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과 처‘가’의 이러한 불균형은 존댓말과 반말의 구분으로 이어진다. ‘새아가’에겐 반말이 붙고, ‘O서방’에겐 ‘~하시게’가 따라붙는다. 남편 형제의 서열대로 각 배우자의 서열도 결정된다. 형님(남편 형의 부인)이 나이가 어려도 존댓말을 써야하고 형님은 손아래 동서에게 반말을 쓴다. ‘처제님’이란 말을 쓰지 않는 것처럼 처‘가’쪽 호칭엔 대부분 ‘님’이 붙지 않는 반면 시‘댁’쪽 호칭엔 ‘님’이 붙거나 어울린다.
가족내 성차별의 문제는 호칭에서만 드러나지 않는다. 1978년 4월18일 경향신문 <남녀불평등 여전히 깊다>란 기사를 보면 김복길 당시 한성여대 교수의 논문 ‘한국인의 양성불평등에 관한 연구’를 인용하고 있다. 1975~1977년 서울 주요 일간지에 실린 부고 500여건을 조사한 결과, 남편이 사망했을 때 (죽어야 할 사람이 살아남았으니 죄인이라는 뜻의) 미망인으로 표기한 경우가 42.8%(334건 중 143명), 처(妻)로 표기한 경우는 불과 0.9%(3명), 아예 기재하지 않은 것은 56.23%(188건)로 나타났다. 또 유족을 기재할 때 아들만 쓴 경우가 49.9%(255건)에 달했다.
어색한 호칭이 가져온 불통
도련님, 아가씨도 그렇지만 여성이 남편의 형에게 ‘아주버님’이라고 부르거나 남편 여동생의 배우자에게 ‘서방님’이라고 하는 것은 사극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최근 결혼한 부부의 경우 서로의 형제자매, 그 배우자들과 만남에서 호칭이 어색해서 아예 대화를 걸지 않거나 호칭을 생략한 채 본론만 말하는 경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A씨는 오랫동안 연애하던 연인과 결혼했는데 이전부터 남편(남자친구) 남동생의 이름을 ‘누구야’라고 불러왔다. 그러다 결혼하면서 하루아침에 ‘도련님’이라고 불러야 했다. A씨는 “입에서 도저히 ‘도련님’이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아 호칭을 부르지 않고 명절 때만 도련님이라고 불렀는데 남편이 듣기에도 민망했는지 그냥 다 같이 이름을 부르자고 제안했다”며 “남편도 내 여동생한테 이름을 불러오다가 처제라고 하기 어색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A씨는 “남자친구의 동생이어서 이름 부르던 때와 달리 결혼 초 도련님으로 부르고 그쪽은 나한테 ‘형수, 형수’ 이렇게 하는 것 자체로 (도련님이) 조금 건방지게 변한 것 같았다”며 “결국 모두가 ‘OO씨’라고 이름 부르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A씨와 그의 남편 형제자매들 간 이름 부르기로 한 합의에 대해 시어머니의 이해도 구했다.
호칭이 어색하면 소통에 제약이 있다. 최근 결혼한 B씨는 배우자의 형제자매를 부를 때 “호칭을 쓰지 않고 그냥 할 말만 한다”며 “서로 나이대나 관심사가 비슷해서 소통은 하지만 호칭이 어색해서 부르진 않는다”고 했다. A씨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안부를 수시로 묻고 카톡을 자주하며 소통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도련님 잘지내세요’라고 통화를 시작했다면 전화하기 부담스럽지 않나”라고 했다.
비교육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가족관계상 서열로 인해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하대하는 표현을 쓰거나 그 반대의 경우를 집안 아이들이 보고 자라기 때문이다. A씨는 “아버지 세대를 보면 이제 눈치 주는 어른이 없지만 그러한 호칭에 익숙해져서 고치지 않는다”며 “집안 아이들이 보는 게 교육적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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