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는 경북 울진군에 미국 뉴스케일파워(Nuscale Power Corp)가 개발 중인 소형원전인 ‘소형모듈원자로’(Small Modular Reactor, SMR)가 들어선다는 내용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며 “이번 한·미 SMR 동맹은 2035년 630조원 규모로 예상되는 글로벌 SMR 시장 공략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이 외에도 △ 울진군-GS에너지 의기투합 “국내 최초 SMR 건설하자” (매일경제) △ 울진군-GS에너지, 울진에 소형모듈원자로 도입 추진 (동아일보) △ 뉴스케일 SMR, 韓 기업이 만들고 울진에 도입 추진 (전기신문) 등 다수의 언론이 이 소식을 주요뉴스로 다뤘다.
뉴스케일은 원전 관련 언론보도에 틈만 나면 등장하는 SMR 개발 선도 기업이다. 뉴스케일의 SMR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2020년 설계인증을 받았다. 미국 NRC로부터 설계인증을 받은 SMR은 뉴스케일이 유일하다. 자사 홈페이지에 당당히 “SMR 기술의 리더, 우리 소형모듈원자로는 모든 수준에서 경쟁사를 능가합니다”라고 써놓을 정도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21년 6월 ‘SMR 주요국 현황과 한국의 과제’ 보고서를 내면서 가장 먼저 소개한 사례도 뉴스케일의 SMR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뉴스케일은 자국에서도 SMR을 단 1개도 짓지 못했다. 심지어 최근 뉴스케일이 공들인 미국의 첫 SMR 프로젝트가 중단되면서 집단 손해배상소송 원고인단 모집과 주가 폭락 등이 이어지고 있다.
SMR이 무엇이기에, 자국에도 짓지 못한 것을 우리나라에 먼저 지으려는 것일까?
미국과 소련 핵잠수함에 쓰던 기술
원전이 커진 이유...“경제성 때문”
“발전소 크기 키웠더니 12~13% 비용절감”
뉴스케일 사업 중단된 이유도 경제성
원자력산업계에서 SMR을 석탄화력을 대신할 새로운 에너지라고 홍보한다. 이 때문에 기존 원전과 다른 새로운 기술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SMR은 신기술이 아니다.
SMR은 말 그대로 소형원전을 뜻한다. 현대건설 뉴스룸이 SMR 홍보 목적으로 자사 홈페이지에 게시한 전문가 칼럼을 보면, SMR은 과거 “미국과 옛 소련의 핵잠수함과 핵항공모함에 쓰던 기술”이다. 기존 원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모듈’ 형태로 조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원전의 핵심 기기인 원자로, 증기발생기, 냉각재펌프 등을 모듈 형태로 작게 만든 후 조립하여 완성한다는 개념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SMR을 “기존 원전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300MW 이하 소형원전”, “구성 요소를 공장에서 조립하여 설치 장소로 운반할 수 있는 모듈형”이라고 정의했다. 다만, ‘모듈’도 신개념은 아니다. 전 세계 원전의 절반을 지은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파산할 당시 짓던 원전도 모듈형 원전이다. 웨스팅하우스는 모듈형 원전을 짓다가 예상보다 너무 많은 초과비용이 발생하면서 2017년 파산했다.
반면, 전 세계 표준 원전은 1000MW급 대형원전이다.
“지금의 (1000MW급) 상용원자로 나오기 전 원전은 소형원전이었다. 처음부터 1000MW 원전을 한 게 아니다. 처음에는 10MW, 100MW 규모의 원전을 개발했다. 그런데 경제성이 떨어지니까, (계속 용량을 키우다가) 1000MW 원전을 짓게 된 것이다.” -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 소장, 12월 12일 전화통화
1000MW급 대형원전이 표준이 된 이유는 경제성 때문이다. OECD 원자력에너지청(NEA)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원전은 크기가 크면 클수록 경제성이 좋다. 특히 캐나다와 프랑스에서 발전소 규모를 키운 결과 약 12~13%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경제성이 좋다고 무한정 원전을 키울 수 없었던 이유는 물리적 한계 때문이다. 즉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원전의 크기를 계속 키우다가, 물리적 한계를 고려한 가장 적절한 크기가 1000MW급이 된 것이다. (▶NEA 보고서)
뉴스케일이 아이다호에 SMR을 건설하는 미국의 첫 SMR 프로젝트, ‘무탄소 발전소 프로젝트’(CFPP)가 실패한 배경도 이 경제성 문제였다.
뉴스케일은 원전 설계용량을 처음에는 50MW로 설계했다가 경제성 문제로 60MW로, 77MW로 두 차례에 걸쳐 변경했다. 그런데도 예상발전비용이 당초 뉴스케일이 홍보했던 것보다 53% 급등(MW당 58달러 → 89달러)하면서, 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던 지자체가 대거 탈퇴했다. 에너지전환포럼에 따르면, 뉴스케일 사업에 대한 불신으로 사업을 탈퇴한 지자체들은 SMR보다 훨씬 저렴한 재생에너지로 대거 이동했다. 이에, 뉴스케일은 결국 지난달 CFPP 중단을 선언했다. 뉴스케일의 사업실패를 예고했던 에너지전환포럼은 “뉴스케일의 전신인 오리건주립대 연구팀이 미국 에너지부로부터 지난 2000년 ‘다목적 소형원전 개발사업’으로 시작해 20년 넘게 독점적으로 지원혜택을 받아온 결과물이기에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1997년부터 수천억 투자
SMR 개발했으나 주문은 0건?
그런데도 장밋빛 미래 그리는 업계·정부
우리나라도 1997년부터 최근까지 상용할 수 있는 SMR을 개발하기 위해 수천억 원을 투입했다. ‘SMART’(System-Integrated Modular Advanced Reactor, 일체모듈형원전)는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개발한 한국형 SMR이다. 2012년 7월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인가를 취득했다. 하지만 표준설계인가를 취득한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아직까지 SMART 원자로에 대한 주문은 전무한 상황이다.
세계 각국의 SMR 개발 현황 등을 모니터링하고 매해 보고서를 내고 있는 ‘세계원자력산업현황보고서’(World Nuclear Industry Status Report, WNISR)는 2023년 보고서에서 “한국이 100MW 설계에서 170MW 설계로, 롤스로이스가 470MW 설계를 제안하는 등 SMR 설계자들이 더 큰 출력 설계로 이동하는 추세는 ‘규모의 경제’가 계속 중요하다는 증거”라며 “그러나 출력을 높인 후에도 SMR은 여전히 경제성이 떨어진다. 상업적으로 실패할 것으로 보이는 일련의 기술에 (각국) 정부가 계속 투자하는 이유는 여전히 수수께끼”라고 지적했다. (▶WNISR2023)
그런데도, 정부나 언론은 SMR에 관한 장밋빛 미래만 그리며 투자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지난 6일 한 경제매체 기고 글에서 SMR에 대해 “수많은 분야의 ‘게임 체인저’를 탄생케 하는, 그 근본이자 대지인, 에너지의 신(新)생태계가 되어줄 것”이라고 했고, 지난 5월 1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회의에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울진군에 미국 뉴스케일의 SMR을 건설하기 위한 업무협약’에 관한 질문을 받고 “앞으로 이 시장에서 경제성 있고 안전한 SMR을 만드는 데 아마 전 세계가 경주해서 나갈 것으로 보인다”며 “그래서 앞으로 우리도 기술개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에너지 문제뿐만 아니라 수출산업으로도 아주 유망한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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