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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형이냐 병립형이냐’ 기로 선 민주당, 복잡한 속내

“정치개혁 약속 지켜야” vs “원내1당 지켜야” 30일 의총서 난상토론...‘책임론’ 이재명은 딜레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자료사진) ⓒ뉴스1
내년도 총선에 적용할 선거제도 개편을 둘러싼 더불어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현행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유지할 것이냐,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갈 것이냐를 두고 의원들의 견해차가 심화하는 양상이다.

각자가 판단하는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셈법은 복잡하다. 이 가운데 선거제도 개편에 뚜렷한 입장을 내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던 이재명 대표가 지난 28일 ‘현실론’에 기운 태도를 내비치며 당내에서는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고 있다. 민주당은 29일 열기로 한 의원총회를 취소하고, 이튿날인 30일 ‘선거제 난상토론’ 의원총회를 갖는다.

대국민 약속’ vs ‘정권 폭주 제지’, 민주당의 딜레마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자는 쪽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 대표가 한 대국민 ‘선거제도 개혁’ 약속을 떠올린다. 당시 이 대표는 ‘다당제 정치’로 나아가겠다며 위성정당 출현을 막는 연동형 및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의 추진을 공언했다. 민주당 의원 전원도 이를 당론으로 채택하는 것에 동의하며 힘을 실었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초선 의원은 민중의소리와 통화에서 “우리가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대원칙이 먼저다. 지금 오로지 계산기 두들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아 너무 부끄럽다”며 “(병립형을) 밀어붙인다면 정당의 근간이 흔들릴 것이다. (국민의힘과) 야합하겠다는 거고, 거대 정당으로서 기득권을 결코 내려놓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제주도에 지역구를 둔 한 의원은 “위성정당을 방지하기 위해 지도부가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할 시기인데, 그 노력을 안 하고 ‘국민의힘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닌가 싶다”며 “국민의힘이랑 협의해 병립형으로 가자는 건가”라고 지적했다.

선거제도 개혁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거대 양당정치 체제에 균열을 낼 시점은 묘연해진다. 병립형으로 돌아가는 것이 “국회의원 배지 한 번 더 달겠다”는 개인의 이기심과 다르지 않다는 작심 비판도 나온다. 김종민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선거제도 퇴행에 대해 “소탐대실의 길”이라며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겠다고 덤비면 민주당은 영원히 못 이긴다”고 적었다.

여기서 민주당의 딜레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할 시 지난 총선처럼 여권의 위성정당 출현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역시 위성정당 창당 의사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이때는 현실적으로 민주당이 더 많은 의석을 얻기 위해선 전례와 같이 맞불로 위성정당을 띄우거나 병립형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원내1당에서 물러날 경우 국민의힘에 국회의장 자리를 내줘야 하는 문제도 있다. 국회 운영 주도권을 잃을 수밖에 없는 수순이다.

 

 

 

민주당 의원총회 (자료사진) ⓒ뉴스1

‘위성정당 방지법’ 공동발의 의원들의 다른 고민

결국 병립형 회귀에 기운 의원들은 ‘한 석이라도 더 이겨야 한다’는 현실론을 앞세운다. 정치개혁 대의명분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병립형이 선악 중 ‘악’의 선택지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여당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들 상황이 뻔히 보이는 마당에 도덕주의를 명분으로 약속을 고집하는 건, 선거에서 패배를 예견하며 손 놓는 사태와 다름없다는 의미다.

지도부 소속 한 재선 의원은 “나도 이상론자지만 우리가 위성정당에 반대한다고 해봐야 합의가 안 된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며 “민주당은 안 만들고, 국민의힘은 만들고, 그렇게 해서 원내1당 자리를 넘겨주면 정국 주도권은 다 날아간다. 지역에서 더 많은 의석을 얻을 거라는 건 장담이 되나”라고 우려했다.

이 대표는 전날 자신의 유튜브 채널 방송에서 ‘병립형 회귀’ 또는 ‘위성정당 창당’ 선택의 가능성을 시사하며 “현실의 엄혹함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특히 원내1당의 위치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로 “국회까지 지금 집권여당에 넘어가면 폭주, 과거로의 퇴행, 역주행을 막을 길이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반면 ‘범야권 선거 연합’으로 200석을 만들어 여당의 퇴행을 제어할 수 있다는 제안도 있다. 당내 정치개혁 움직임을 촉구하며 지역구 불출마를 선언한 이탄희 의원이 그 의견의 중심이다. 이 의원은 “기득권을 택하면 민심은 떠나고 민주당은 고립된다. 진보가 떠나고, 중도를 놓치고, 국민 모두의 신뢰를 잃게 된다”며 이 대표의 결단을 촉구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의 ‘개혁 연합신당’ 구상에 호응한 이 의원은 “22대 국회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은 다양한 정당들과 사안별로 연합해서 개혁 입법을 주도하고, 국민의 삶을 지키는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에는 “선거 결과는 뚜껑 열어보기 전까지 모르는데, 연합해서 200석을 만든다는 건 오만하고 교만한 태도다. 선거를 앞두고 최선을 다 해 한 석이라도 더 얻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당내 비판도 뒤따른다. 전날 민주당 의원 75명이 공동발의한 ‘위성정당 방지법’에 이름을 올린 한 초선 의원은 “위성정당 방지법에 서명한 건 ‘위성정당을 만들지 말라’는 국민의힘 압박용이지 이걸 어떻게 이 대표 압박용으로 쓰나”라며 “국민의힘의 명분 없는 태도를 알려야 한다”고 답답해했다.

30일 의원총회를 계기로 선거제도를 둘러싼 민주당 내 이해관계가 분출하며 논의는 본격화될 전망이다. 숙의 과정을 거쳐 결론을 도출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의원총회 결론은 일종의 여야 논의 가이드라인이기 때문에 국민의힘과의 협상 단계도 남아있다. 선거제도는 여야 모두에게 민감한 ‘게임의 룰’인 만큼 단독 입법을 감행하기는 어렵다.

이 대표는 ‘최선의 선택’을 위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내기보다 의원들의 의견을 듣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도 ‘대국민 약속 파기’ 또는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론을 비껴가기는 힘들다.
 

“ 김도희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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