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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9시간’ 청년 목소리 듣겠다”던 노동부 장관의 ‘보여주기식 소통’

청년 쓴소리 전달하려 했더니 간담회 하루 전 ‘전면 비공개’ 통보, 간담회서는 “오해”라는 말만 되풀이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2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근로시간 60여시간 연장 관련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간담회를 갖기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근로시간 연장 반대 의견을 밝히고 있다. 2023.03.24 ⓒ민중의소리
'주 최대 69시간' 노동시간 개편안에 대한 거센 반발 여론에 정부가 뒤늦게 의견 수렴 절차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보여주기식 소통'으로 흐르고 있다. 고용노동부와의 간담회에 직접 참석한 청년 노동자도 "소통이 많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등이 주로 모인 단체 '청년유니온'과 만나 1시간 20여분가량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이날 간담회는 시작 전부터 불통 논란이 터져 나왔고, 간담회 내용 역시 정부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이 장관은 간담회 참석자들에게 "언론에는 진솔하게 대화를 나눈 것으로 얘기해달라"는 당부까지 남겼다.

당초 간담회는 이 장관과 청년유니온 위원장의 모두 발언과 청년유니온이 청년 노동자들에게 받은 의견을 전달하는 순서까지 언론에 공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노동부가 간담회 하루 전 돌연 전면 비공개로 진행하겠다고 통보하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간담회 시작 30여분 전에는 '오전 회의 지연'을 이유로 면담 장소를 광화문에 위치한 정부서울청사로 변경했다가, 시간을 다소 늦춰 사전 예고한 장소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최종 정리됐다.

노동부와 소통해온 청년유니온 나현우 사무처장은 "장관 비서실 쪽인 것 같은데, (청년유니온이 취합한) 청년 노동자의 의견을 전달받는 모습은 사진 찍히고 싶지 않다며 비공개로 진행하겠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청년유니온이 이 장관에게 공개적으로 전달하려 한 청년 노동자의 의견에는 장시간 노동을 피할 수 없는 이들의 서러움과 현실을 모르는 정부 개편안에 대한 분노가 가득 담겨 있다. 지난 18일부터 5일간 15~39세 청년 노동자 222명이 응답했으며, 응답자 대부분이 작은 사업장과 같은 안정적이지 않은 일터에서 일하는 청년 노동자였다.

미디어·문화 직종에 종사하는 이은진(31) 씨는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새벽까지 일하는 날이 잦습니다. 법의 테두리가 있어도 무시하고 무리하게 업무를 강행합니다"라며 "새벽 3시에 퇴근하려는 저에게 '벌써 가냐'고 묻던 대표의 말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리도 당당합니까. 지금도 지켜지지 않는 52시간을 넘겨 더 긴 시간을 기업에 허용한다면, 정부가 나서서 이런 만행을 허용해주는 꼴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의견을 남겼다.

청년유니온 김설 위원장은 간담회 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자칫 잘못했으면 바람 맞을 뻔했다. 청년의 의견을 전달하고자 한 것뿐인데 왜 간담회를 비공개로 전환하고 간담회 장소를 여기저기 바꾸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청년의 의견을 듣고자 하는 정부의 태도가 맞는지 의심마저 든다"고 강한 유감을 표했다.

김 위원장은 "청년 노동자의 목소리를 보면, 대부분 장시간 노동이 삶을 얼마나 망가트리는지, 현행법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며 "정부는 계속 입법예고안에 대해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소통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하지만, 이 구구절절한 사연을 읽어보면 오해가 아닌 정부의 '바짝 일하고 장기간 휴가 갈 수 있는 제도'라는 주장이 허황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우여곡절 끝에 진행된 간담회도 내실 있는 내용으로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간담회 과정에서 정부의 정책이 왜곡돼 알려졌다는 취지의 해명을 주로 반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이 장관은 '노동부의 입장에 오해가 많은 것 같다, 주 69시간이 프레임으로 강하게 자리 잡은 것 같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업주가) 주 52시간 넘게 일을 시키면 불법이 되고, 처벌을 하는 게 부당하지 않느냐. 노동자도 주 52시간을 넘어서는 돈을 못 받는 문제가 부당하지 않느냐'는 점을 계속 강조했다"며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 현장 도입이 어렵다는 것은 알겠지만 바로 도입하겠다는 게 아니라 먼 방향성으로 얘기한 것이라고 이 장관이 말했다"고 부연했다.

반면, 청년유니온은 이 장관에게 "노동시간 개편안을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장시간 노동 체제인 데다가 무노조, 소규모 사업장이 많아 정부가 주장하는 노사의 자율적인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이미 공짜 야근을 조장하는 포괄임금제가 오남용되고 있으며 연차 사용이 어려운 실정도 함께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정부의 정책은 정부 주장과 달리 총 노동시간을 줄여나가는 노력과 역행하는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이 장관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노동시간 개편안의 입법 예고 기간인 내달 17일까지 이같은 소통 일정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300만여명의 조합원이 모여 있는 양대노총과의 면담 일정은 여전히 잡지 않고 있다. 이 장관은 지난 2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양대노총과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당연하다. 원래 저희의 계획은 개편안이 나오면 현장부터 국회까지, 노사 모두를 폭넓게 만날 예정이었다"며 원론적으로 답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청년유니온 근로시간 제도개편 의견 수렴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3.03.24.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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