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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투쟁'에서 밀리면 내란 진압도 힘들다



이봉수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원장

hibongs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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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 입력 2025.11.30 14:27

  • 수정 2025.11.3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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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수 현장칼럼] 엘리트 카르텔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④

우리나라 엘리트 카르텔은 내란을 주동하고도 반성은커녕 책임도 지지 않는 태도를 취하는데 이들이 어떻게 민주주의 복원을 방해하는지 분석하고 제동을 거는 방안을 모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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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겐-벨젠 수용소를 해방시킨 영국군은 방치된 시신들을 수백 구씩 집단매장했다. 안네 프랑크와 언니 마르고트 프랑크가 묻힌 곳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집단매장지 앞에 비석을 세워놓았다. © Pixabay

프랑스, 독일, 폴란드, 남아공… 그리고 한국이 비극을 극복하는 방법

 

2000년에 한겨레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중년의 만학도로 6년간 영국에서 살 때 방학이 되면 차를 몰고 유럽 전역을 여행하곤 했다. 여행계획을 짤 때 가족이나 친지들의 불평은 전쟁터나 학살지, 전쟁박물관, 포로수용소, 공동묘지 같은 비극의 현장을 왜 그리 많이 집어넣느냐는 거였다. ‘다크 투어리즘’이란 새 용어에 ‘죽음과 재난의 매력’이란 설명을 붙여야 했던 말콤 폴리와 존 레넌의 책<Dark Tourism: The Attraction of Death and Disaster>이 2000년에 나왔으니 그런 여행이 유행을 타기도 전이었다.

 

암스테르담을 여행할 때는 안네 프랑크의 은신처를 방문했다. 프랑크네 일가는 2년간 숨어살던 건물에서 체포돼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간다. 그후 안네는 언니 마르고트와 함께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이감된 뒤 둘 다 최악의 생존환경에서 전염병에 걸려 숨진다. 영국군이 수감자를 전원 구출하기 불과 한 달 전이었다.

 

“종이는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

 

소설가나 기자가 되는 게 꿈이던 사춘기 소녀 안네는 언젠가 일기를 출판할 생각으로 밝히길 원치 않는 내용은 일부 편집한 뒤 <뒤채>라는 그럴싸한 책 제목까지 지어 두었다. 앞 건물에서 책장으로 가려진 비밀통로로 연결된 뒤채가 은신처였던 것이다.

 

안네는 ‘기록의 위대성’을 나름대로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일기에 ‘종이는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고 쓴 적이 있다. 그는 또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을 주고 싶다, 난 죽어서도 영원히 기억되고 싶다'고 썼다. 그는 또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인간 내면의 선함을 믿는다’고 했다. 그의 소망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일부는 이뤄졌다. 미국 대통령 케네디는 “역사를 통틀어 큰 고통과 상실의 시기에 인간의 존엄성을 대변해 온 많은 사람들 중에서 안네 프랑크만큼 설득력 있는 목소리는 없다”고 말했다.

 

가치의 경중을 따질 일은 아니지만, 나는 안네의 일기보다 훨씬 더 위대한 것이 제주4.3 관련 기록물이라고 생각한다. 둘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안네의 일기는 2009년에 등재됐고 4.3기록물은 올 4월에야 등재됐다. 한 소녀의 일기는 600만 유대인을 학살하는 광기의 시대에 반성과 희망의 메시지로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에 견주어 4.3기록물은 너무나 길고도 험한 과정을 거쳐 방대한 기록물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전자를 압도한다.

 

‘12.3의 밤’이 되살린 추미애의 기억

 

제주4.3기록물은 1만 4673건이나 되는 희생자와 유족들의 생생한 증언과 녹취록, 군법회의 수형인명부와 옥중엽서, 시민사회의 진상규명운동 기록과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로 구성돼 있다. 한마디로 개인 기억의 편린들을 집단기억으로 되살리고 기록한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다.

 

지난 13~14일 열린 제주4.3평화포럼에선 ‘제주4.3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4.3의 세계화’를 주제로 추미애 국회법사위원장이 기조강연을 했다. 그가 강연에 초대된 이유는 제주4.3의 진상을 밝히는 데 크게 기여한 덕분이다. 그는 정치인들이 ‘빨갱이 콤플렉스’를 겁내 제주4.3을 거론하길 꺼리던 1999년에 정부기록보존소를 샅샅이 뒤져 ‘제주4.3수형인명부’를 찾아냈고 제주4.3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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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으로서는 제주4.3 진상규명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는 추미애 국회법사위원장이 13일 제주썬호텔에서 열린 ’12.3의 밤이 되살린 4.3의 기억’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 이봉수

수형인명부 발굴로 정부 책임을 끌어내다

 

그는 김민웅 교수와 나눈 대담집 <추미애의 깃발>에서 수형인명부에는 재판절차 없이 형을 매기고 육지 형무소로 보내졌던 교사∙농부∙학생 등 사상범이라고 추정할 수 없는 2530명이 기록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형인명부가 발굴되면서 제주4.3의 진상규명을 공식화할 수 있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첫째는 정부가 제주4.3을 인정하고 유족들이 진상규명을 공식 요청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둘째는 법적으로 재심 재판을 열 수 있는 근거가 되었지요. 이걸 근거로 22년이 지난 2021년 3월,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었던 333명의 희생자에게 재심 재판을 통해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제주4.3 발발로부터 73년 만에 희생되신 영령들을 자유롭게 해드릴 수 있었습니다.”

 

제주4.3평화재단 강봉효 기념사업팀장에게 문의했더니 올 11월 4일 기준으로는 재심을 거쳐 무죄선고를 받은 제주4.3 수형인이 2132명에 이른다고 답했다.

 

4.3평화포럼에서 양정심 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은 제주4.3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의의를 설명했고, 이용우 동덕여대 교수는 엄격했던 프랑스의 독일협력자 숙청 사례를 소개했다. 해방 전후에 8천~9천 명의 나치협력(혐의)자가 레지스탕스에 의해 정식 재판 없이 처형됐고, 재판을 통해서도 9만 8천명이 실형을 선고받고 1500명이 처형됐다. 공무원은 2만 1천명, 장교 등 군인은 1만 5천명이 축출됐다.

 

나치 협력 프랑스 언론 900종 발행 금지

 

특히 언론은 나치에 협력한 신문 900종의 발행이 금지되고 538개 언론사가 기소됐다. 그중 115개 사는 유죄 선고를 받아 재산이 몰수되기도 했다. 특히 언론인에게 엄정하게 책임을 물었던 것은 영향력이 컸고 물증도 남았기 때문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9월호에 소개한 바와 같이, 프랑스는 포고령으로 ‘언론인 신분증 없이는 기자로 일할 수 없다’고 못박은 뒤 긴 설문지를 주고 나치 점령기간의 활동내역을 적어내도록 요구했다. 드골 대통령은 숙청을 밀고 나가면서 “프랑스가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더라도 다시는 반역자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4.3평화포럼에서 발제된 폴란드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례는 ‘위르겐 슈트로프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는 게토 봉기 진압작전을 지휘한 독일군 사령관 위르겐 슈트로프가 작성한 것이었다. 국립추모연구소의 마렉 돈브로프스키 기록보관소 부소장은 슈트로프가 허영심과 야망에 사로잡혀 너무나 잔혹하게 진압한 상세 보고서를 남겼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됨으로써 슈트로프는 역설적으로 반인륜 전쟁범죄에 영원히 경종을 울린 장본인이 됐다.

 

폴란드는 이 보고서를 디지털 아카이브로 저장해 뒀는데 내용을 검색해보니 그는 5만 6천 명 유대인을 체포했고, 작전중에 7천 명을 사살했으며 수용소로 이송중에 6929명을 처형하는 등 모두 13929명을 죽였다. 화재와 유탄에 맞아 숨진 폴란드인도 6천 명이 넘었다.

 

피해자의 진술이 아니라 가해자가 남긴 이 드문 보고서는 나치 체제가 저지른 범죄를 고발할 뿐 아니라 변론조차 불필요해진 최종 기소장이 됐고 자신도 처형됐다. 보고서에 첨부된 유대교회 폭파 장면을 찍은 사진 등은 유대인 대량학살의 보편적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돈브로프스키 부소장은 발제를 마무리하면서 “고통스러운 내용이 담긴 기록을 보존함으로써 전 세계에 걸쳐 회복탄력성을 구축하고 기억이야말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가장 강력한 방어책임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넬슨만델라기념관 건립과 아카이브 작업, 시민교육과 대외홍보 등으로 과거를 청산하고 민주주의 발전의 주춧돌로 삼았다.

 

아직도 아득하게 먼 한국의 과거사 청산

 

프랑스 독일 폴란드 남아공의 과거 청산 노력과 성과에 견주면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너무나 멀다. 제주4.3만 하더라도 공식적으로는 ‘제주4.3항쟁’과 같은 온전한 이름을 쓰지 못하고 있다. 제주4.3평화공원 전시장 안에 있는 비석은 비문이 없는 ‘백비’ 상태로 누워 있다. 평화공원 행방불명인묘역에는 유해를 찾지 못한 실종자들의 표석이 4078기나 서 있다. 제주항 근처 주정공장에 갇혀 있다가 재판절차도 없이 앞바다에 수장되거나 단기 징역형을 받고도 육지 형무소로 이감된 뒤 6.25전쟁이 발발하자 처형된 사람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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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묘역에는 유해를 찾지 못한 이들의 표석이 끝없이 줄지어 서 있다. 위령조형물에는 처형장으로 향하는 수형자의 눈길이 애처롭다. © 이봉수

제주4.3은 그나마 재심이라도 이뤄졌지만, 1946년 대구10월항쟁과 1948년 여순항쟁, 1950년 20만이 희생된 보도연맹사건과 부역자 누명 학살 등은 대부분 재심은 물론 진상규명도 제대로 안 된 상태이고 가해자와 책임자 처벌은 시작도 못 했다.

 

시민사회의 성찰과 민주주의 교육, 그리고 집권세력의 철저한 반성으로 나치의 학정과 유대인 학살의 트라우마를 상당부분 극복한 반면 한국은 여전히 ‘기억 투쟁’에서 민주진영과 수구∙극우 세력이 팽팽한 대치 국면을 보이고 있다. 부패 카르텔의 정점에 있는 윤석열 정권 자체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전쟁까지 마다하지 않는 파시즘 성향을 여지없이 드러낸 게 12.3 내란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반성은커녕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며 내란 선동자를 비호했고, 제주4.3 왜곡 영화를 관람함으로써 제주도민을 조롱했다.

 

‘기억 투쟁’에 열성적인 수구기득권세력

 

진상규명은 도외시하고 ‘기억 투쟁’에 열성적인 쪽은 수구∙기득권세력이다. 그들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추앙하는 리박스쿨을 만들어 어린 학생들을 세뇌한다. 국민의힘 소속 홍준표 대구시장은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세웠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송현광장에 이승만 기념관을 세우려 했다.

 

파리 개선문 아래에는 ‘영원한 불꽃’, 런던 세인트제임스궁 앞에는 추모탑 등 조형물이 마련돼 있는데, 우리나라 도시들은 어떤가? 광화문에도 전국 학교에도 지배자와 장군의 동상만 있을 뿐, 병사들의 충혼탑들은 산골짜기나 변두리로 ‘추방’되어 있다. 4.19혁명의 희생자들도 당시에는 시민이 거의 찾지 않던 수유리에 모셔졌다. 베를린을 여행할 때 베를린 중심지인 브란덴부르그 문 바로 옆에 ‘학살 유대인 추모공원’이 조성돼 있는 것을 보고 진정한 반성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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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펜던트〉는 영국의 중도신문인데도 나치 등 과거사 청산을 끈질기게 주장한다. 2008년 5월 2일자 1면은 90살 안팎의 노인들인데도 아직 검거되지 않은 나치 전범들을 수배하는 기사로 채워졌다. © Independent

내란 진압도 힘든 ‘기억 투쟁’의 공론장

 

‘기억 투쟁’에서 민주진영이 불리한 요인은 보수 편향이 심한 우리나라 언론 지형에도 있다. 선진국 가운데 한국처럼 재벌언론과 언론재벌, 그리고 수구 성향 종교단체가 소유한 매체들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이스라엘의 극우 정권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언론인을 무차별 살상한 것도 ‘기억 투쟁’에서 이기려는 술책이라 할 수 있다. 영국 <가디언>은 2023년 10월 가자전쟁이 발발한 뒤 이스라엘의 공습 등으로 숨진 언론인이 247명에 이른다고 지난 8월 26일 보도했다.

 

제주4.3항쟁도 제주 언론들이 공감할 뿐 대부분 중앙언론들은 오히려 진상을 왜곡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도민은 너도 나도 공감하는 4.3항쟁에 관해 육지 사람들은 “또 4.3이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어쩌면 제주도민만 서로 공명하는 반향실(echo chamber)에 갇혀 있다는 느낌도 든다.

 

1년이 다 지나도록 내란이 진압되지 않고 있는 요인도 기득권 카르텔이 워낙 공고한 데다 수구언론이 내란 진압에 제동을 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윤석열의 항명을 ‘조국사태’와 ‘추윤갈등’이란 틀로 왜곡해온 법조기자 카르텔은 여전히 멤버가 별로 바뀌지 않은 채 기자실을 장악하고 있다. 정치부 기자 구성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언론의 왜곡보도도 실명으로 비판하고 상세히 기록했더라면 그런 행태를 무한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처럼 기억해야 할 다크 투어리즘의 현장이 많은 나라도 없다. 분단과 전쟁, 학살과 재난, 탄압과 저항, 아픔과 슬픔의 장소가 전국 곳곳에 널려 있다. 제주에서 숱하게 터진 민란도, 동학농민전쟁도, 제주4.3도 제대로 기억되지 않았기에, 보도연맹사건과 부역자 누명 학살, 4.19학살, 인혁당사건 사법살인, 5.18광주학살로 이어졌다. ‘기억 투쟁’에서 밀리면 비극은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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