었고, 이들을 정치적 반대자로 규정하고 국가기관을 동원해 진상규명을 방해한 자들이 바로 정권과 국가기관이었다. 세월호 진상규명이 정쟁의 대상이 되고, 진상규명 요구가 지속된 근본 이유는 당시 박근혜 정부가 행정력은 물론 경찰과 검찰, 국정원, 기무사 등 권력기관을 동원하여 진상조사기구의 활동을 방해하고 진상규명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시행령 제정을 미루고, 인력과 예산 지원을 늦췄다. 기무사와 국정원 등은 세월호 유가족을 불법사찰했고, 검·경을 동원해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한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를 탄압했다. 그러므로 '세월호처럼 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은 애도와 추모,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나선 유가족과 이들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정당들이 아니다.
세월호처럼 하지 말라.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주무장관과 해경 책임자를 경질했으며,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의 제정에 동의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의 윤석열 정부는 어떤가. 참사의 국가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책임 인정도 직접 사과도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상민 장관의 해임과 파면 요구를 외면하고 오히려 비호하고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심지어 오세훈 시장과 경찰은 분향소 설치를 원천봉쇄하고, 임시분향소의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경찰은 벌써부터 서울 시청광장에 분향소를 설치한 대책회의 관계자들에게 집시법을 위반했다며 소환장을 보내고 있다.
세월호처럼 하지 말라. 세월호 때처럼 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은 참사의 책임이 있는 윤석열 대통령, 이상민 장관과 행안부, 오세훈 시장과 서울시, 윤희근 청장과 경찰 등 국가기관 전체이다. 윤석열 정부는 박근혜의 길로 가지 말라. 유가족 등 피해자들의 최소한의 요구에 답하여 대통령이 공식 사과하고, 이상민 장관 등 책임자를 문책하고, 독립적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협조하라.
잊지 않겠다는 다짐
▲ 2023년 1월 17일 국회 본관 앞에서 유가족 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국정조사 결과보고서 채택 및 독립적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그동안 정부는 이태원 참사를 외면하고 지우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억울한 죽음과 거대한 슬픔이 외면한다고, 지우려 한다고 사라지지는 않는다. 정부는 유가족들을 뿔뿔이 흩어놓았지만 그들은 기어이 서로를 찾아내어 유가족 협의회를 출범시켰다.
추모하고 애도하고 진상을 규명해야 할 의무를 버리고 사라진 국가의 빈자리는 참사를 차마 외면하지 못한 많은 시민들이 지켰다. 시민들은 시민추모제 열고 진상규명을 외치며 때마다 유가족과 피해자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건넸고, 영정을 모신 시민분향소를 유가족과 함께 마련해냈다. 국회가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규명을 향한 디딤돌을 놓을 수 있었던 것도 시민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슬픔도 힘이 된다. 지난 시간은 슬픔과 분노, 절망을 위로와 연대, 희망으로 바꿔내는 시간이었다. 유가족과 피해자들이 깊은 슬픔 속에서 외치는 "우리를 기억해달라"는 목소리에 함께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연대해야 한다.
이제 그만 매듭짓고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이들에 맞서 '독립적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 엉킨 진실의 매듭을 함께 풀자고 말하자. "세월호의 길을 가지 말라"며 갈라치는 이들에 맞서 "정부야말로 세월호처럼 하지 말라"고 외치자. 10.29 이태원 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곁에서 함께 비를 맞자.
[관련기사] "진보 정부에서 이런 일 일어나도 똑같이 요구했겠죠"(https://omn.kr/232so)
▲ 이재근 /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진상규명 시민참여위원회 간사 ⓒ 이재근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이재근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진상규명 시민참여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습니다.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으로 활동했고, 20여 년간 참여연대에서 행정·의정·사법감시 등 권력감시 활동을 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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