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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직격탄 맞은 투발루, 30년 만에 모래도 나무도 사라졌다

[사라질 위기 놓인 투발루] ① 가장 넓은 땅은 활주로, 플라스틱 1회 사용 금지

이재호 기자·외교부 공동취재단(=투발루)  |  기사입력 2023.05.15. 08:49:39

 

기후 변화로 삶의 터전이 사라지는 곳이 있다. 해수면 상승으로 모래가 없어지면서 바위만 남은 섬들이 생겨나고 있는 남태평양 투발루 이야기다.

 

투발루는 호주 인근 폴리네시아 해역에 위치해 있다. 면적은 26만 ㎢(제곱 킬로미터)로 총 9개의 섬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는 서울의 웬만한 자치구 정도 크기다.

 

세계 지도를 볼 수 있는 구글맵에서 투발루를 검색해보면 파란 바다에 투발루라는 지명만 나타난다. 그러다 화면을 확대해보면 서서히 땅이 드러나는데, 섬의 테두리에만 땅의 모습이 가늘게 나타난다. 육지 자체가 매우 적은 것이다. 

 

 

 

이런 모습을 가진 투발루에서 가장 넓은 땅은 수도 푸나푸티 국제공항의 비행기 활주로다. 활주로 길이는 약 1500미터 정도인데 이착륙하는 비행기가 없을 경우에는 이 공간이 전부 주민들에게 개방된다.

활주로 양 옆의 도로는 간선도로가 된다. 차들은 활주로 근처 도로를 통해 빠르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활주로에는 산책을 하는 사람, 배구와 럭비 등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도 많았다. 

 

또 활주로 주위에는 민가를 비롯해 농장, 가게들이 즐비했고 심지어는 투발루 국립 은행과 같은 공공시설도 위치해 있었다. 취채진이 투발루에서 머물렀던 호텔 역시 공항 터미널과 활주로 바로 옆에 있었다. 활주로가 일종의 광장이면서 투발루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곳은 활주로라는 본연의 기능도 수행해야 한다. 이에 공항 직원들은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에 활주로에 버려진 쓰레기를 비롯해 이물질을 치우는 정비 작업을 벌인다. 이후 활주로는 비행기가 도착하기 한 시간 전쯤부터 폐쇄된다.

 

▲ 투발루 푸나푸티 국제공항의 모습. 위에는 취재진이 피지에서 투발루로 타고 온 항공기. 아래는 항공기 이착륙이 종료된 이후에 개방된 활주로에서 배구를 즐기고 있는 주민들. ⓒ외교부 공동취재단(=투발루)

 

활주로가 다양하게 활용되는 이색적인 광경은 땅이 귀한 투발루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나마 남아있는 이 땅마저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는 '섬'(Island) 보다 그 규모가 작은 '아일렛'(Islet)들에서 더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30년 만에 모래도 나무도 사라졌다 

 

지난 2016년부터 타이나우티(TAINAUTI)호를 운항했던 투발루인 선장 터사(Teosa) 씨는 이제는 바위만 남은 아일렛의 옛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1992년에만 해도 모래와 코코넛 나무가 있었던 아일렛인 테푸카 빌리빌리(Tepuka vili vili)에는, 이제는 파도를 맞는 것도 버거워 보일 정도의 얕은 바위만이 남아 있었다. 

 

▲ 투발루 푸나푸티 본섬에서 8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일렛 Tepuka vili vili(테푸카 빌리빌리). 약 30년 전인 1990년에는 모래와 코코넛 나무도 있었지만, 지금은 바위만 남아있다. ⓒ외교부 공동취재단(=투발루)

 

4월 28일(현지시각) 투발루의 수도 푸나푸티에서 약 8마일 떨어진 아일렛 테푸카 빌리빌리까지 취재진을 안내한 터사 씨는 30년 전부터 해수면이 높아졌다고 회고했다. 

 

"1992년에는 모래톱도, 코코넛 나무도 있었다. 할아버지랑 여기 와서 낚시도 했다. 예전과 섬의 크기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는데 해수면이 올라오면서 섬 위에 있던 모래가 없어졌고, 그러면서 나무도 사라지고 지금은 바위만 남았다"

 

▲ 타이나우티(TAINAUTI) 호 선장 터사(Teosa). ⓒ외교부 공동취재단(=투발루)

 

30년 동안의 지구 온난화는 투발루의 아일렛들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그런데 온난화의 효과는 육지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구 온난화는 바다의 생태계를 바꾸고 있었고, 이는 인간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선원인 에이모크 씨는 기후 변화로 어업 활동이 예전보다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예전에 나는 어부였다. 산호초가 기후변화로 죽으면서 물고기들이 죽은 산호를 먹어 독성이 있을 가능성도 생겼다. 투발루의 주요 산업은 수산업인데 물고기들이 새로운 먹이와 산호초를 찾아 다른 곳으로 많이 이동했다"

 

▲ 바사푸아 아일렛 인근에 위치한 또 다른 아일렛. 해수면이 높아져 모래가 쓸려 나가기 전에 바사푸아도 이 아일렛처럼 모래와 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외교부 공동취재단(=투발루)

 

투발루에서 플라스틱 백은 최소 '재사용'해야 

 

푸나푸티에서 18마일 떨어져 주위에 다른 육지를 보기 힘든 또 다른 아일렛 바사푸아(Vasafua) 역시 모래가 없어지고 지금은 바위만 남아 있는데 사람의 손이 닿기 어려워 보이는 이곳에도 플라스틱 병을 포함해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투발루와 키리바시 등 해수면 상승으로 육지가 잠기고 있는 섬 국가들의 대표적인 골칫거리가 쓰레기 문제다. 자체적으로 발생하는 쓰레기뿐만 아니라 해류를 타고 이들 지역에 안착하는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바사푸아의 쓰레기도 해류를 타고 떠내려 왔을 가능성이 있다. 

 

▲ 투발루 내 아일렛 바스푸아에 각종 쓰레기가 쌓여 있다. 해류에 밀려 쓰레기가 떠밀려온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공동취재단(=투발루)

 

떠내려온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문제지만, 자체적으로 쓰레기 발생을 억제하는 것도 필요한 부분이다. 투발루 현지에서 취재진을 안내했던 투발루 주민 파이토피 푸시넬리(Faitofi Pusinelli, 도비) 씨는 투발루의 쓰레기처리법을 통해 쓰레기 분리 배출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정부는 각 가구마다 초록색 쓰레기통을 분배해 쓰레기 수집 및 분리 배출을 유도했다. 또 정부 내 쓰레기 담당 부서(Waste Department)를 두고 여기서 각 가구들을 돌면서 요일 마다 다른 종류의 쓰레기를 수집한다. 예를 들어 오늘 플라스틱 병을 수집했다면 내일은 나무를 비롯한 가구 쓰레기 등을 모으는 방식이다.

 

이와 함께 상점에서는 플라스틱백이 아닌 종이백을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실제 상점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플라스틱 백 대신 알루미늄 호일을 포장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설사 플라스틱 백을 사용하더라도 무조건 재사용해야 한다. 

 

분리 배출을 포함해 쓰레기 배출과 관련한 이같은 법을 어길 경우 한 번 어길 때마다 150 호주 달러 (5월 2일 환율 기준 약 13만 4830원)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이를 두고 파이토피 씨는 "정부에서 이같은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억제 차원에서 금액을 높게 책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 푸나푸티 본섬 북쪽 쓰레기 하치장에 모여있는 쓰레기들. 종류별로 쓰레기가 분류돼있다.ⓒ외교부 공동취재단(=투발루)

 

그런데 투발루의 쓰레기에는 폐기하거나 분리 배출해야 할 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떨어진 바나나 나뭇잎과 같은 자연 쓰레기도 모아서 배출하는데, 이를 분쇄하여 각 가정에 3 호주달러에 판매한다고 한다. 구매한 사람들은 이를 집에 있는 작은 정원이나 텃밭에 사용한다. 

 

사람이 살만한 땅도 별로 없는데 정원이나 텃밭이 가능한지에 의문이 생기기도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채소를 가꾸고 땅을 만들어갔다. 투발루 주민들의 안정적 삶을 위해 장기적으로는 지구 온난화를 막는 것이 핵심이지만, 당장 내일 먹을 채소를 구해야 하는 것도 이들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투발루 사람들은 오늘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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