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이 같은 중재 시도와 실패의 과정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대표는 당 대표 취임 직후에는 제3자 채상병 특검법으로, 총선 국면 비대위원장 재임 시절에는 대통령 영부인의 '명품백 의혹' 사과에 대한 이견과 이종섭·황상무 사태 등으로 윤 대통령과 갈등을 겪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당 안팎에 본인의 중재자 역할을 강조해왔다. 4월 총선의 막판 유세 국면에서 그의 단골 멘트는 "제가 눈치보지 않고 나서서 (정부의) 부족함을 해결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대표의 첫 번째 '중재' 대상이었던 대통령 영부인의 사과는 결국 없었다. 이는 오히려 지난 전당대회 과정에서 '한동훈-김건희 문자 묵살 논란'으로 이어져, 상대 후보들에게 한 대표에 대한 공격 빌미를 주기도 했다. 당시 당 대표 후보였던 나경원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영부인의 사과가 있었다면 총선 참패는 없었을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하며 한 대표의 정치력을 문제삼기도 했다. '중재'를 명분으로 대통령과 선을 그으며 정치세력화에 나선 한 대표에게, 그 중재의 '실패'에 대한 리스크가 처음으로 당내에서 제기된 순간이었다.
총선 당시 이종섭·황상무 사태에서부터 이어진 '채상병 특검법 제3자 추천안 괸련 상황은 더 꼬이고 있다. 한 대표가 공약으로 내세운 제3자 특검안은 친윤계 지도부인 추경호 원내대표와의 대립, 그것도 원내 구도상으로 열세에 가꾸운 대립 양상으로 이어졌다. 원내 다수파의 '선 수사 후 특검' 당론은 공고했다.
한 대표가 이 때도 "제 입장은 변한 게 없다"는 발언만을 반복하는 가운데, 장동혁·박정훈 의원 등 친한계 인사들마저 제3자 특검을 '공수처 수사 발표 뒤로 미루겠다'며 발을 빼는 듯한 모양새가 연출됐다. (☞ 관련기사 : 한동훈표 특검 '오리무중'…친한계 "공수처 수사 이후")
민주당 측에서 이를 공격 카드로 손에 쥐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민주당의 두 번째 채상병 특검법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거쳐 최종 폐기된 8월, 민주당에선 한 대표를 겨냥 "조건 붙이고 단서 달고 하는 건 결국 하지 말자는 얘기"(이재명 민주당 대표), "열흘 안에 제3자 추천 채상병 특검법을 발의하라"(박찬대 원내대표)는 등의 공격을 쏟아냈다.
현재는 대법원장 추천 권한, 제보공작 의혹 수사 등 한 대표의 주장을 일부 반영한 민주당의 세 번째 특검법까지 발의된 상태다. 한 대표 측은 민주당이 명시한 비토권을 명분으로 '무늬만 제3자 특검', '수박 특검'이라는 방어논리를 갖추고 있지만, 제3자 특검법을 공약하며 '특검 정국의 주도권을 뒤집겠다'는 취지로 주장했던 전대 당시 한 대표의 발언을 돌이켜보면 지금의 상황은 다소 궁색한 면이 있다.
앞서 법사위에선 야당으로부터 "제3자 추천 특검법 이 발언은 전당대회용이었다", "10명을 못 찾아가지고 법안 발의를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좀 딱한 생각도 든다"(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는 조롱 섞인 말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 당내에서도 채상병 특검법 논의를 위한 한 대표의 중진 오찬 등을 두고 '식사 정치의 효용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왔던 것을 고려하면 뼈 아픈 지적이다. '뒤집겠다' 공언했던 주도권은 당내에서도 당외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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