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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따고 장어 키우는 '그들' 없는 한국을 상상해본 적 있나요?

[인력 아닌 인간입니다 ①] '그들'을 부른 것은 '우리'였다

최용락 기자/이명선 기자/서어리 기자 | 기사입력 2024.09.17. 05:02:01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푸릇한 채소와 소‧돼지를 키우는 농촌 마을, 바닷배 띄우는 어촌 마을, 공장이 즐비한 산업 단지, 철 부딪히는 소리 요란한 조선소와 건설 현장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매일 '우리' 식탁에 오르는 깻잎을 따고 광어를 키운다. 우리가 사는 집, 우리가 타는 자동차와 배 모두 그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는 기피하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그들의 이름은 '이주노동자'다.

한번 상상해보자. 우리가 기피하던 곳에 있던 이주노동자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한국 사회에는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 경기 파주 한 비닐하우스 농가에서 이주노동자가 물에 잠긴 비닐하우스 사이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도 한때는 이주노동자였다

우리는 오해한다. 우리가 그들을 '받아준' 것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우리가 그들을 '불러온' 것이었다. 한국인 기피 사업장에 불러올 이주노동자 인력 규모를 올해 16만5000명으로 늘린 주체는 다른 누구도 아닌 한국 정부였다. 그런데도 한국의 사장님들은 여전히 '일할 사람을 찾기 힘들다'며 더 많은 이주노동자가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1월 중소제조업체 1200곳을 대상으로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이 나라에는 3만5000명의 이주노동자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내가 할 일을 남이 하면 고마워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인간 이하 취급하기 일쑤다. 농장에서 가축의 분뇨를 치우다 질식사한 이주노동자,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다 손가락이 잘린 이주노동자, 임금 몇 개월 치를 떼먹힌 이주노동자 이야기가 잊을 만하면 들려온다. 우리가 먹는 것, 입는 것, 타는 것 대부분에 그들의 설움이 녹아있다.

그런데 우리가 잊은 게 하나 있다. 그들의 지금이 우리의 과거였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도 타지에서 설움을 견디며 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산업화 영웅'으로 칭송받는 파독 광부들은 과거 기온이 35도에 달하는 지하 1000미터(m) 깊이 갱도에서 사람 무게만 한 작업 도구를 다루며 피땀을 흘렸다. 파독 간호사들은 시체를 닦는 일을 맡거나, 고되기로 유명한 호스피스 병동에 배정되곤 했다. 그런데도 보통 독일인보다 적은 임금을 받았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도 당했다. 책 <파독광부생애사>에 따르면, 파독 광부 이문삼 씨는 독일인에게서 "둠(dumm; 바보), 너는 코리아로 가야 돼"라는 말을 들은 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베갯잇을 적셨다고 회상했다. 정승식 씨는 외국인으로서 주택을 임대하기도 힘들었다고 했다. <나는 파독간호사입니다> 책에는 병원에서 근무 중 의사에게서 '마늘 냄새가 난다'는 타박을 들어 울며 기숙사로 돌아간 은숙 씨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목숨도 지키지 못했다. 작업 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광부가 27명,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간호사가 19명이었다. 죽음마저 감수해야 할 열악한 작업 환경을 견디다 못한 한국인 노동자들은 작업장 이동을 요구하고, 부당한 임금 체불에 맞서 집단행동을 벌이기도 했다.

▲ 2013년 5월 서울 서초에 문을 연 파독근로자기념관에서 파독 노동자들이 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노동자의 삶은 위태롭다

국내총생산(GDP) 100달러 시절에서 3만 달러 시대로 너무 급하게 훌쩍 지나온 탓일까. 파독 노동자들이 만리타향에서 겪은 아픔은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성찰로 이어지지 못한 듯하다. 파독 한국인 노동자들이 겪은 부당한 대우는 마치 대물림하듯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에게 옮아갔다. 이주노동자의 노동 환경에 대한 많은 통계와 조사가 이를 보여준다.

먼저 임금체불. 고용노동부의 올해 1~7월 통계를 보면, 이주노동자 임금체불액은 699억3900만 원으로 전체 임금체불액의 5.7%였다. 이주노동자가 국내 경제활동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등록자를 기준으로 약 3%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인에 비해 2배가량 임금체불 피해를 더 많이 겪고 있다는 뜻이다.

다음 산업재해. 노동부의 지난해 통계를 보면, 이주노동자 산재사고 사망자는 85명으로 전체 산재사고 사망자의 10.5%였다. 이 역시 이주노동자가 경제활동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고려해 계산하면, 한국인에 비해 이주노동자가 3배가량 더 많이 죽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데 이주노동자가 본국에 돌아가 잠복기가 지난 뒤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 그리고 언어 장벽, 고립된 처지 등 이유로 이주노동자의 체불임금이나 산재 대응이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주노동자의 산재 수치는 이마저도 과소추계된 것일 수 있다.

차별과 갑질, 성희롱은 그들에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20년 조사를 보면, 이주민 10명 중 7명이 '한국에 인종차별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차별 사유로는 '한국어 능력'(62.3%), '한국인이 아니어서'(56.8%), '출신 국가'(56.8%) 등이 꼽혔다. 한국외국인력지원센터의 2019년 조사를 보면, 여성 이주노동자 10.7%는 '성폭행·성희롱 피해를 당했다'고 했는데, 그 중 '성폭행' 응답이 47.4%였다.

온라인상에는 이주노동자를 향한 혐오가 넘쳐난다. 심지어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리셀 중대재해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리셀참사피해가족협의회·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는 지난달 29일 법원이 박순관 아리셀 대표를 구속했을 때 낸 성명에서 "이번 결정은 참사 발생 후 66일을 살아내는 동안 받아온 차별, 혐오, 배제의 말과 시선, 감정의 폭력에 무릎 꿇지 않고 버텨온 시간에 대한 아주 작은 보상"이라고 했다. 아리셀 참사 유족들이 참사 발생 뒤 겪은 일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2019년 12월 서울 동대문구에서 열린 '12.15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이주노동자 문화제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에서 한 방글라데시 여성이 전통 무용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노동자 없는 한국은 위태롭다

임금체불, 산업재해, 차별과 갑질, 성희롱을 그들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만약 버티지 못하고 그들이 한국을 등진다면, 우리가 기피해왔던 그 자리에 있던 그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과연 한국 사회에는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매일 식탁에 오르던 깻잎, 맛 좋은 광어와 장어를 우리는 지금처럼 손쉽게 먹을 수 있을까. 가뜩이나 비싸다고 난리인 새 아파트와 새 자동차를 우리는 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을까. 지금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 세상이 우리가 꿈꾸던 미래인가.

이제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이 나라가 이주노동자 없이는 결코 돌아갈 수 없음을. 그들도 결국 우리의 일부라는 것을. 그러니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프레시안>은 어느새 우리 안의 '또다른 우리'가 된 그들, 이주노동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서툰 언어로 한국살이의 설움을 토해냈다. '인력'이기에 앞서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는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인력이기에 앞서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법‧제도의 개선점을 살펴보고, 나아가 이주노동자들이 그들이 아닌 우리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평화로운 공존법을 "인력 아닌 인간입니다" 연재를 통해 모색해보려 한다.

 

최용락 기자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이명선 기자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입니다.

서어리 기자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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