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세월호 세대가 '탄핵의 광장'으로 나온 이유

[인터뷰] 남태령 연설로 화제된 사저 "우리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 들으면 안 되는 세대"

25.01.29 19:10l최종 업데이트 25.01.29 19:10l
 
2030여성들은 어떻게 살아왔길래 광장에 뛰쳐나올까. 우리 이야기는 우리가 기록한다. "백날 지워봐라, 우리가 사라지나."[기자말]
12월 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시도 이후, 2030 여성들은 여의도, 남태령, 한강진 등지에서 철야와 집회를 이어가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시위 초반, 일각에서는 '정치를 잘 모르는 여성들이 응원봉을 들고 놀러 나가듯 시위에 참여한다'는 비난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남태령에서의 자유발언으로 화제가 된 사저(가명)의 이야기는 그런 편견을 뒤집는다.
 
"엄마, 아무도 안 나서는데 니가 왜 나서냐고 했제. 엄마, 모두가 여 있다. 자랑스러운 엄마아빠 딸이 가장 앞서 나가고 가장 나중에 나가는 사람이 될 거다. 와 나여야 하냐고? 내가 안 될 이유는 어디 있는데!"

올해 대학교 2학년인 그는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가려던 시기에 세월호 참사를 겪은 '세월호 세대'다. "아무도 안 나서는데 왜 네가 나서냐"는 물음에, "모두가 여기 있다"며 가장 앞서 나가고 가장 나중에 떠나는 사람이 될 것임을 당당하게 외쳤다. 지난달 30일 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래는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

스키 고글과 우유, 세월호 세대의 집회 준비

 
'윤석열 체포구속' '사회대개혁' '개방농정 철폐' 등을 요구하며 서울로 향하던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소속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대행진’이 2024년 12월 21일 오후 서울로 들어서는 서초구 남태령고개에서 경찰에 막혔다. 농민들이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가운데, 서울 도심에서 열린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수백명이 합세해 함께 농성하고 있다.

- 집회는 처음이라고 하셨는데 어땠나요?

"많이 무서웠어요. 다치거나 잡혀갈까봐 걱정도 컸죠. 경찰이 캡사이신 희석액 888L을 구매했다는 기사도 봤어요(2024년 2월 23일 <동아일보> [단독]경찰, 집회 대응용 캡사이신 희석액 888L 대량 구매 - 편집자 주). 그것을 보자마자 스키 고글을 샀죠. 캡사이신을 뿌리면 눈을 닦을 우유랑 식염수도 챙겼고요. 신분증은 일부러 안 가져갔어요. 혹시라도 추적당하거나 잡혀갈까봐 평소에 쓰는 교통카드 대신 집회 이동용으로만 쓰는 교통카드를 만들었죠."

- 의외의 대답이네요. 남태령에서의 발언이 상당히 당당해서 두려움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무엇이 그렇게 무서웠나요?

"저는 계엄이라는 걸 책으로 접했잖아요. 그리고 계엄이라는 게 항상 폭력적인 유혈 사태를 동반했잖아요. 책에서 보던 일이 제 눈 앞에 실제로 펼쳐질거라는 공포감이 컸어요. 실제로 시간이 지나면서 밝혀지는 사실들을 봐도 그렇고요. 선거관리위원회로 간 군인들은 니퍼를 소지했다고 했잖아요. 혹시 몰라서 도망칠 수 있도록 집 근처 성당과 집회 장소 근처의 성당을 알아두기도 했죠. 정말 많이 무서웠어요."

계엄보다 더 두려운 것은

- 그럼에도 계엄 직후 국회에서 철야를 이어나가고, 여의도·남태령 등 다양한 집회에 참여했군요.

"사실 계엄군보다 주변 사람들이 그런 폭력적인 사태를 보고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두려웠어요. 2024년 12월 28일에 부산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 사무실에 항의하던 날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도 서면 집회 마치고 참여했는데, 어떤 사람들이 계속 시끄럽게 뭐하는 짓이냐고 욕도 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 밀치고 그랬어요. 자기 잠을 못 자게 한다면서요. 제가 가만히 있으면 결국 그런 체제에 적응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만 남게 되잖아요. 그래서 무섭긴 했지만, 안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 혹시 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나요?

"네. 사실은 2022년 이태원 참사 때, 그때가 제 생일이었거든요. 10월 29일. 친구들이랑 놀고 집에 와서 쉬고 있는데, 참사 소식이 하나둘씩 올라오는 거에요. TV 뉴스에서도 소식이 계속 나오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그걸 보시면서 '저거 다 놀러 간 애들이 문제지', 이러는 거예요. 그때 너무 놀랐어요. '어떻게 놀러 간 애들이 문제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하고요."

- 특히 어떤 점이 그렇게 충격적이었나요?

"그 사람들은 그냥 일상을 보내고 있는 거였잖아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문제가 없었잖아요. 올해는 경찰이 안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런거였잖아요. 신고도 계속 들어갔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들 책임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게 어떻게 피해자들 잘못이에요? 부모님이 그런 얘기를 하는데 어떻게 화를 안 내겠어요? 그때부터 가족들과는 생각이 많이 다르다고 느꼈던 거 같아요."

'왜 너여야 하냐'고 묻는 엄마에게

 
'윤석열 체포구속' '사회대개혁' '개방농정 철폐' 등을 요구하며 서울로 향하던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소속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대행진’이 2024년 12월 22일 새벽 서울로 들어서는 서초구 남태령고개 수도방위사령부앞 도로에서 경찰에 막혔다. 농민들이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가운데, 서울 도심에서 열린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수백명이 합세해 함께 농성하고 있다.

- 남태령 발언에서 어머니께 하는 이야기로 화제가 됐는데, 그런 배경이 있었군요.

"사고 현장 뉴스들이 쏟아지는 걸 보면서 무력감이 너무 컸어요.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가족들과 대화해도 내가 하는 말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느낌에 화가 많이 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가만히 있지 말자, 뭐라도 해보자, 이런 마음이 강하게 들었던 것 같기도 해요.

사실 발언하러 올라가기 직전까지도 그 부분은 말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기다리는 동안 갑자기 그 얘기를 꼭 해야겠다 싶은 거예요. 부모님이나 친척들 모두 뉴스에 관심이 없긴 하지만, 한 명쯤은 뉴스를 보거나 인터넷에 퍼진 걸 보고 제가 무슨 마음인지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 가족들도 내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 가족들에게 어떤 마음을 그렇게 꼭 알리고 싶었던 걸까요?

"처음에 집회에 간다고 했을 때, 엄마가 30분 넘게 화를 냈어요. '다들 안 나서는데 왜 네가 나서냐. 왜 네가 해야 되냐'는 얘기를 계속 하셨어요. 거기에 대답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은 제 이야기를 안 들어주셨지만, 지금 이 사람들은 저랑 같은 마음으로 보인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 앞에서는 이야기할 수 있겠다 싶었죠. 여기에 다들 있다고, 내가 가만히 있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냐고."

"가만히 있으란 말을 들으면 안 되는 세대"

- 부모님은 사저님이 시위에 나가는 걸 지지하지 않았는데, 무섭고 두려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 많은 집회 현장에 나갈 용기를 얻었나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어요. 당시 많은 학교들이 수학여행을 취소했어요. 그런데 제가 다니던 학교는 수학여행을 다녀왔어요. 심지어 배를 타고 다녀왔어요.

그때 교장선생님이 학부모들을 설득하면서 '이건 어른들이 잘못해서 생긴 사고고, 어른들이 책임져야 할 사고다. 아이들이 피해를 봐선 안 된다. 아이들 수학여행에 동의해주시면 저희가 책임지고 인솔하겠다'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때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그래, 이건 어른들의 잘못이지'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저희도 애들이라 잘은 모르지만 큰일인 건 아니까 걱정은 됐죠. 그래도 수학여행을 간다는 사실에 다들 엄청 신났던 것 같아요. 도착해서 별도 보고 바다도 보고 그랬는데, 그런 경험들도 다 너무 좋았어요. 교장선생님께서는 평소에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달려오라고 말씀하셨던 분이에요. 그런 어른을 만날 수 있어서 제가 잘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정말 책임감 있는 어른의 모습이네요. 그런 교장선생님의 모습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아이들을 위해 힘써주고 어른답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어른이 되면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이번 집회 때 고등학생들이 발언하는 모습을 보는데, 그게 너무 마음에 걸리는 거예요.

'이건 어른들의 잘못이잖아. 저런 아이들도 이렇게 나서서 말하고 있는데 어른인 내가 가만히 있는 게 맞을까?' 그런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지난 대선 때는 투표권이 없었지만, 이제 성인이 됐으니 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느꼈어요."

- 여전히 집회에 참여 중이지만, 그래도 이번 집회 참여 경험으로 바뀐 점이 있나요?

"저도 청소년 때 어른들에게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어요. '여자애가 무슨 운동이냐' '여자애가 왜 이렇게 애교가 없냐'라는 말들을 들으면서요. 어른들이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에게 잘못을 돌리는 걸 들었을 때도 그랬고요.

그런데 이제는 제가 어른이 됐으니, 아이들을 위해 어른인 제가 목소리를 낼 수 있잖아요.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게 이번 집회 참여를 통해 가장 크게 바뀐 점 같아요."

진압의 공포 속에도 광장으로 나가는 힘

 
비상행동,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 1월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 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저는 스키 고글과 우유를 챙겨야 하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집회에 나갔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가장 앞서 나가고 가장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겠다"는 말은 단순한 외침으로 들리지 않았다.

세월호 세대가 짊어진 책임감과, 과거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들으며 침묵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어른이 돼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나서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제 이 세대의 목소리는 사회를 움직이는 변화의 동력이 되고 있다. 폭력적인 진압의 공포 속에서도 스키 고글과 우유를 들고 광장으로 나가는 이들의 연대와 책임감은, 치기 어린 행동이 아니라 과거의 아픔을 넘어 미래로 향하는 발걸음일 것이다.
▣ 제보를 받습니다
오마이뉴스가 12.3 윤석열 내란사태와 관련한 제보를 받습니다. 내란 계획과 실행을 목격한 분들의 증언을 기다립니다.
(https://omn.kr/jebo) 제보자의 신원은 철저히 보호되며, 제보 내용은 내란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데만 사용됩니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브런치에 아카이빙 목적으로 게시될 수 있으며, 추후 인터뷰집 출간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세월호#이태원참사#윤석열#남태령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