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코(Taco)를 처음 만난 건 아주 오래 전 일이다. 손바닥만 한 옥수수 토르티야 위에 훈제 돼지고기가 소복이 얹히고, 고수와 양파가 올라가고, 거기에 라임즙 한 방울이 떨어지면 — 먹는 순간 입안에서 폭발하는 맛의 세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매콤하고 새콤하고 기름지고 향긋하고, 그 복잡한 맛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그 느낌. 멕시코 사람들은 이걸 8000년 전부터 먹어 왔다니, 그 옛날 사람들이 현대인들보다 훨씬 세련된 미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멕시코 정통 타코에는 나름의 철학이 담겨 있다. 타코 알 파스토(Taco Al Pastor)를 생각해보자. 아랍 이민자들이 가져온 샤와르마(Shawarma) 조리법에 멕시코식 돼지고기를 합체시키고, 거기에 파인애플을 올리는 발상- 이건 요리가 아니라 문화 융합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토르티야(Tortilla)는 그저 빵 껍데기가 아니다. 8000년 된 옥수수 문명의 정수이자, 세상 모든 재료를 끌어안는 포용의 빵이다. 대통령부터 길거리 노동자까지 다 먹고, 할머니의 손맛도 타코로 표현되며, 천재 셰프의 실험도 타코로 시작된다. 유네스코(UNESCO) 인류 무형문화유산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린 음식. 타코는, 결국 멕시코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2016년 5월 3일, 전대미문의 사건이 일어날 씨앗이 뿌려졌다. 바로 그날,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의 마지막 경쟁자였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사퇴를 선언하면서, 도널드 트럼프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되었다. 승리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트럼프의 눈에 달력이 들어왔을 것이다.
이틀 뒤가 바로 신코 데 마요(Cinco de Mayo) - 멕시코가 1862년 푸에블라 전투에서 프랑스 군대를 물리친 것을 기념하는 날이자, 미국 내 멕시코계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축하하는 날이었다. 트럼프는 마침 선거운동 내내 멕시코 이민자들을 '범죄자, 강간범'이라 불러댄 적이 있으며, 갤럽 조사에서는 히스패닉 유권자의 77%가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트럼프에게 이날은 절호의 반전 기회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날 5월 5일, 트럼프는 트위터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트럼프 타워의 사무실 책상 위, 노란 껍데기 그릇에 담긴 무언가를 앞에 두고 환하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운 채. 캡션은 이랬다: "Happy #CincoDeMayo! The best taco bowls are made in Trump Tower Grill. I love Hispanics!"(신코 데 마요 축하해요! 최고의 타코 볼은 트럼프 타워 그릴에서 만들어집니다. 나는 히스패닉을 사랑합니다!) 선거 기간 내내 그들을 모욕하고 추방하겠다고 외쳤던 자가, 음식 한 그릇 들고 '사랑한다'라고 궤변을 펼친 것이다. 후보 확정 이틀 만에 히스패닉 표심을 돌려보겠다는, 장사꾼답게 얄팍한 화해의 제스처를 드러내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일단 잠깐, 숨 한번 쉬고 생각해보자.
첫째, 그가 집어 든 건 '타코 볼(Taco Bowl)'이다. 타코 볼이란 무엇인가. 바싹하게 튀긴 밀가루 토르티야를 그릇 모양으로 만들고 그 안에 간 쇠고기, 상추, 노란 체더 치즈, 사워크림을 때려 넣은 것이다. 이것은 멕시코 음식이 아니다. 프리토(Frito) 브랜드 창업자 엘머 두린(Elmer Doolin)이 고안한 '타컵(Tacup)'에서 출발해, 타코벨(Taco Bell)이 1984년 패스트푸드로 상품화한 순수한 미국 음식이다.
칼로리는 빅 맥(Big Mac)보다 훨씬 높으며, 어느 멕시코 음식 평론가는 이 타코 볼을 직접 먹어보고 "맛이 너무 없어서 멕시코인들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다"라고 썼다. 아, 그리고 그 '최고의 타코 볼'은 트럼프 타워 그릴 메뉴에도 없었다. 같은 건물 다른 층 카페 메뉴에 '타코 피에스타! (Taco Fiesta!)'라는 게 있었을 뿐이다. 그는 철저한 거짓말쟁이다.
둘째, 그 사진을 자세히 보면 책상 위에 잡지가 깔려 있었는데, 바로 트럼프의 전 부인 말라 메이플스(Marla Maples)가 표지를 장식한 1987년 잡지였다. 본인 전처 잡지 위에 타코 볼을 올려놓고 찍은 것이다. 이건 뭔가. 풍자도 아니고, 예술도 아니고, 그냥…. 트럼프다운 허접한 기행이다.
셋째, 그리고 이게 진짜 핵심인데 - 바로 전날, 트럼프는 NBC 앵커 레스터 홀트(Lester Holt)와의 인터뷰에서 히스패닉 이민자들을 추방하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들은 추방될 것입니다." 그러고서 52분 뒤에 "나는 히스패닉을 사랑합니다!"라고 외친 것이다. 철저한 장사꾼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캠프는 이 두 문장을 나란히 붙여 바로 트윗으로 날렸다. 어느 트위터 이용자는 더 날카롭게 포착했다: "저 트럼프 타코 볼은 말 그대로 멕시코 음식 주변에 장벽을 두른 것이다." 바삭한 그릇이 장벽이고, 그 안에 갇힌 내용물이 히스패닉 문화인 셈이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의장 라인스 프리버스(Reince Priebus)가 "그는 노력하고 있어요. 진짜로, 노력 중이에요(He's trying. Honestly, he's trying.)"라고 해명했을 때, 인류 역사상 가장 처량한 문장 중 하나로 기록됐을 뿐이다.
자, 이 두 개의 타코를 나란히 놓고 살펴보자.
멕시코 정통 타코. 8000년 역사. 옥수수 토르티야. 훈제 돼지고기에 고수와 라임. 아랍, 스페인, 마야, 아즈텍 문명이 한데 녹아든 융합의 음식. 길에서 가난한 할머니가 팔고, 노벨상 후보 같은 셰프가 재해석하는 음식. 세상의 모든 재료를 토르티야 하나로 끌어안는, 포용의 음식이다.
트럼프 타코 볼. 1984년생. 튀긴 밀가루 그릇. 간 쇠고기에 노란 체다 치즈와 상추. 타코벨이 발명한 패스트푸드. 트럼프 타워에서도 팔지 않는 음식. 전처 잡지 위에 올려진 음식. "맛이 없어서 모욕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음식. 국경 장벽처럼 생긴 그릇에 담긴 음식이다.
이 둘의 차이가 곧 타코를 바라보는 두 세계관의 차이다. 하나는 섞이고 융합하고 포용하고 진화하면서 수천 년을 살아남은 문화다. 다른 하나는 섞이는 게 싫어서 일부러 담장 친 그릇 안에 가둬놓고, 그것도 모자라 "이게 최고다!"라고 엄지를 세우는 엉뚱한 장사치의 오만한 자신감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9년이 흘러 2025년 5월 2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로버트 암스트롱(Robert Armstrong)이 '언헤지드(Unhedged)'라는 칼럼 시리즈에 조용히 새로운 단어 하나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 단어는 바로 TACO. 전 세계 금융 시장이 그 뜻을 순식간에 알아챘다. Trump Always Chickens Out. "트럼프는 언제나 겁을 먹고 꼬리를 내린다.“
배경은 이랬다. 2025년 4월 2일, 트럼프는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전 세계를 향해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을 선언했다. 주요 교역국에 최고 50%를 웃도는 관세 폭탄을 퍼붓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그는 외쳤다.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 세계 주식 시장은 즉각 수직 낙하했다.
그런데 딱 일주일 뒤인 4월 9일, 국가별 고율 관세는 90일 유예되었다. 채권 시장이 심상치 않게 출렁이자 스스로 물러선 것이다. S&P 500 지수는 그날 하루 9.5%나 폭등했다. 암스트롱은 이 패턴을 명쾌하게 정의했다. "미국 행정부는 시장과 경제의 압력을 견디는 내성이 그다지 높지 않으며, 관세가 고통을 유발하면 재빨리 후퇴할 것이다." 그리고 그 패턴에 이름을 붙였다. TACO라고.
월가의 트레이더들은 TACO 이론을 곧바로 투자 전략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관세 폭탄을 터뜨리면 주가가 급락하고, 이어 트럼프가 '협상 중'이라며 슬며시 후퇴하면 주가가 다시 반등한다 - 이 사이클이 너무나 규칙적이어서, 트럼프의 협박 발언 자체가 '저가 매수 신호'로 통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린란드 합병 협박을 했다가 흐지부지 물러선 것도, 연방준비제도 의장 제롬 파월 해고를 공언했다가 시장이 폭락하자 번복한 것도, 모두 TACO 사례집에 추가되었다.
심지어 이란과의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달 초 트럼프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열지 않으면 발전소와 교량을 모두 폭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48시간 시한을 걸었다가 시한이 지났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트럼프는 '협상이 잘 진행 중'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이란 측은 "협상한 적 없다"라고 했다. CNN은 이런 헤드라인을 달았다. '또 한 번의 TACO 화요일(TACO Tuesday).' 지미 키멀(Jimmy Kimmel)은 밤마다 트럼프가 어긴 마감 시한 목록을 읊었다.
프랑스 언론은 TACO를 "트럼프는 언제나 쪼그라든다"로 옮겼고, 이탈리아 신문들은 대략 "언제나 바지에 지린다"쯤 되는 속어로 번역했다. 트럼프는 이 별명을 특히 혐오했다고 한다. 그러자 싫다고 할수록 더 퍼지는 인터넷의 법칙인 스트라이샌드 효과(Streisand Effect)가 발동되어 TACO는 더 크게, 더 빠르게 거센 불길처럼 전 세계로 번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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