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제24차 전원위원회에 자리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날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대통령의 헌정질서 파괴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및 의견표명의 건'을 재상정해 논의할 예정이다. 2024.12.23. ⓒ뉴스1 1월 26일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는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죄로 기소했다. 특수본은 “증거인멸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고, “현직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내란우두머리 혐의에 대해서만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군·경 관계자에게도 수차례 전화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진술 등 정황 증거도 다수 확보한만쿰, 군과 경찰을 동원해 헌법기관인 국회를 봉쇄한 것은 형법상의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당시 방송을 통해 모두가 군대가 국회 창문을 깨고 들어가고, 국회의원을 국회 안에 못 들어가게 경찰이 막는 것을 직접 보았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과 그를 비호하는 세력들은 내란이 아니라고 우긴다, 심지어 헌법재판소 심판에 출석해서도 1월 23일 조대현 윤석열 대통령 대리인은 “국민은 이 사건 비상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반국가세력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내란죄라고 몰아서”라고 했다. 계몽령이라는 말은 극우단체의 집회에서 나온 말을 재판에서 사용하리라고 생각도 못 했다.
그런데 이러한 억지 주장을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이라는 사람들도 하고 있다니 인권활동가로서 참담하기까지 하다. 헌법 77조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및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12월 3일 당시에는 평화로운 상황이었고 재난 상황도 아니었다.
국내외 인권 기준에 반하는 비상계엄
비상계엄의 요건을 제한하고 있는데, 이는 군대의 힘, 즉 무력으로 헌법에 보장된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실제 당시 발표된 포고령 1호에는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만이 아니라 영장 없이 체포가 가능하다고 명시됐다. 심지어 비상계엄군의 권한에도 없는 위법적인 정치활동 금지까지 포고령에 담았다.
한국이 가입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약칭 유엔자유권규약)’ 4조 1항도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는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공공 비상사태의 경우’로 한정한다고 되어있다. 또한, 유엔자유권위원회 일반논평 제29호에서는 전시 상황에서도 ‘국가의 존립(life of the nation)’에 대한 위협을 구성하는 경우에만 필요한 지리적, 시간적, 실질적 범위 내로 엄격히 제한하여 이행정지를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12월 3일 포고령처럼 대한민국 전체에 포괄적인 인권 제한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실제 비상계엄 선포 당시 한국은 자유권 규약에서 명시된 인권보장의 의무를 정지할만한 전쟁이나 비상사태가 없었다. 이렇듯 12.3 비상계엄 발포나 포고령은 헌법과 국제인권규약을 위반하는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인 12.3 비상계엄에 대해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는 제대로 된 입장을 내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내부로 계엄군이 진입하고 있다. 2024.12.04. ⓒ뉴스1
실제 비상계엄 선포로 국회의원만이 아니라 국회의원 보좌관, 국회의사당에서 군대와 마주한 시민들의 인권이 침해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노동권을 주장하기 위해 농성하던 노동자는 ‘집회의 자유를 금지한’ 포고령을 근거로 농성 종료를 해야만 했고, 동덕여대 학생들도 학교에서 포고령을 근거로 협박을 받기도 했다.
시민의 인권을 준수해야 할 인권위원이 대통령의 특권을 주장
이렇게 모두가 방송으로 본 인권침해행위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위원이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대통령을 옹호하기에 급급했다. 김용원 상임 인권위원은 공수청의 체포영장은 불법이고 내란이 아니라는 내용의 긴급안건을 5명의 인권위원들이 ‘긴급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이라는 이름으로 1월 13일 인권위 전원위원회에 상정하려 했다. 해당 문건에는 △한덕수 탄핵소추 철회 및 신속 기각 △윤석열에 대한 탄핵 심판 시 형사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헌법재판소의 심판 절차를 정지하고 심판 연장 검토, △계엄 관련 형사 사건 재판에서 적극적 보석 허가 △계엄 관련 범죄 수사 시 불구속 수사 등의 '방어권'을 보장 등이 담겼다. 이뿐만 아니라, 비상계엄은 내란죄가 될 수 없으며 대통령의 통치행위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입장과 동일했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시민의 인권을 옹호해야 할 인권위원이 대통령에 의한 인권침해가 발생했는데 오히려 대통령을 옹호하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여러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이를 막기도 했고, 이후에 함께 안건에 이름을 넣었던 강정혜 씨는 내용을 자세히 몰랐다며 잡아땠고, 김종민(원명 스님)위원은 조계종의 입장과 다르게 해당 안건에 연명한 것이 문제가 돼서인지 인권위원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김용원 상임 위원은 여전히 인권과 무관한 행보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는 1월 13일 적법하게 발부된 체포영장을 거부한 대통령의 행태도 옹호하더니, 며칠 전에는 TV조선과의 통화에서 “윤 대통령의 구속 기한은 2025년 1월 25일 오전 10시 32분에 만료”되었으니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석방을 주장했다. 검찰이 구속 만료 기한을 1월 27일로 본 것은 잘못됐다며 “일(日) 단위가 아니라 시(時) 단위로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용원 위원은 일관되게 반인권 비상계엄으로 침해당한 시민의 인권은 보지 않고, 대통령의 특권만을 주장하는 것은 인권위의 독립성에 반한다.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소위 파리원칙)'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국가인권기구의 독립성이다.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방지하고 감시해야 하는 것이 국가인권기구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보호관이 지난해 8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센터에서 고(故) 채수근 상병 사건 수사관련 긴급 의견표명 기자회견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2023.08.09 ⓒ뉴시스
실제 2001년부터 2023년까지 인권위에 진정 사안 182,345건 중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는 139,500건으로 76.5%나 차지한다. 이 중 경찰에 의한 인권침해는 19.1%로 가장 높고, 검찰과 군, 국정원 등에 의한 인권침해다. 불법적인 12.3 비상계엄 선포는 군과 경찰의 초법적 권한 행사를 가능케 하니 만약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의결이 되지 않았다면 우리의 인권은 얼마나 침해당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도 김용원 위원이 쓴 안건에는 비상계엄으로 심각하게 다친 사람이 없다며 비상계엄은 정당한 통치행위라며 옹호한다.
이에 인권단체들의 연대체인 국가인권위원회 바로잡기 공동행동은 비상계엄으로 인해 인권침해를 겪은 모든 시민들의 집단 진정을 받고 있다. 인권위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도록 촉구하려는 것이다.
인권위원 인선 절차 등 법 개정 필요해
김용원 위원의 이러한 반인권 행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의기억연대가 일본군위안부 성노예제 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에 대해 혐오세력이 방해하는 것을 진정하자 이를 소위 전체의 의견을 묻지 않고 ‘합의가 안 됐으니 기각’이라고 일방적으로 기각을 선언했으며, 수해를 방지하러 갔다가 사망한 군인 문제를 해결하려면던 박정훈 대령에게 압력을 가한 사건이 긴급구제로 진정이 들어오자 핑계를 대며 회의조차 열지 않았던 인물이다. 항의하러 온 군 유가족에 대해 감금했다며 수사의뢰까지 한 인물이다.
그 외에도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안건을 넣은 강정혜, 이한별, 한석훈 등 모두 인권기준에 반하는 안건심의로 유명했던 위원들이다. 이번에 안건에 연명하지는 않았지만, 이충상 위원은 성소수자 혐오발언과 이태원참사 유족을 모욕하는 발언으로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또한, 이번 안건 외에도 그동안 전원위원회나 상임위원회 때마다 김용원, 이충상 위원은 막말과 반인권 발언을 일삼아서 회의가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이충상 위원은 법안에 대한 의견표명 안건이 나올 때마다 민주당이 지지한 안건인가를 묻고, 진정사안이 정부 비판적인 것이 아니냐는 말을 서슴지 않으며 인권위 독립성을 무시해왔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은 유엔인권기구가 수차례 권고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한 인물이다.
이렇게 국내외 인권기준도 무시하고 정권 옹호적인 판단과 소수자 혐오발언을 일삼는 사람들이 인권위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인권위원 인선 절차의 공백을 악용했기 때문이다. 하여하기 때문이다. 법에는 인권위원 인선은 국가기관(국회 4명, 대통령 4명, 대법원 3명) 지명권을 주는 것으로만 되어 있다 보니 각 권력기관들이 보은인사하듯이 인권위원으로서 자격이 없는 자를 인권위원으로 지명했기 때문이다. 인권위원장 등 대통령 지명의 경우 한시적인 후보추천위원회가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독립적이지도 않고 추천위원회의 짧은 운영기간과 권한으로 인권위원으로 추천되거나 자천한 인사들이 이력서에 자신의 반인권 전력을 숨기면 검증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또한, 인권위의 독립성을 위해 인권위원의 임기를 보장하도록 하다보니 반인권 언행을 일삼는 인권위원들이 임기를 다 채우며 인권을 후퇴시키고 있다. 이제 이러한 인권위원들을 독립성을 보장하면서도 제재하는 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더이상 극우정치인들이 인권기준에 반하는 인물을 인권위원으로 임명돼 그들이 국내외 인권기준을 무시하며, 한국의 인권기준을 뒤로 후퇴시키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윤석열의 파면과 처벌을 넘어서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 등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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