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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무죄 선고 재판부가 쓴 ‘트릭’들

민변·참여연대 판결 분석 좌담회…“승계 목적 맥락 파악 않고 사건 쪼개서 봐”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주최로 열린 “이재용 1심 판결 내용과 앞으로의 과제” 삼성물산 불법합병 1심 판결 분석 좌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02.07 ⓒ민중의소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불법승계 관련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법원 판결이 ‘트릭’을 사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 회장 승계라는 주된 목적 아래 추진된 정황을 배제한 채, 사건을 쪼개 개별 범죄 혐의의 위법성을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민변 민생경제위원회·참여연대는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삼성물산 불법합병 1심 판결 분석 좌담회’를 열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는 지난 5일 이 회장의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결심 공판에서 이 회장에 대해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이 회장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최소비용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삼성 미래전략실과 공모해 각종 부정행위에 관여한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다.

재판부는 이 회장이 연루된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사건을 종합적으로 보지 않고, 범죄 혐의를 세분화해 별도 행위의 위법성을 고려하면서 왜곡된 판결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 이동구 변호사는 “재판부는 일련의 과정을 보지 않고, 사건을 쪼개서 봤다”며 “트릭을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범죄 혐의를 쪼개서 보면 그 자체로는 범죄 행위가 잘 성립되지 않는다”며 “그 행위들이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고, 그 행위들로 이득을 얻는 자가 있고, 그자가 행위들을 주도·사주했으면 범죄 행위가 성립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떤 행위에 대해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지 않고 불법성과 타당성을 판단하면 법원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일갈했다.

합병 전후 삼성 주요 계열사 지분구조를 보면, 이 회장이 합병의 최대 수혜자라는 점이 드러난다. 합병 전 이 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으나,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지분은 없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을 4%가량 보유했다. 이 회장 입장에서는 합병 과정에서 제일모직 가치를 높이고 삼성물산 가치는 낮추는 게 유리했다. 합병을 거치면서 이 회장은 합병회사 지분을 16.4% 확보해 최대주주에 올랐다. 합병 후 이 회장의 삼성전자 간접 지분은 크게 늘었다. 합병 전 제일모직을 통한 삼성전자 간접 지분이 0.32%였는데, 합병 후에는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이 더해지면서, 삼성전자에 대한 간접 지분이 0.91%로 올라갔다.

“승계만을 위한 합병 아니라면 불법 용인한다는 것인가”

검찰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 회장 승계라는 주된 목적하에 추진됐다고 봤으나,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승계가 합병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었다는 게 재판부 설명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보도자료에서 “합병에 합리적인 사업상 목적이 존재하는 이상 합병에 지배력 강화 목적이 수반됐다고 하더라도, 합병 목적이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본질을 회피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민병 민생경제위원회의 김종보 변호사는 “합병의 가장 큰 목적이 이재용의 지배력 확보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승계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거나 약탈적 합병이 아니라면서 무죄를 선고한 건 본질을 회피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동구 변호사는 “재판부도 승계작업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면서 “합병이 승계만을 위한 건 아니었다고 했는데, 판결의 핵심이 되는 논거”라고 짚었다. 이어 “승계작업만을 위한 게 아니라면 관련한 모든 불법이 용인되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국정농단 사건) 대법원 판결에 대해 정면 반박하기 어려우니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이번 재판부 판단은 앞선 판결과 모순된다. 합병의 성격은 이미 국정농단 사건에서 규정된 바 있다. 국정농단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와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이 회장이 승계작업을 도와달라고 청탁하며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 측에 뇌물을 건넸다고 인정해, 이 회장에게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2019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승계작업이란 이재용이 최소한의 개인자금을 사용해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이라고 규정하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승계작업 일환으로 진행된 현안”이라고 판시했다.

삼성 내부 문서는 이 회장 승계가 합병의 주된 목적이었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2012년 작성된 ‘프로젝트-G’ 문건을 보면, 합병 목적으로 ‘물산 지배력 확대’를 명시했다.

합병 발표 직전인 2015년 4월 작성된 ‘M사 합병 추진(안)’에도 합병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사업성 필요에 따른 것이라는 내용이 전혀 없다고 김 변호사는 짚었다. 그는 “삼성그룹의 지배력 확보에 관한 내용만 있다”며 “제일모직이 물산을 흡수합병하는 이유는 의결권 지분 확대였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프로젝트-G 문건에서 말하는 ‘물산 지배력 확대’는 총수일가의 지배력 확대를 의미한다”며 “합병에 관해 ‘회장님’, ‘사모님’, ‘부회장님’, ‘BJ(이부진)’, ‘SH(이서현)’의 지분율이 명시돼 있다”고 짚었다.

M사 합병 추진(안)에 대해서도 “건설·상사·바이오·레저 등 사업상 목적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이, 합병 주체에 대해서만 고민한다”며 “사업상 합병이 필요했으면, 삼성물산이 제일모직 흡수합병해도 된다. 사업을 구조조정하거나 삼성물산이 다른 기업과 합병해도 됐다”고 지적했다.

합병에 삼성물산의 사업적 목적도 포함돼 합병 목적의 부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재판부 판단에 대해, 주객이 전도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회장 승계를 주된 목적으로 합병을 추진하는 와중에 부수적으로 사업성을 고려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총수일가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합병을 하는데, 이왕 합병하는만큼 사업상 시너지를 궁리해 보자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며 “재판부는 주된 목적과 부수적 목적을 구분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삼성물산이 경영상 위기를 극복할 여러 방안을 고민한 끝에 제일모직과 합병을 최선의 방법으로서 추진했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은 채 합병의 승계 목적을 부인하는 건 무리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4.02.05 ⓒ민중의소리

“재판부 논거는 총수 이익이 주주 이익이니 범죄 눈 감으라는 것”

재판부는 합병비율이 이 회장에 유리하게 산정됐다는 검찰 공소사실에 대해, 합병 비율이 부당하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비율은 1:0.35로 산정됐다. 참여연대는 제일모직 가치를 부당하게 부풀린 요인을 보정한 적정 합병비율이 1:1.18이라는 분석 결과를 낸 바 있다. 이 회장이 취한 부당이익 규모는 2조~3조 6천억원으로 추산했다.

합병비율의 불공정성은 다수 판결에서 인정된 바 있다. 합병 당시 삼성물산의 주요 주주였던 일성신약이 합병비율 산정에 있어 삼성물산 가치가 낮게 평가됐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합병비율이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국정농단 사건 판결도 합병비율이 불공정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은 박 전 대통령 지시를 받아 삼성물산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했다는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불공정한 합병비율에 따른 국민연금공단 손해를 막아야 할 임무를 위배했다는 판단이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도 삼성물산 주주로서 합병에 반대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 해결절차(ISDS)에서 국정농단 판결을 근거로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이동구 변호사는 합병 당시 삼성물산 영업이익은 약 6,500억원으로, 제일모직(2,100억원)의 세 배에 달했다고 짚으며 “삼성물산 가치를 제일모직의 3분의 1로 잡은 합병비율이 어떻게 부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합병비율 부당성에 대한 재판부 판단은 총수일가를 회사와 동일시하고 승계를 위한 사익추구가 다른 주주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재벌 논리를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재판부는 “합병을 통한 그룹 지배력 강화 및 경영권 안정화는 물산 및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대주주의 이익이 곧 주주의 이익이라는 논리는 회사법의 기본 원리에서 벗어난 생각”이라며 “총수와 대주주가 잘 되는 게 회사와 주주가 잘 되는 것이니, 기업인으로서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 눈 감으라는 논리과 다름 없다”고 지적했다.

합병비율의 부당함이 부정되면서, 삼성물산의 국내 주주가 불법성을 주장하기 어렵됐다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엘리엇이 한국 정부로부터 손해를 보전받을 수 있었던 것과 비교해 차별적인 결과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김종보 변호사는 “향후 민사에서는 다른 결론이 도출될 수 있으나, 이번 판결에 따르면 합병에 아무런 불법성이 없다는 취지인 것으로 이해된다”며 “이 경우 오히려 해외투자자가 국내투자자 보다 더 보호되는 문제로 이어진다”고 짚었다. 이어 “엘리엇은 한국 정부로부터 돈을 받아갈 수 있게 됐는데, 주주는 누구를 상대로 소송해야 하는가”라고 한탄했다. 또한 “한국은 무슨 죄인가. 왜 이재용과 박근혜 때문에 국가 재정이 피해를 봐야 하는가”라고 했다.

좌장을 맡은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결국 국민 호주머니를 털어 엘리엇에 돈을 주고, 그 이득은 이재용이 취하게 됐다”고 했다.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이 손해배상 청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 판결이 왜곡된 지배구조에 기인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총수일가 사익편취를 용인하면서 한국 시장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지적이다.

김 사무처장은 “이번 판결에 따르면, 사업적 목적이었다고 하면 모든 의사결정이 용인되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이 지배구조를 개선할 이유가 없다”며 “그간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으로 지목된 문제”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다른 재벌그룹이 합병을 머뭇거리면서 이 사건을 주시하고 있다”며 “이번 판결은 재벌 2·3세들이 자기 돈으로 주식을 취득하는 게 아니라, 우연히 얻은 작은 회사를 통해 거리낌없이 그룹의 주요 회사를 지배하게 되는 걸 용인한다는 신호를 준다”고 말했다.

한 공동대표는 “언론은 삼성의 사법 리스크 해소라고 하는데, 이재용의 사법 리스크 해소다. 삼성과 이재용은 다른 존재”라며 “한국의 사법 리스크는 더 커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법질서와 정의가 일거 무너졌다”며 “경제적으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주축을 이루고, 한국의 사회 구조에 대한 신뢰가 붕괴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구도 한국의 경제질서에 신뢰를 보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조한무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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