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전 부차관보는 2024년 5월 18일 KBS와 대담에서 “미국이 북한의 모든 핵무기가 미국 본토를 타격하는 걸 실제 차단할 수 있을 거라고 보긴 어렵다”라면서 “(한국을 지키기 위해) 미국의 도시 여러 개를 잃어야 한다고 미국 국민을 설득하긴 어려울 거다”라고 했습니다. 비핀 나랑 미국 국방부 전 수석차관보는 2024년 8월 1일 강연에서 “핵, 탄도미사일, 재래식 무기 능력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다양화하며 개선하는 북한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미국 군 당국자들이 얼마나 북한의 핵위협에 시달리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북한만이 아니라 러시아도 미국을 핵으로 위협합니다.
원래 러시아는 미국보다 더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륙간 탄도미사일 등 핵 투발 수단도 더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핵무기를 철저히 방어용, 억제용으로만 활용했기 때문에 미국은 러시아의 핵무기를 위협으로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러시아의 핵정책, 핵교리가 바뀌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특별 군사작전’ 돌입을 선포하면서 “러시아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핵보유국”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이 함부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지 말라는 신호였습니다. 9월 21일에는 자국 영토 보호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라며 핵무기 사용도 가능함을 시사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2023년 2월 21일 핵군축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 참여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다음날에는 “3대 핵전력 강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또 6월 16일에는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했습니다. 러시아는 이 조치가 유럽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한 미국을 따라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11월 2일에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 철회 법안에 서명하며 핵시험 재개의 길을 열었습니다. 이 조치는 미국이 1996년 이 조약에 서명만 하고 비준을 미룬 것에 대응한 것입니다.
올해 2월 29일 푸틴 대통령은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파병하면 핵전쟁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3월 13일에는 “국가의 존립과 관계되거나 우리의 주권과 독립이 훼손될 때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며 “핵무기들은 항상 전투 준비 태세에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10월 29일 러시아는 3대 핵전력인 대륙간 탄도미사일, 핵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전략폭격기를 동원한 대규모 핵전쟁 훈련을 했습니다.
11월 19일 푸틴 대통령은 핵교리 수정을 승인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습니다. 개정 핵교리의 핵심 내용은 재래식 무기로 공격을 받을 때, 동맹국이 공격을 받을 때, 핵보유국의 지원을 받은 비핵보유국이 공격할 때도 핵무기를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핵무기 사용 문턱을 크게 낮춘 건데 북한이 채택한 핵무력법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인상적입니다.
러시아는 최근 신형 핵 투발 수단도 공개했습니다. 바로 중거리 탄도미사일 오레시니크(개암나무)입니다.
대륙간 탄도미사일도 보유한 러시아가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한 게 무슨 특별한 일인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1987년 미국과 러시아(당시 소련)가 체결한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 따라 미러 양국은 기존 중·단거리 미사일을 모두 폐기하고 새로 개발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19년 미국이 조약 파기를 선언하면서 양국은 다시 중·단거리 미사일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이 아직 개발을 완료하지 못한 상황에서 러시아가 먼저 개발을 완료해 실전에서 선보이면서 자국 미사일 기술이 한 수 위임을 과시했습니다.
러시아는 미러 합의에 따라 구축된 국가핵위험감축센터(NNRRC)를 통해 미사일 발사 30분 전 미국에 자동으로 통보했습니다. 미국은 전날 “중대한 공습 가능성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이유로 키이우 주재 미국 대사관을 폐쇄했는데 아마도 러시아의 통보 전에 이미 뭔가 조짐을 발견한 듯합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오레시니크 공격 직후 러시아가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 ‘루베즈’로 공격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말 그대로 대륙과 대륙 사이를 날아가는 장거리 미사일입니다. 애초에 미국과 소련이 서로를 공격하기 위해 만든 게 대륙간 탄도미사일입니다. 따라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서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쓴다는 건 황당한 얘기입니다. 마치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한국을 공격할 거라고 주장하는 것만큼 비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우크라이나가 이런 비상식적 주장을 한 건 공포를 느꼈기 때문일 겁니다. 공개된 영상을 보면 마치 하늘에서 불벼락이 떨어지듯 매우 빠른 속도로 불덩이들이 떨어집니다. 푸틴 대통령은 오레시니크를 두고 기존 미사일을 개량한 게 아닌 완전히 새로운 미사일이며 지난해 7월 개발을 지시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오레시니크는 6개의 탄두를 탑재한 다탄두 극초음속 중거리 미사일로 마하 10의 속도로 날아갑니다. 이런 미사일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막을 방법도 없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이 오레시니크를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는 이런 유형의 미사일을 사용하기 전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민간인에게 사전 통보해 대피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즉, 어차피 막을 수 없는 무기라서 미리 알려줘도 상관없고 민간인이라도 대피할 수 있게 배려하겠다는 겁니다.
오레시니크는 아직 실전배치하지 않은 미사일입니다. 이번에는 빈 탄두로 시험발사를 했습니다. 실전에서 바로 시험한 걸 보면 상당히 자신 있었던 모양입니다. 푸틴 대통령은 탄두의 온도가 섭씨 4천 도에 이르기 때문에 목표물이 먼지로 분해된다고 하였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이번에 오레시니크의 공격을 받은 유즈마쉬 공장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목격자에 따르면 공장이 먼지로 변했다고 합니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시험이 성공적이라며 오레시니크를 대량 생산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이와 비슷한 다른 무기들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가 오레시니크를 공개한 의도는 분명합니다.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무기를 지원하고 이걸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도록 허용한 것에 대한 ‘응징’이자 만약 더 나아간다면 유럽 전역에 핵공격을 하겠다는 경고입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24일 소셜미디어에 “유럽은 탄두가 핵일 때 오레시니크가 어떤 피해를 줄 수 있는지, 이 미사일을 격추할 수는 있는지, 유럽 각국 수도에 얼마나 빨리 도달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다”라면서 “답은 다음과 같다. 피해는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이고, 현대적인 방법으로 요격할 수 없고, 몇 분이면 충분하다”라고 자문자답했다. 또 “방공호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일한 희망은 러시아가 발사 전에 미리 경고해 주는 것뿐”이라면서 “따라서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전쟁 지원을 중단하는 것이 낫다”라고 경고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던 트럼프가 당선된 직후인 11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프랑스를 방문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하면 유럽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월 우크라이나에 파병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이에 관한 논의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정상은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했습니다. 정상회담 뒤 나온 발표에는 “우크라이나 상황과 관련해 긴밀히 협력하겠다는 두 정상의 약속을 재확인했고, 필요한 기간 우크라이나를 변함없이 지원하겠다”라고만 하고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유럽의 두 핵보유국이 만났지만 파병이나 참전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러시아의 핵위협 때문입니다.
이제 우크라이나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군인도, 무기도 없고 도와줄 나라도 없습니다. 최근 우크라이나는 군인 부족을 해결하려고 30세 이상 남자 대학생 2만 3,448명을 병역 기피자로 간주해 강제 퇴학시켰습니다. 하지만 이걸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의 핵위협 때문에 제대로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최근 미국과 독일은 우크라이나가 징집 연령을 더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지난 4월 징집 연령을 27살에서 25살로 낮췄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18살로 더 낮추라는 것입니다.
이에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관계자는 군인이 아니라 무기가 부족하다고 반박했습니다. 서방이 무기 지원을 제대로 안 하면서 관심을 돌리려고 징집 연령 문제를 꺼내 들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징집 연령을 낮췄다가 강력한 국민 저항에 직면할 것을 걱정하는 젤렌스키 정권의 변명으로 보입니다. 진실은 군인과 무기 둘 다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10월 29일 러시아가 3대 핵전력을 동원한 대규모 핵전쟁 훈련을 하고 이틀 뒤인 10월 31일 북한이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포-19형을 시험 발사했습니다.
북한은 화성포-19형을 두고 “최종 완결판 대륙간 탄도미사일”, “세계 최강의 전략 미사일”이라 불렀습니다. 화성포-19형은 북한이 지금까지 발사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가운데 가장 사거리가 길고 크기도 큽니다. 차량 이동식 미사일 가운데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표현과 실제 크기로 볼 때 다탄두 미사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이 50년 전에 개발해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유일한 대륙간 탄도미사일인 미니트맨 III과는 여러모로 비교해도 훨씬 우월한 미사일입니다.
|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