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5일 이재명 대통령은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난 후 이번 회담이 “한중관계의 완전한 복원”으로 향하는 계기라고 평가했다. 미국만 보고 움직이지 않겠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그 뒤 곧바로 쿠팡 문제가 워싱턴의 고위급 의제로 떠올랐다. 1월 23일 밴스 부통령은 김민석 총리와 만나 쿠팡 문제를 거론했고, 이튿날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USTR 대표에게 “쿠팡 수사는 통상 문제가 아니라 국내법 문제”라고 따로 설명해야 했다. 한국의 수사를 한국 법으로 처리하겠다는 상식을 한국 정부가 미국에 해명해야 하는 장면이 벌어진 것이다.
2월 21일에는 국방부가 그 수일 전 서해 상공에서 자기 멋대로 훈련한 주한미군 측에 항의했다. 훈련의 세부 내용은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고 미 공군은 서해상에서 중국 측과 대치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을 조성했다. 한국은 미국 군사행동의 방식과 범위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드문 장면이었다. 이틀 뒤 룰라 브라질 대통령이 서울을 국빈 방문했고 두 정상은 한-브라질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중국과의 관계 복원에 이어 남미의 브릭스(BRICS) 회원과도 외교 축을 넓힌 것이다. 워싱턴 입장에서 보면 서울은 ‘동맹은 동맹이고, 외교는 우리의 판단으로 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기 시작한 셈이다.
3월 10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주한미군 장비의 중동 재배치에 한국은 반대 의견을 냈지만 관철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현실을 변경해야 한다는 의지가 내포된 발언이었다. 지금의 동맹 운용 방식은 만족할 수 없다는 문제 제기이기도 했다. 이어 3월 12일 김민석 총리는 밴스 부통령을 다시 만나 핵추진잠수함과 원자력에 관한 미국의 약속을 조속히 이행할 것을 요구했다. 쿠팡 문제도 다시 거론됐다. 한쪽은 안보와 농축·재처리를 밀어붙이고 다른 한쪽은 기업 수사 문제를 계속 붙들고 있었다.
3월 27일 이 대통령은 전작권을 조기에 되찾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4월 2일 방한한 미 상원의원들에게도 같은 뜻을 다시 밝혔다. 한국은 우리 능력으로 한반도를 방어하겠으며 그 방향에서 전작권 회수를 추진하겠다는 뜻이었다. 미국은 전작권 전환 문제를 예민하게 다루고 있다. 어떻게든 이걸 쥐고 흔들며 한국으로 하여금 미국에 충성하도록 종용하려는 것이 미국의 속셈이다. 미국은 서울이 이 문제를 정면으로 공략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 정부가 기존의 금기를 조금씩 건드리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4월 10일에는 또 하나의 장면이 나왔다. 이 대통령은 SNS에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을 홀로코스트에 빗대며 강하게 비판했고, 이 발언은 곧바로 외교적 파장을 불렀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함께 움직이는 전쟁 국면에서 한국 대통령이 그 행동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그것은 마치 로미오 앞에서 줄리엣의 뺨을 후려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예민함이었다. 한국은 더 이상 미국과 늘 같은 문장으로 말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드러낸 것이었다. 그 며칠 뒤부터 워싱턴의 압박은 훨씬 노골적인 형태로 한꺼번에 쏟아졌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3월과 4월 국회에서 북한 구성 지역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언급했고, 4월 17일 숭미언론은 정 장관이 기밀을 누설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미국은 그 발언을 문제 삼아 대북 정보 공유를 제한했다고 보도되었다. 이 대통령은 21일 이 사태를 “터무니없다”고 일축하면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조사해야겠다고 코멘트 했다. 눈여겨볼 것은 사실관계만이 아니다.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사안이 ‘기밀 누출’ 프레임으로 조작된 것이 문제다. 미국과 국내 숭미주의 세력이 합세해 ‘반미집단’에 공세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4월 21일 방시혁 하이브 의장 문제도 불거졌다. 그는 2000억원 규모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이미 지난해 8월부터 출국금지 상태였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국대사관은 방 의장의 미국 방문을 위해 일시적인 출국 허용을 요청했다. 수사 중인 피의자의 출국 문제에 미국대사관이 끼어든 것이다. 미국은 지금 한국을 자신들의 속국으로 여기고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 단순한 사안이다. 미국의 요청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같은 날 미국 공화당 의원 54명은 강경화 주미대사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한국이 미국 기업을 “조직적으로 표적화”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쿠팡 수사를 “정부 전체의 공격”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리고 다음날 로이터는 SBS 보도를 인용해 미국이 김범석 쿠팡 의장에 대한 법적 안전보장을 요구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핵잠 같은 안보 현안의 고위급 협의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취지의 압박이 있었다고 전했다. 밴스 부통령의 언급도 같은 결이었지만, 미국은 지금 한국의 내정을 안보·통상 이슈와 묶어 다루고 있다. ‘식민지’ 한국을 길들이겠다는 저의다.
4월 21일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미 상원 청문회에서 한국의 전작권 회수 계획에 대해 “정치적 편의가 조건을 앞질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전적권 전환은 정해진 절차를 따라야지 정치적으로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군사 기술자의 중립적 설명이 아니다. 한국 정부의 전작권 조기 회수 의지를 두고 일개 미국 군 지휘관이 공개석상에서 한국의 군통수권자의 통치행위를 재단한 것이다. 전작권은 주권 문제다. 그 속도와 조건을 놓고 최종 판단하는 주체는 한국이어야 한다. 미군 사령관은 한국에 군림하는 미국의 총독이 아니다.
여러 사안을 한 줄로 늘어놓으면 하나의 줄거리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미국과 숭미주의자들이 합작해 한국의 조그마한 ‘자주적’인 행보들에 반격을 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1월에는 한중관계 복원 선언이 있었고, 2월에는 서해 훈련 항의와 브라질 국빈 방문이 있었다. 3월에는 주한미군 장비 차출에 대한 불만 표출과 전작권 조기 회수 의지 천명이 이어졌다. 4월에는 미국과 다른 어법으로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워싱턴과 숭미파들이 불편해하는 것은 한국이 이제 드디어 비록 수줍게나마 자기 판단을 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위성락 안보실장은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굴종이 우리가 지켜야 할 정상상태라는 말일까.
답은 분명해야 한다. 쿠팡 수사는 국내법대로 밀고 가야 한다. 24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미국의 ‘내정간섭’을 비판한 것은 절대 옳다. 정동영 장관 발언을 둘러싼 정보 제한과 국내 프레임 형성 과정은 면밀히 따져야 한다. 전작권 회수는 선언으로 그칠 일이 아니라, 연합지휘 체제 조정과 한국군 단독지휘 체제 검토를 포함한 별도의 로드맵으로 옮겨가야 한다. 지난 80년 동안 한미동맹이라는 굴레를 뒤집어쓰고 살아온 우리가 자주를 말하면 압박이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그 압박은 우리가 비로소 출발선에 섰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눈치가 아니라 결심이다. 미국을 길들여야 할 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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