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최재관 전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을 만나기 전 구양리를 돌아보았다. 노랗게 익어가는 논밭 너머 마을창고 위에 구양리 햇빛두레 발전소 2호가 보였다. 2024.09.10. ⓒ민중의소리
늦추거나 되돌리거나 ②-1
기후위기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에너지전환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온실가스 배출 없는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과정에서도 갈등은 발생합니다. 땅주인과 외부사업자의 주도로 태양광이 농촌에 깔리면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임차농이 반발합니다. 그렇다고 답이 없는 게 아닙니다. 농민과 주민이 태양광의 주인이 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을이 공동으로 추진한 햇빛발전 수익을 마을 전체와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마을 공동의 사업 규모를 키우면 농촌기본소득도 가능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합니다.
“이곳 5·6호 햇빛발전소만 해도 680kW(킬로와트)에요. 1MW(메가와트)라고 하면, 태양광이 많을 것 같지만 얼마 안 되죠? 시골에서는 이렇게 면적을 크게 쓰지 않고도 마을주민 전체가 혜택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제 생각 같아서는 앞으로 3MW~5MW까지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럴 수 있다면, 진짜 ‘농촌기본소득’이 되는 거죠. 5MW면 한 달에 5천만원씩 나오잖아요. 그러면 50가구에 월 100만원씩 줄 수 있고, 젊은 사람들도 들어와서 살만하지 않을까요?” - 최재관 전 청와대 농어업비서관
“농촌기본소득 100만원에 농업을 할 수 있다면, 저도 끌리네요.” - 30대 기자
지난 10일 오전 ‘구양리’에서 운영하는 햇빛발전소를 최 전 비서관과 둘러보며 나눈 대화다.
이날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 ‘구양리’를 찾았다. 전국 최초의 ‘마을공동체 햇빛발전’을 보기 위해서다. 보통 농촌 태양광이라고 하면, 소수의 땅주인이나 외부사업자가 주도한 사업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곳은 다르다. 이곳은 마을주민이 공동으로 태양광 사업을 추진해 그 수익을 마을복지에 사용한다.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로부터 이곳의 다양한 복지 시스템을 들으면 들을수록, 이날 오전에 최 전 비서관이 한 말이 떠올랐다. 최 전 비서관이 꺼낸 ‘농촌기본소득 100만원’ 얘기는 단순히 희망사항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구양리 같은 마을에서 독립적으로 실현하고 있을지도 모를 정책이었다. 구양리를 “고급 실버타운”이라고 소개한 OBS 라디오 ‘오늘의 기후’ 진행자의 표현도 과장이 아니었다.
“아침마다 병원에 모시고 가”
교통약자 위한 ‘구양리 행복버스’
“함께 먹어야 즐겁지”
계속 생각나는 무료 마을식당
아직 여름인데도 쌀알이 꽤 실했다. 밥알이 원래 저렇게 컸나 싶을 정도였다. 조선시대에는 이곳 쌀 맛이 좋고 기름져서 임금에게 바쳤다고 하는데, 정말인 듯싶었다. 마을 서쪽으로는 양화천이 흐르고, 나머지 삼면은 울창한 숲과 언덕이 둘러싸고 있으며, 토양이 비옥한 이 마을 이름은 ‘구양리’다. 보금산 주봉 고양이바위의 아홉 가지 무지갯빛이 마을에 비친 뒤 마을이 크게 형성됐다고 하여, 구양리(九陽里)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구양리’의 ‘양’(陽)은 ‘햇볕 양’ 자다. 앞에 ‘구(九)’는 숫자 9를 의미한다. 마을 공유지와 창고 지붕 등에 이미 6개의 햇빛발전을 마을 공동의 자산으로 설치했으니, 3개만 더 설치하면 정말 ‘아홉 개의 햇빛 마을’ 구양리가 된다. 노랗게 익어가는 논밭 너머로 햇빛발전소를 모자처럼 쓴 마을창고, 마을 공동농기계 주차장 등이 있는.
물론, 햇빛발전소는 구양리가 아니어도 어디를 가나 쉽게 볼 수 있다. 이곳이 소중한 이유는 단순히 햇빛발전소가 있어서가 아니다. 작은 결실이지만,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마을공동체가 햇빛발전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수익을 전부 마을주민복지로 공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구양리는 대중교통이 잘 다니지 않아 교통이 매우 불편하다. 이에, 마을은 수계기금과 햇빛발전의 수익으로 교통약자를 위한 ‘구양리 행복버스’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한 주민은 “장날이면 여럿이 모여서 행복버스 타고 시장에도 갔다 오고, 어르신들 무슨 일 있거나 아프면 구급차 대신 병원에도 간다”고 말했다. 이현 마을사무장은 “아직 딱 정해지진 않았지만, 어르신들 병원 가시는 거 힘드니까 아침 9시쯤에 모시고 간다. 또 오후에 몇 분이 뭘 사러 같이 움직일 때도 같이 다녀온다”며 “앞으로 좀 더 안정적이게 되면, 어르신들 모시고 영화도 보러 가고 날 잡아서 예방접종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구양리는 마을사무실 바로 앞 경노당에서 무료급식을 운영하고 있는데, 햇빛발전 수익으로 이를 마을 전체주민이 활용할 수 있도록 확대할 계획이다.
마침 이날 인터뷰 중 마을식당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살필 기회가 있었다. 마을 분들이 점심 먹는 모습을 사진자료로 남기기 위해 식당에 갔더니, 어르신들이 손짓하며 “얼른 밥 먹고 가라”면서 접시를 내줬다. 커다란 접시에 준비된 음식을 스스로 떠먹는 뷔페식이었다. 덕분에 달콤·매콤한 오징어초무침, 오독오독 씹히는 미역줄기무침, 빨간 콩나물볶음, 감칠맛이 일품인 볶음김치, 시원·시큼한 미역냉국으로 점심을 든든하게 먹을 수 있었다. 온실가스 없는 햇빛발전처럼, 건강식의 만족스러운 한 끼였다.
1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에 앉아 여러 주제로 대화도 하고 농담도 하며 점심을 먹다가, 70대 어르신에게 ‘여기서 밥을 먹으면 어떤 게 좋으신지’ 물었다. 어르신은 활짝 웃으며 답했다. “함께 먹으니까 즐겁지.” 이곳은 홀로 사는 어르신이 많은 농촌마을에 꼭 필요한 복지시설이었다. 마을식당은 현재 더 많은 주민이 더 자주 이용할 수 있도록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다. 마을 햇빛발전 덕분에 마을식당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을공동체 햇빛발전으로 본 실현가능한 꿈
‘농촌기본소득 100만원’
“지역·농촌 살릴 유일한 대안”
현재 구양리 67가구 마을주민이 함께 운영하는 마을공동체 햇빛발전은 ▲ 마을정미소 뒤편 마을창고 지붕에 2호(36kW) ▲ 구양리 건강관리실 앞 주차장에 4호(72kW) ▲ 마을 풋살구장 옆 창고에 1호(76kW) ▲ 공터로 변한 옛 마을축구장에 3호(131kW) ▲ 마을 안쪽 농지 옆 일반부지 두 곳에 5호(204kW)와 6호(480kW) 등 총 6개다. 마을주민이 함께 저리융자 대출로 마을 부지·시설에 햇빛발전을 설치하고, 수익을 마을복지의 형태로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봐야 얼마 안 되는 수익일 거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마을공동체 햇빛발전으로 매달 3천만원이 넘는 매출이 발생하고 있으며, 원금과 이자를 내고도 순수익은 꽤 남는다. 이현 마을사무장은 “한달에 못 해도 (순수익이) 한 1천만원 정도 된다”고 말했다. 장마로 한 달 내내 비가 내렸던 8월에도 매출은 2천만원 상당이었다. 최 전 비서관이 말한 “농촌기본소득 100만원”은 절대 허황된 꿈이 아닌 것이다.
농촌마을에서 햇빛발전 수익으로 나눠주는 기본소득과 마을 또는 국가 소유의 땅을 빌려 안정적으로 농사에 집중할 수 있다면, 기본적인 삶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 청년들이 굳이 도시에서만 아등바등 살아야 할 이유도 적어진다. 그렇다면 농촌·지역 소멸 문제 해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에너지전환의 실마리도 풀릴 수 있다. 최 전 비서관은 구양리 사례를 “만병통치약”에 비유하며 “지역과 농촌을 살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 아닐까”라고 말했다.
마을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햇빛발전 설계
이날 오전, 구양리 마을 입구 근처 그늘에서 쉬고 있는 주민들과 마을이 운영하는 햇빛발전소 얘기를 하다가 물었다. “햇빛발전소 어떠세요?” 그러자, 한 주민이 망설임 없이 답했다. “우리야 좋죠. 우리에게 혜택이 오니까. (갈등 생기지 않게 일을) 하는 사람이 힘들지.”
문재인 정부 말 농촌에서 논란이 됐던 태양광사업을 생각하면, 이곳 구양리 주민의 반응은 낯설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때 추진된 에너지전환 정책에는 일부 철두철미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큰 문제없는 농지를 ‘염해’가 있는 땅으로 판정해 태양광이 뒤덮이거나, 그 땅을 빌려 농사를 짓던 농민이 밀려나면서 농촌이 시끌시끌했다. 진보적인 농민단체조차 태양광 정책에 반대하고 나섰다. 농지에서 햇빛발전을 하려는 주최가 외부인, 땅주인, 기업이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농민들이 경작할 삶의 터전이 사라지기 시작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구양리에서 만난 김대선 전 이장도, 심지어 구양리 마을공동체 햇빛발전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전주영 새마을지도자도 처음 태양광을 농촌에서 접했을 때는 부정적이었다.
“그때는 태양광을 몰랐으니까” - 김 전 이장 “모르기도 했고, 우리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경작하던) 논이 확 줄어버린 건데” - 전 지도자, “맞아, 논도 줄고”- 김 전 이장
실제, 외부에 사는 땅주인이 버섯재배를 겸하는 햇빛발전소를 지으면서 김 전 이장이 경작하던 농지가 줄었다. 최재관 전 비서관은 당시 해당 농지에서 함께 모내기를 하다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제가 태양광 이런 걸 해야 한다고 하니까, 다들 짜증을 내는 거예요. 그거 들어와 봐야 농민들 땅만 빼앗기지, 뭐 좋은 게 있느냐면서…” 그래서 최 전 비서관이 생각한 게 땅주인이나 외부인이 주도하는 방식이 아닌, 농민과 주민이 주도하는 ‘마을공동체 햇빛발전’이었다. “해외 사례를 찾아봐도, 유럽도 농민의 반대가 심하더라고요. 근데 이익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설계된 곳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이익을 어떻게 나누느냐’라고 생각했죠.”
최 전 비서관은 ‘마을공동체 햇빛발전’ 구상을 민주당 탄소중립위원회에 제시하는 등 실현하기 위해 힘썼다. “당시 지역위원장하면서 당 탄소중립위에서 활동했는데, 농촌 문제를 해결하려면 마을공동체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 사업을 제안했어요. ... 그때는 문재인 정부 시절이니까. 곧 산업통상자원부와 당정협의를 통해 ‘햇빛두레’라는 사업이 만들어졌죠. 구양리가 이 공모에 응모해서 된 거예요.” - 최 전 비서관
그렇게 정의로운 에너지전환과 농촌의 미래까지 그려볼 수 있는 틀이 만들어졌다.
“최 전 비서관이 구상을 하고, 의논을 했어요. 실제로 보니까, 국가적으로 필요한 일인데 마냥 규제를 풀어서 추진하면, 또 돈 있는 사람들이 밀고 들어와서 수익을 가져가겠더라고요. 농민 대부분 소작농이잖아요. 그러면 농민은 피해자로 구경꾼으로 전락해 다 (농촌에서) 밀려날 상황이고요. 그래서 그렇게 가는 것보다는 반대로 농민이 빨리 햇빛발전의 주인이 되는 게 중요하겠다고 생각하고, 마을 공동의 자산을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 전주영 새마을지도자
정부 지원금 ‘0원’으로
여러 난관을 넘고 구현된 ‘햇빛두레’
산업통상자원부는 2022년 상반기까지 10개 마을을 선정해 시범사업을 실시한 후 본 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사업의 핵심 중 하나는 ‘장기·저리 융자 지원’이었다. 재정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마을공동체가 금리가 낮은 대출을 받아 햇빛발전소를 세우고 운영하며 얻은 안정적인 수익으로 차차 갚아갈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보통 이 같은 지원사업이라고 하면 정부의 보조금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억측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다만, 이 사업공모에 신청한 농촌마을은 7개뿐이었다. 그리고 5개 마을은 갖가지 이유로 사업이 무산됐다. 마을공동체 형태의 햇빛발전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결국 남은 곳은 여주에 있는 구양리와 대신3리 두 곳뿐이었다.
구양리가 지금의 ‘마을공동체 햇빛발전’ 모델을 실현하기까지는 여러 사람의 고민과 노력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마을 햇빛발전소 1호와 4호 사이에 있는 ‘구양리 햇빛두레 발전소’ 간판에는 사업자인 ‘구양리 햇빛두레 발전협동조합’(이장 지종성, 새마을지도자 전주영)뿐만 아니라, 도움을 준 이들의 이름도 적혀 있다.
※ ‘구양리 마을공동체 햇빛발전’ 사례는 두 편의 기사로 나눠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1편에서는 구양리를 직접 둘러보고 마을 주민들을 만나 나눈 대화를 토대로 이곳 햇빛발전이 특별한 이유에 대해 다룹니다. 2편에서는 전주영 새마을지도자와 구양리 마을주민들이 ‘마을공동체 햇빛발전’ 사업을 추진하면서 만난 어려움과 이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소개합니다. 또 이를 통해 갈등 없는 농촌 햇빛발전 사업은 어떻게 가능한지 최재관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의 의견을 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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