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전쟁 종식을 위한 직접 협상을 재개한 가운데, 파키스탄에서 열린 고위급 회담이 심야까지 이어지며 본격적인 ‘기술적 단계’로 진입했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47년 만에 성사된 최고위급 대면 접촉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지만,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과 대이란 제재 완화 등 핵심 쟁점을 두고 양쪽이 팽팽히 맞서면서 회담은 난항을 겪고 있다.
11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양국 대표단은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세레나 호텔에서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 및 아심 무니르 육군참모총장의 중재하에 직접 대면 회담을 가졌다. 미국은 제이디 밴스 부통령을 필두로 재러드 쿠슈너, 스티브 윗코프 중동 특사 등이, 이란은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과 함께 강경파 핵심 협상가인 알리 바게리 카니 등이 나섰다.
회담은 오후 시작돼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졌으며, 양쪽이 고위급 대면 협의를 마친 뒤 곧바로 실무진 중심의 ‘기술적 단계(전문가 단계)’로 전환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과 이란 국영 매체들이 전했다. 이란 국영 이르나(IRNA) 통신과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계열 매체 누르뉴스 및 이란 국영 방송(IRIB), 이란 정부 공식 소셜미디어 등은 양국 대표단이 서면으로 쟁점 문건을 교환했으며, 경제·군사·법률·핵 분야 전문가들이 투입되어 세부 조율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이번 협상의 최대 뇌관인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두고 양쪽은 극심한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협상 상황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해협에 대한 ‘공동 통제’ 방안을 선택지로 제시했으나 이란 협상단이 이를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이란 대표단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100% 독자적인 통제권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에 이란이 직접 통행료를 부과할 권리가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이 공전하는 가운데 무력시위도 병행되고 있다. 미군 중부사령부(CENTCOM)는 성명을 내고 구축함 2척을 호르무즈 해협에 전격 투입해 이란이 부설한 기뢰 제거 작전에 돌입했으며 수일 내로 수중 드론 등 추가 군사 자산을 대거 투입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를 위해 해협을 청소하는 절차를 시작했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이란군 당국은 국영 매체를 통해 미 군함의 해협 진입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두 번째 쟁점인 제재 완화와 자산 동결 해제를 두고도 엇박자가 극명하다. 이란 국영 매체들은 미국이 카타르 등에 동결된 약 60억 달러(한화 약 9조원) 규모의 자산 해제에 합의했다고 보도했으나, 미 백악관 당국자들은 즉각 “사실무근”이라며 선을 그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이 자금은 과거 한국에 동결되어 있다가 2023년 죄수 교환 합의로 카타르로 이전되었으나 가자지구 전쟁 발발 후 다시 묶인 상태다. 다만 미국이 이번 직접 회담에 앞서 파키스탄 중재자들과의 물밑 접촉 과정에서 해당 자산 해제 방안을 논의해온 것은 사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의 레바논 전선 역시 휴전 협상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 중단을 협상의 전제 조건 중 하나로 내세웠으나, 이스라엘군은 지난 24시간 동안 레바논 내 헤즈볼라 목표물 200여 곳을 맹폭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이란에 맞선 우리의 작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강경론을 고수했다.
다만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주미대사가 다음 주 미 국무부에서 40여 년 만의 첫 직접 대화를 갖기로 합의하면서 국면 전환의 여지는 조심스레 열려 있다. 그러나 나와프 살람 레바논 총리가 국내 안보 상황과 헤즈볼라의 거센 반발 등을 이유로 돌연 미국 방문 일정을 연기하면서 협상 과정에 난항이 예상된다.
양쪽 모두 협상을 이어갈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입장차가 큰 핵심 쟁점들이 얽혀 있어 단기간 내 포괄적 합의 도출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시엔엔(CNN)은 협상에 정통한 파키스탄 고위소식통을 인용해 “이번 협상이 며칠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파키스탄이 밴스 부통령 체류 기간을 늘리려고 설득 중이다”라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회담의 일차적 목표는 광범위한 타결보다는, 호르무즈 해협 문제 등에서 일부 진전을 이뤄 협상 기한 자체를 연장하는 데 맞춰져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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