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모기를 쫓기 위해 집에서 피우던 향이 있다. 전기가 필요 없어 야외에서 고기라도 먹을 때면 어김없이 먼발치에 두곤 했다. 간혹 아직도 그 모기향을 피우는 식당에서 향을 맡노라면 어릴 적 추억에 잠긴다. 소용돌이 모양의 이 모기향을 많은 국민이 기억할 거다.
그런데 이 모기향의 사용을 잠정중단해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달 30일, 환경부는 이 모기향 성분인 ‘알레트린’에 대해 안전성 재검증을 하기로 했다. 1949년 개발된 ‘알레트린’은 살충제 물질로 미국과 호주,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서 또한, 코일형 모기향과 일부 전자모기향에 사용되고 있다.
지난 3월 유럽연합(EU) 소속 유럽화학물질청(ECHA)은 “알레트린 물질이 햇빛에 노출되면 나오는 분해 산물이 위험할 우려가 있다”며 최종불승인 처리했다. 이에 우리나라 환경부 역시 추가적인 안전성 검증에 들어간 것이다.
‘안전성 재검증’ 이런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스치는 생각이 있다. “‘안전’에 관해 우리는 최대한 보수적인 선택을 해야겠다, 당장 안전하다고 하더라도 미래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12일 윤석열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만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를 사실상 용인했다. 윤 대통령은 “IAEA의 보고서를 존중한다”며 “위험하면 방류를 중단해달라”고 요구했다.
후쿠시마 오염수과 광우병
정부·여당은 국민과 야당의 우려에 ‘광우병 논란’ 때를 거론하며, 야당이 그때와 똑같이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괴담을 퍼트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결과로 이야기할 것이 아니다. ‘광우병 논란’ 당시 국민의 우려에는 민주주의 문제가 숨어있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든 당시 ‘인간 광우병’이든 시간이 지나지 않으면 그 결과에 대해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안전할 확률이 90%이든 10%이든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당시 국민은 이를 우려했다. 광우병은 발병 시 치료 방법이 없다. 인지기능을 마비시키다 서서히 사망에 이르게 하는 치사율 100%의 치명적인 병이었다. 잠복기가 길어 누군가에게 발병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이 눈뜨고 죽음을 기다려야 했을 거다.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국내에서 ‘인간 광우병’이 발병한 사례는 없다. 그게 당시 촛불 집회를 폄하시킬 논리는 될 수 없다. 국민은 작은 위험이라도 존재한다면 우려를 표해야 한다. 특히,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인 문제 앞에서 더욱 그렇다. 이후 천천히 기준을 완화시켜야 한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엄격한 기준인 생후 20개월 미만 미국 소고기를 수입했다. 이후 2013년에야 안전하다고(국민이) 판단했는지 우리나라와 같은 30개월 미만으로 기준을 완화했다.
85% 반대라는 외교적 무기
그렇다고 국정의 모든 결정을 여론으로 할 수는 없다. 모든 투자는 위험이 따른다. ‘광우병 논란’ 때는 미국산 소고기를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이점이라도 존재했다. 하지만 오염수의 경우, 뚜렷한 이점을 찾아볼 수 없다. 이게 85%의 국민이 반대하는 이유다.(지난 5월 환경운동연합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류 찬반 여론조사 결과 85%의 국민이 방류를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79%의 시민이 후쿠시마 오염수 안전성에 대한 일본 정부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85% 국민의 반대’, 이는 민주주의 국가라면 외교적으로 작용하는 가장 큰 무기다. 정부가 정말 안전하다고 확신하더라도 이에 상응하는 실리를 요구해야 했다. 차라리 국민이 반대한다는 핑계로(라도) 법원이 최종판정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과 과거사 반성이라도 요구했다면 이 정도로 여론이 안 좋지는 않았을 거다.
이번 나토 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IAEA의 보고서를 존중한다면서 오염수 방류 점검 과정에 한국 전문가들을 포함해달라 했다. 이에 일본은 즉답을 피하고 윤 대통령이 IAEA 보고서를 존중했다는 사실만 부각시켰다.
순서가 잘못됐다. 정부는 한국 전문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시료를 직접 채취하고, 자체 조사를 벌이겠다 요구한 뒤, 요구가 수렴된다면 IAEA보고서를 존중하겠다고 해야했다.
과거 일본의 전체주의 향기
7일에는 태평양도서국과 일본이 ‘정당성 원칙’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태도국은 ‘정당성 원칙’의 사회 전반 이득이라고 하려면 모든 나라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본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타국에 어떨지 모르나 자국에는 큰 이득이 되니, ‘정당성 원칙’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내용을 듣고 곧바로 100년 전 일본의 군국주의, 전체주의가 떠올랐다. 전쟁을 위해 폭탄을 들고 전차로 달려갔던 가미카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식민지 국민을 대상으로 인체실험을 강행한 마루타. 모두 일본이 국익을 위해 개인을 학살한 사례다.
당시 저지른 끔찍한 만행에 대한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는 일본을 보면, 100년 전 체제에 대한 열망, 최강국 미국을 선공할 정도의 위상을 아직도 꿈꾸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방류를 반대하는 일본 내 자국민도 적지 않지만, 강행하려는 일본의 모습은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안전성 재검증'
얼마 전 지인과 이야기하다 “9월에 여수 여행을 간다”는 말을 들었다. 이내 ‘8월에 방류가 시작되면.. 게장을 먹어도 되려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대통령은 모든 국민에게 찝찝함을 남겼다.
언젠가 ‘알프스(다핵종제거설비) 안전성 재검증’이란 기사의 제목을 보게 되면 우리는 어떤 상황을 마주하게 될까, 정부의 말대로 4년 뒤 오염수가 우리 바다 인근까지 오게 된다면 그 오염수를 막을 방법이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안전성 재검증의 필요로 당장 방류를 멈추더라도 이미 방류된, 밀려오는 오염수를 바라보기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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