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윤 대통령 취임 4개월 후인 작년 9월 최재영 목사로부터 명품 브랜드 디올 가방을 선물받고, 국정 현안과 관련한 다양한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은 취재 방식과 관련한 논란과 별개로 대선 당시부터 문제시됐던 김 여사의 도덕성 논란, 선거개입 논란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여사의 대국민 사과, ‘영부인 폐지’를 언급한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언도 무색케 한다.
김 여사는 대선 시기에 논문 표절, 주가조작, 허위경력 등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또한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제 처는 정치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는 말과 달리 김 여사가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와의 대화에서 선거 캠프 업무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점이 공공연히 드러났다.
각종 논란에 침묵하던 김 여사는 대선 경쟁이 한창이던 2021년 12월 26일 등떠밀려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김 여사는 “일과 학업을 하는 과정에서 제 잘못이 있었다. 잘 보이려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도 있었다”며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모든 것이 저의 잘못이고 불찰이다.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저 때문에 남편이 비난받는 현실에 너무 가슴이 무너진다”며 “과거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겠다”고 했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는 말도 했다. 물론 각종 문제시됐던 사안 하나하나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은 없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이에 앞서 윤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에서 ‘영부인 폐지’라는 수를 꺼내 들어 김 여사의 비위 문제를 무마하려고 했고, 대통령 배우자를 담당하는 2부속실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다. ‘영부인’이라는 공식직함이나 제도는 애초에 없었지만 ‘대통령 배우자’라는 자리는 지근에서 대통령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국민통합에 여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무게감을 감안해 실질으로는 지위를 인정받아왔다. 물론 국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월권을 배제한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윤 대통령도 작년 2월 대선 후보자 토론에서 김 여사의 ‘미투 운동’ 폄훼 발언 지적에 “공인의 아내도 공적인 위치에 있으니 사과를 드리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공개된 김 여사의 명품 수수 장면, 최 목사와의 대화 내용은 위와 같은 윤 대통령-김 여사 부부가 과거 형식적으로나마 보여줬던 사과와 자숙 의지와는 완전히 상반된다.
김 여사는 최 목사의 명품 선물을 주저 없이 받았다. 만남 전 최 목사가 카카오톡 메시지로 보낸 명품 사진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이 미팅 약속을 잡았고, 최 목사가 직접 선물을 건네자 “이런 거 사오고 그러지 말라”며 인사치레를 했을 뿐이었다. 도덕성 문제로 질타를 받다가 대국민 사과를 한 사람이 민간인의 명품 선물을 아무 거리낌 없이 받는 것을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최 목사가 카메라에 담은 장면에서는 ‘현직 대통령의 배우자’ 위치에 있던 김 여사의 이해하기 어려운 처신이 고스란히 담겼다. 아무리 사적 관계라는 점을 전제하더라도 1인칭 시점에서 “대통령이 되어보니”라는 식의 언사나 국정 현안과 관련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내놓는 등 절제되지 않은 모습은 보는 이들을 혼란케 했다.
최 목사의 촬영 영상에서 김 여사는 “제가 이 자리에 있어보니까 객관적으로 정치는 다 나쁘다고 생각해요. 막상 대통령이 되면 좌우 그런 것보다는 국민들을 먼저 생각하게끔 돼 있어요. 이 자리가 그렇게 만들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저는 그렇게까지 무슨 OO 대표는 아닌데 대통령 자리에 올라가니까”라는 말도 서슴없이 했다.
영상에서 김 여사는 “남북 문제에 제가 좀 나설 생각이에요. 정말로. 그래야 되고 남북 통일을 해야 되고, 이런 문제를 해야 돼서”라고 말했다. 국정 개입 의지를 드러낸 대목이다.
이는 2021년 12월 공개된 이명수 기자와의 대화에서 “캠프에 와서 블랙조직으로 좀 뛰어보라”,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관리해야 될 애들 명단을 주면, 내가 빨리 보내서 관리하라고 그러겠다” 등 선거개입을 암시하는 말을 한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최 목사는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보여준 강경일변도의 대북관을 우려해 김 여사에게 자신이 북한을 여러 번 다녀오고 통일운동을 했다는 점을 어필하며 대북정책 조언을 해주고 싶다고 접근해 김 여사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고 한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서도 국정 현안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매우 납득이 어렵다. 최 목사와의 관계가 대북정책을 포함한 국정 현안과 관련한 대통령 배우자의 역할을 전제로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면, 매우 위험한 문제다. 나아가 최 목사와의 관계 외에도 다른 사인들과도 국정을 매개로 관계를 맺어왔다거나, 대북정책뿐 아니라 각종 국정 현안에도 관여해온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최 목사가 대북정책 조언을 명목으로 김 여사와 연락하기 시작한 건 작년 1월이었다고 한다. 이는 김 여사가 허위경력 등 논란으로 눈물 흘리며 대국민 사과를 한지 겨우 한 달 지난 시점이었다.
관저 입주 전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스스로 직을 내려놓은 사설 업체 코바나콘텐츠 사무실에서 방문객들을 접견하는 모습, 수많은 방문객들이 쇼핑백을 들고 김 여사를 접견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모습도 쉽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 취임 후 김 여사의 공개 행보에서도 ‘월권’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장면들이 수차례 나왔다. 작년 8월 중앙경찰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생들과 별도로 비공개 간담회를 한 것, 지난 4월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과의 오찬에서 “개식용을 정부 임기 내에 종식하도록 노력하겠다. 그것이 저의 본분”이라고 하고, 같은 날 납북자·억류자 가족들과 만나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에 강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게 그랬다.
납북자 관련 발언을 두고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반도 외교 안보 문제에 대해서 민감한 얘기인데 대통령 부인이 이런 말을 하는 주체로서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영부인 폐지를 암시하고 제2부속실 폐지를 공언한 것과 대조적이다. 김 여사가 대국민 사과 때 “남편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말한 것과도 분명 거리가 멀다. 대통령실은 이 부분에 대해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김 여사의 명품 수수 및 권한 밖 대화 논란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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