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개발이 일자리 없앤다? 그렇지 않다"
프레시안 : AI는 지난 10여년 간 빠른 발전을 거듭하면서 최근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의 출현은 필연적으로 노동시장의 변화를 가져온다. 과거 신기술이 도입됐을 때, 노동시장은 어떻게 변했는가.
하종강 : 최초의 갈등은 19세기 초 영국에서 발생한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 기계파괴운동)이다. 당시 나타난 방직기가 일거리를 줄인다며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하는 운동을 벌였다.
여기서 우리가 사실과 다르게 알고 있는 점은 헐벗고 굶주린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기계파괴운동을 벌였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 이 운동의 주력은 매뉴팩처(공장제 수공업)의 숙련된 수공업 노동자들, 즉 당시 특권층들이었다.
당시는 식민지 경제가 전 세계적으로 상품 수요를 창출하는 시기였다. 반면, 숙련 기술은 한정돼 있으니 갈수록 이들의 특권이 강화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기계가 도입된 것이다. 그러니깐 기계 도입으로 특권이 상실된 사람들이 특권을 지키기 위해 저항한 게 러다이트 운동이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당시 특권층이 아닌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기계 도입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하종강 : 아니다. 그때 노동조합이 탄생했다. 당시 탄생한 노동조합 명칭이 '트레이드 유니온(노동조합주의, trade unionism)'이다. 이 노동조합의 주요 구성원들이 소생산 자영업자들이었다. '트레이드'는 거래한다는 뜻이지 노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들은 대자본과의 관계에서 공정한 거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프레시안 : 방직기 도입이 기계파괴 운동, 그리고 노동조합의 형성으로 이어진 듯하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기술 개발이 단순히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기만 하지는 않는 듯하다. 가난한 노동자를 보호하고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노동조합이라는 형태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종강 : 기술 개발에 따른 변화, 즉 일자리가 사라지는 게 거스를 수 없는 사회 발전의 필연적 과정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19세기 중반 미국에서도 비슷하게 기계화가 진행됐지만 영국에서와 같은 대량 해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에서는 기계화 도입 이후 고용이 크게 증가했다.
프레시안 : 왜 그런가.
하종강 : 영국에서는 기계화 도입을 기존 숙련공들을 해고해 인건비를 줄이는 수단으로 활용했지만 미국에서는 기계화를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활용했다. 기계화로 생산라인에서 벗어난 노동자들은 재교육을 통해 새 직군의 일자리에 배치됐다. 그때 화이트칼라 비중이 매우 커졌다.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난 것이다. 그에 따라 미국 사회에서 노동운동도 매우 활발해졌다. 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진보적 사회주의자들 중에는 기계 도입을 노동운동 조직화에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이도 있다.
"기술 도입, 결국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프레시안 : 현재 노동 현장을 흔드는 AI를 되레 새로운 사회운동의 기폭제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도 들린다.
하종강 : 일례로 21세기 초, 각 나라의 자동차 회사들은 공장에 비슷한 수준의 자동화시스템을 도입했다. 그 결과 미국 자동차 업계는 자동화로 인해 고용이 감소했지만, 같은 기간 독일과 일본의 자동차 업계는 화이트칼라 직군과 기술직군 모두에서 고용이 증가했다.
반면, 미국은 이번에는 반대로 기존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방식으로 고용을 줄였고, 독일(Volkswagen)과 일본(Toyota)은 재교육과 업무 재배치를 통해 해고를 막고 고용을 창출했다. 결국 기술이 도입되어도 그것을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프레시안 : 신기술 도입으로 효율성이 높아지면, 생산품 가격은 싸지고 그에 따라 소비자의 소비는 더 늘어나면서 전체 이익은 더 늘어나고, 그에 따라 다시 생산을 늘리는 식으로 가는 구조인 듯하다.
하종강 : 신기술 도입이 반드시 대량 해고를 발생한다는 도식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지난 1·2·3차 산업혁명은 모두 일자리의 총량을 증가시켰다. 다만 기계화·자동화 도입 초기에 대량 실업 현상이 발생했을 뿐이다. 4차 산업혁명만 지금까지의 혁명과 다르게 일자리 총량이 줄어든다고 단정하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다.
일례로 '로지'라는 가상 모델이 등장하는 금융회사 CF가 돌풍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 로지라는 가상 모델 때문에 다른 인간 모델의 일자리는 없어졌으나, 그 로지를 개발한 기업의 대표가 TV에 나와 한 인터뷰를 보면, 가상 모델을 개발하느라 고용 인원을 3배나 늘렸다고 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실(Executive Office of the President)에서는 향후 10~20년 동안 9~47%의 일자리가 AI로 위협받겠지만, 그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남으로써 실업률은 비슷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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