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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이란 대통령 사망... '비선실세'에 쏠린 눈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신정국가'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복잡해진 후계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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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2일(현지시간)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테헤란에서 고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장례 기도를 인도하고 있다.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사망한 라이시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의 장례 행렬을 위해 수많은 이란 국민이 이란의 수도 테헤란 거리에 몰려들었다. ⓒ 연합뉴스

 

헬기 추락으로 사망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과 그 일행을 위한 장례가 22일 치러졌다. 이란 대통령의 사망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은 여전히 뜨겁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사건이 중동 상황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보다 이번 사건은 이란의 정치체제를 둘러싼 내부적 논란 가능성을 야기하고 있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란 최고지도자 세예드 알리 호세이니 하메네이의 깊은 신뢰를 받고 있었고 하메네이를 이을 차기 최고지도자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사라짐에 따라 이란의 차기 권력 구도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권력 공백이 생기면 반드시 신발 끈을 고쳐 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바로 사건의 잠재적 수혜자들이다. 사건과 수혜자 간 인과관계는 흔히 음모론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이란은 공식 국호인 '이란 이슬람 공화국'에서 알 수 있듯 공화제 원리와 종교 원리가 복합된 국가체제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처럼 이란 역시 선거로 결정하는 세속주의가 국가를 운영하지만, 국가는 최종적으로 신정 질서의 감독을 받는 구조다.

 

이는 마치 공산주의를 통치 이념으로 삼는 국가들의 권력구조와 비견될 수 있다. 북한, 중국, 베트남 등은 국가를 운영하는 행정부를 두고 있지만 그렇게 운영되는 국가는 공산당의 영도를 받도록 돼 있다. 이란에서는 당(黨)의 위치에 신(神)이 있을 뿐이다.

 

이란과 같은 신정 공화국은 중국의 공산당처럼 국가 구조와 별도로 상위의 종교 체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국가 엘리트들은 두 체제의 요직을 겸하거나 상호 인사이동을 하기도 한다. 공화국 체제와 이슬람 체제로 이원화된 권력구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란의 공화국 체제 안에는 대통령과 국회, 사법기관 그리고 군조직이 있다. 그리고 그에 비례해 이슬람 체제 역시 최고지도자와 전문가의회 및 헌법수호위원회, 종교법정 그리고 혁명수비대로 구성돼 있다.

 

대통령의 결정은 최고지도자의 승인을 얻어야 하며, 국회의 입법 활동은 전문가의회와 헌법수호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최종 공포될 수 있다. 사법 영역에서도 교리를 바탕으로 집행하는 종교법정이 최종적 판단 기관이다.

 

복잡해진 이란 최고지도자 후계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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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2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초상화를 든 조문객들이 고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운구 행렬을 따르고 있다. ⓒ 연합뉴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최고지도자는 이란어로 '라흐바르'라 부른다. 흔히 자주 등장하는 '아야톨라'라는 명칭은 고위 종교 지도자를 의미하며 라흐바르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적으로 아야톨라가 돼야 한다. 하지만 그 반대는 아니다.

 

대통령은 국민 직선제로 선출되지만 최고지도자는 이슬람법학자들로 구성된 전문가의회가 선출한다. 수니파 이슬람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과는 종신직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라흐바르는 세습이 아닌 선출직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권력 이양이 생물학적 친족관계를 따르는 반면 이란의 라흐바르는 신학적, 정치적 맥락에서 결정된다. 이점에서는 바티칸의 교황에 비견된다. 종신직이다 보니 1979년 현행 헌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 라흐바르는 단 두 명에 불과하다.

 

현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1989년 전임 호메이니의 사망으로 권력을 이양 받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하메네이는 호메이니의 신학 제자로서, 신학적 수제자가 정치적 후계자 자리를 이어받는 신정국가 이란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준다.

 

19일 사망한 라이시 전 대통령도 하메네이의 수제자 출신이다.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도 하메네이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국민의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라이시의 대통령 후보 결정을 강행했고, 당시 대선 투표율은 혁명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바 있다.

 

다음 달 4일이면 85세가 되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후계 구도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자리는 누구보다 라이시 대통령으로 좁혀지고 있었다. 그런 맥락을 이해한다면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이 갖는 정치적 파장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하메네이의 복잡해진 후계 구도에서 눈에 띄는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하메네이의 둘째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 내놓을 공식 직함이 없는 그는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비선 실세 역할을 해왔다.

 

신학자인 모즈타바 역시 권력욕이 없는 인물이 아니다. 다만 세습 권력 타파를 부르짖으며 혁명을 한 현 체제에서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권력의 핵심에 들어선다는 것은 명분상 용인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유력한 차기 최고지도자로 거론되던 라이시 대통령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그리고 다음 달 28일에는 대통령 유고에 따른 대선이 치러진다. 모즈타바 하메네이 입장에서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권력구조 둘러싼 내홍 벌어질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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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5월 31일(현지시간)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가운데)가 테헤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고지도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번 대선 출마가 피해 갈 수 없는 최선의 길이자 어쩌면 유일한 길이 될 수도 있다. 아버지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나이가 85세이기 때문이다. 이후 대선은 4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차기 최고지도자는 그보다 먼저 결정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란의 혁명 정신에 담긴 세습 권력 타파 의지다. 왕을 내몰고 신학자를 최고권력자로 내세운 지 반세기도 안 돼 다시 세습 권력으로 회귀한다면 고립된 국제관계에서 그나마 국내 지지기반까지 잃게 될 수도 있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예기치 않은 자신의 후계 구도 변수에 고민이 클 것이다. 확실해 보이는 것은 자신의 후계자로 아들 모즈타바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들이 대통령 또는 최고지도자를 꿈꿀 때 벌어질 전방위적 비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인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생각이 다르다. 생각지 않게 신발 끈을 고쳐 매게 된 그는 라이시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관련해 음모론의 주인공이 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머지않은 시간 안에 대통령 선거 후보가 결정될 것이다. 모든 대선 입후보 희망자는 이란 헌법수호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12명의 헌법수호위원회 위원 가운데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임명하는 위원은 절반인 6명이다. 그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통령 후보가 누가 되느냐, 뒤 이어 대통령으로 누가 선출되느냐에 따라 향후 이란의 대이스라엘, 대서구 교섭 라인이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이란의 권력구조를 둘러싼 내홍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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