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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환승장에서 423일 숙식…‘인천공항 난민’을 아시나요?

입력 2026.04.10 07:00

점(사실들): 공항에 갇힌 ‘423일’

선(맥락들): 11살 소년도 지금 인천공항에

면(관점들): 난민 허락하지 않는 코리아

인천공항 제1터미널. 연합뉴스

여행객들이 설레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공항. 그곳에 꼼짝없이 갇혀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한국 정부의 지나치게 깐깐한 난민 인정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난민신청자들입니다. ‘공항난민’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길게는 1년 넘게까지 공항에 갇혀 사실상 노숙을 합니다.

오래된 이슈가 최근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유엔이 400일 넘게 인천국제공항에서 생활해 온 한 공항난민 사례를 두고 ‘한국 정부가 국제협약을 위반했다’고 판단하면서인데요.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점(사실들): 공항에 갇힌 ‘423일’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인 리카씨(52·가명)는 내전을 피해 2020년 2월 한국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도착한 뒤 바로 난민 신청을 하겠다고 했는데, 법무부는 들어주지 않았어요. 법무부는 환승편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그가 ‘환승객’이라 난민 심사 기회를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공항 환승구역에 갇혔습니다.

리카씨는 인권단체들의 도움으로 소송을 걸었고, 2021년 5월 법원이 ‘난민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결정하면서 비로소 공항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공항 생활 423일 만입니다. 국내 최장기 공항 난민인 그는 공항을 나온 뒤에도 오랜 노숙으로 인한 허리 통증과 트라우마에 시달렸어요. 그는 한 차례 난민 불허 결정을 받고 지금은 재신청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2020년 2월부터 14개월 동안 인천공항 환승구역 안에서 생활했던 리카씨(52·가명)의 모습. 리카씨 제공

리카씨는 공항에서 지내던 2020년 6월 유엔 자유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는데요. 위원회는 6년 만인 지난 2일(현지시간) 마침내 답을 내놨습니다. 위원회는 “한국 정부는 리카를 14개월간 비인도적 조건 속에 가두고 권리를 침해해 ‘유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위반했다”며 “적절한 피해 보상과 재발 방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어요.

선(맥락들): 11살 소년도 지금 인천공항에

리카씨 같은 공항난민, 한두 명이 아닙니다. 이집트 정부에 탄압당한 인권변호사 A씨는 지난해 6월 인천공항에 도착해 난민 신청을 했습니다. 하지만 법무부가 그의 출국 이력이 많은 점 등을 들어 “난민이 아니다”라며 심사를 거부해 4개월 동안 공항에서 노숙했습니다. 군부독재를 피해 고국 말리를 떠난 B씨와 11살 아들도 난민 신청이 기각돼 지난해 6월부터 10개월째 인천공항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한 기니 출신 난민 C씨도 5개월 동안 햄버거만 받으며 노숙했습니다.

공항난민들의 생활은 어떨까요? 경향신문은 2019년 2월 인천공항에서 노숙하던 난민 루렌도씨 가족을 만난 적 있습니다. 이들은 제1터미널 한쪽에 소파 3개를 붙여 놓고 살았습니다. 늦은 밤까지 불을 켜놓는 데다 사람들이 돌아다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겨울에도 틀어 놓는 에어컨 때문에 추위에 시달렸죠. 287일 동안 공항에서 지낸 루렌도씨 가족은 2021년 10월 난민 인정을 받았어요.

고된 생활에 병을 얻어도 의료서비스를 받기 어렵습니다. 보안구역인 공항 특성상 이들이 밖으로 나가기도, 의료진이 공항 안으로 들어오기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긴급상륙허가’를 받을 수 있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긴급상륙허가 신청과 치료비 부담 등을 맡아야 하는 항공사의 협조를 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공익법단체 ‘두루’는 2020년 공항난민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난민신청자들은 항공사가 치료비를 부담하는 것을 꺼렸고, 자비로 치료비를 부담하겠다고 한 후에야 치료할 수 있었다”고 했어요.

면(관점들): 난민 허락하지 않는 코리아

이들이 오랫동안 공항에 갇히는 이유는,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더 어려운 한국 정부의 깐깐한 난민 심사 때문입니다. 2024년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1.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4.8%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쳤습니다. 난민 심사를 마친 뒤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만 따졌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리카씨처럼 난민 신청 자체를 거부당하는 경우도 많아요.

한국 정부가 난민 자격을 깐깐하게 따지는 이유는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정부가 난민 관련 정보 공개를 극도로 꺼리거든요. 그러나 난민 인정의 문턱이 높은 건 어쩌면, 한국 정부가 난민이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태도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2022년 5월 경향신문은 밀실 속에 숨어 있던 정부의 ‘난민인정 심사·처우·체류 지침’ 문건을 처음 보도했습니다. 난민인권센터의 소송으로 드러난 문건에는, 한국 정부가 난민신청자를 기본적으로 ‘가짜난민’으로 의심하며 특정한 ‘난민다움’을 요구하는 듯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난민신청자가 체류자격 관련 소송 결과에 불복해 항소·상고하면 ‘소송남용자’로 낙인찍혀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도적체류자가 결혼하면 ‘혼인의 진정성’을 따지도록 하는 내용도 있었어요.

법무부는 소송 과정에서 “지침이 공개되면 난민신청자 등이 기준을 유리하게 적용해 체류허가 신청을 하거나 불법 취업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법원은 “정보가 공개돼야 난민법령 등이 보장하는 관련자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고 했고요. 소송 끝에 지침은 공개됐지만, 공항난민들의 사례를 보면 정부의 태도는 그리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를 보더라도 입체적으로” 경향신문 뉴스레터 <점선면>의 슬로건입니다. 독자들이 생각해볼 만한 이슈를 점(사실), 선(맥락), 면(관점)으로 분석해 입체적으로 보여드립니다. 매일(월~금) 오전 7시 하루 10분 <점선면>을 읽으면서 ‘생각의 근육’을 키워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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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람 기자

뉴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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