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3-11-01 오전 7:36:45
최근 인천 모자 살인사건이 어머니와 형을 동생이 무참히 살해한 '존속살해'로 드러나 '존속살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프레시안>은 존속살해를 단순한 엽기사건으로 치부하지 않고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로 했다. 지난 편에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모가 자녀에게 집착하는 사례들을 알아봤다. 자녀의 성공에 대한 부모의 강박은 사랑하는 자녀를 자살이라는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번 편에서는 부모님의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집을 버리고 나온 '가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전문가들은 자녀의 가출도 존속 살인이나, 부모를 차마 못 죽이고 자신을 죽이는 청소년 자살 사례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아도 '존속살인'이 증가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경고한다.
경제적,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청소년에게 집이란 보호막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다. 그럼에도 많은 청소년이 생존의 위협을 감수하고, 또 '불량아'라는 사회적 낙인을 감수하면서 가정의 울타리를 박차고 나오고 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부모를 죽일 수 없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가출 청소년이 될 수밖에 없었나. 그들에게 집이란,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 쉼터에서 거주하는 가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존속 살인의 씨앗을 낳는 가정의 참상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가출병'? 내가 집을 버린 게 아니라, 집이 날 쫓아냈다"
"저, 그 집에 일주일만 더 있었으면 아마 저승 갔을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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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한 청소년 쉼터. ⓒ새날청소년세상 **청소년쉼터 제공 |
영재(가명·17)는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잘한 일이 '가출'이라고 했다. 옆에서 손장난을 치던 서진(가명·16)이와 우승(가명·17)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세 소년은 모두 '가출 청소년'이다. 영재는 3개월, 우승이는 1년, 서진이는 1년 반 전쯤 집을 나와 서울 강북의 한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집을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 배운 대로라면 집은 '안식처', '보호막'이어야 하지만, 이들에게 집은 오히려 위협적인 공간이었다.
"아빠가 싫었어요. 제가 눈에 보이기만 하면 때렸어요. 알코올 중독 증세도 좀 있었고. 맨날 때리는데 어떻게 같이 살아요.", "엄마 하는 얘기가 다 듣기 싫어요. 미칠 것 같아요."
영재와 우승이는 아빠의 무차별적인 폭행에, 서진이는 엄마의 언어 폭력에 시달려왔다. 특히 "걸음마 떼고부터 계속 맞았다"던 우승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가출을 했다. 아빠에게 맞는 게 두려워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면 그를 기다리는 것은 또 폭력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정신병원에 한 달 정도 강제 입원까지 시켰어요. 저더러 '가출병'이래요. 걔랑은 말이 안 통하니, 제가 정신병원 의사한테 그랬어요. '의사 양반, 돈 벌려고 생각하지 말고 나 내보내라'고요."
이들은 부모님을 '엄마', '아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스스럼없이 '걔', '그 새끼'라고 불렀다.
"자식 패는 게 무슨 부모에요. 부모 소리 들을 자격도 없어.", "짜증 나요, 다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어요.", "그런 새끼는 세상에서 사라져야 해요"
이들이 생각하기에, 부모가 자신에게 하는 상습적인 신체적·언어적 폭력엔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때리는 이유를 왜 나한테 물어봐요. 때린 걔한테 물어봐야죠.", "그냥 욕하고 때려요. 그냥. 기분 안 좋다고 욕하고, 말 안 듣는다고 때리고 그래요."
매일같이 '이유 없는' 폭력이 계속됐지만, 가정 내에서 그 폭력을 막아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재와 우승이의 부모는 일찍이 이혼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그들의 보호막이 되지 못했다. 사실 이혼 전에도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을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 아빠의 폭행과 엄마의 방관 속에서 지친 영재와 우승이는 부모와 한가족이기를 포기했다. 이들에게 가족이란 있으나 마나 한, 차라리 없는 게 나은 사람들이었다.
"가족이요? 생각도 하기 싫은 사람들."(서진)
"몰라요. 밥 주는 사람?"(영재)
"넌 밥이라도 줬네, 저는 밥도 먹지 말래요. 그래서 집에선 밥을 못 먹었어요. 집 나오기 전에 억울해서라도 (새)엄마가 아빠 준다고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놓은 거 다 먹었어요. 그래서 또 맞고."(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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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ylifecarenews.com |
집을 떠나고선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법적 미성년자인 그들을 받아줄 곳은 별로 없었다.
"일단 살아야 하니까 돈부터 벌었어요. 식당에서 푼돈 받으면서 서빙하고, 피시방 알바도 하고, 패스트푸트점에서도 일하고. 감자는 125도, 치킨은 250도에서 30초 굽기. 아직도 안 잊어버렸어요."(영재)
"초등학교 때 가출하면 놀이터에서 자고, 작년에 나올 땐 한 달간 친구들 집을 돌아가면서 얹혀살았어요. 친구들 부모님이 나가시면 들어와서 쪽잠 자고, 걔네 부모님 들어오시면 다시 나가고."(우승)
이들에게 부모가 '그 새끼'인 것처럼, 부모가 사는 집은 제집이 아니었다.
"어제 친구랑 메신저 하다가 뭐하냐고 물어 오길래 '집 간다'고 답장했더니, '드디어 돌아가는 거야?'라고 답장이 오더라고요. 집은 무슨, 쉼터지."
이제 이들에게 '집'은 부모와 살던 집이 아닌, 지금 그들이 몸을 뉘는 쉼터다. 쉼터는 갈 곳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주고, 편하게 잘 곳도 제공하는 공간이다. 무엇보다 여기선 적어도 맞을 일이 없으니 '천국'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시 집에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영재의 경우, 평일엔 쉼터에 있다가 주말엔 '집'에 가는 조건으로 쉼터에 들어왔다. 쉼터 선생님들의 권유 때문이지만, 아예 마음이 없었다면 권유를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터였다. 서진이도 이따금 부모님과 통화를 하며 관계를 완전히 끊지 않았다. 그리고, 우승이는 아버지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다.
"저도 마음을 풀고는 싶은데요. 저한테 지금까지 미안하단 말 한마디도 안 했거든요. 그냥 잊어버리래요. 자기 자식 때려놓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이미 늦은 것 같지만 그래도 사과 한마디는 듣고 싶어요."
사실 부모의 폭력은 이들에게 신체적 고통보다 심적 고통을 더 크게 남겼다. 세 아이 모두 부모에게서 한 번도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 적이 없다고 했다.
"돈 준 거 빼곤 해준 게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근데 바라는 거 별로 없어요. 절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궁지에 몰리는 아이들, 가정 폭력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이들이 현재 머물고 있는 쉼터의 이수희(가명·41) 소장은 세 아이를 그저 '질 나쁜 아이들'이라고 낙인찍어 버려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 가출 문제를 온전히 아이들의 문제로만 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궁지에 몰리고 몰려서 여기까지 왔어요. 한창 보호와 애정을 받고 커야 할 나이에, 가정과 학교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서 온 거죠. 청소년들이 무슨 힘이 있나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이들은 아무런 힘이 없어요. 그런 아이들이 집을 스스로 박차고 나온 건, 말하자면 그 아이들 나름의 삶의 '투쟁'이에요."
이 소장에 따르면, 청소년들에게 가출은 자신에 대한 고통과 억압을 견디는 나름의 방식이다. 세 아이는 "그런 새끼는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 집에 일주일만 더 있었으면 아마 저승 갔을 것"이라고 했다. 부모님이 죽었으면 좋겠지만 스스로 해칠 수 없고, 또 스스로를 해칠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가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많은 청소년이 가정 불화로 고통을 겪고 있다. 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전국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지난 6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08~2012년 초·중·고교학생의 자살 원인은 '가정 불화' 279명, '염세' 131명, '성적 비관' 90명, '이성 관계' 48명, '질병' 18명, '학교 폭력' 11명 순으로 나타났다.
자살할 용기가 없는 청소년들은 세 아이처럼 집을 버린다. 여성가족부의 '2013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지금까지 한 번 이상 가출을 경험한 중·고등학생의 61.3%가 가출 원인으로 '부모 등 가족과의 갈등'을 꼽았다. 그다음 이유는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12.8%였다. 이들 통계가 말하는 것은, 가족과의 불화로 고통받는 청소년들에게 가출은 선택 사항이 아닌 유일한 탈출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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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쉼터에서 미술치료를 받는 가출 청소년들 ⓒ새날청소년세상 **청소년쉼터 제공 |
이 소장은 "계속 궁지에 몰리면 쥐가 고양이를 물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힘없는 자녀들이 더욱 극단적 상황에 몰리게 되면 존속 살인과 같은 끔찍한 범행을 저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존속 살해범 가운데에는 과거 부모님으로부터 상습적으로 폭행을 경험한 경우가 많다.
지난 8월 경기도 수원시에서 친구들과 공모해 아버지를 살해한 20대 남성 이모 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씨의 일차적 범행 동기는 아버지의 재산이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상습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표면적으로는 경제적 요인이 크다 할지라도, 평소 아버지의 폭행에 대한 보복심리가 더해져 결국 존속 살해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 다른 가족 구성원을 대신해 존속 살인을 저지르는 예도 더러 있다. 지난 7월 경기도 용인에 사는 20대 여성 여모 씨는 10년 전부터 어머니를 때린 아버지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숨지게 했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결국 부모에게 고스란히 되돌린 셈이다.
김 소장은 부모 중 상당수가 자녀에 대한 폭력을 애정으로 착각한다고 말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아서, 못된 행동을 해서 때리고 폭언을 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그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부모님이 아이들을 때리거나 욕할 때, 정확히 어떤 문제가 있어서 혼을 내겠다는 말은 하지 않아요. 폭력을 쓰는 행위 자체도 교육적이지 않고요. 그러니 아이들은 부모님의 폭력을 애정이 아닌 미움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증오를 키우게 됩니다."
세 아이 또한 부모가 자신에게 폭행을 행사하거나 거친 언사를 내뱉는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미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에게서 제대로 된 애정을 받았다면 부모를 해치는 일까지는 일어나지 않겠죠. 결국, 모든 걸 아이들 탓으로만 돌리는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가출 청소년 문제와 존속 살인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자녀 양육에 대한 부모의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합니다."
세 아이는 부모의 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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