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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바뀌지 않으면 나라가 불행해진다"

 

[오홍근의 '그레샴 법칙의 나라']<90>종북·좌빨 타령으로 지새는 나라

오홍근 칼럼니스트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2-05 오전 9:38:54

 

종북(從北)·좌빨이란 말은 국어사전에도 없는 신조어다. 종북이란 북한을 추종한다는 뜻이고, 좌빨은 좌익·빨갱이의 첫머리 글자를 딴 합성어 일게다. 따라서 우리 같은 남북분단국가에서 이 말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범법행위를 한 사람에 대한 호칭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죄도 없이 멀쩡한 사람을 '종북·좌빨'이라 부른다면 그보다 더 으스스한 표현은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 지배계층은, 어느 세력이건 정치적으로 대결관계에 있으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넘본다 싶으면, 사정없이 종북·좌빨 같은 사상범의 딱지를 붙여 곤경에 몰아넣으며 배타적 이익을 지켜내는데 활용했다. 실제로 범법행위가 없더라도 그랬다.

종북·좌빨이란 말의 근원을 찾아 올라가 보면 '좌익'이란 용어와 만난다. '우익'의 대칭이 되는 개념의 용어다. 이 땅에 좌익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3·1운동 후 조선공산당이 결성(1925년 4월)될 무렵부터였다. 물론 지금의 종북·좌빨과는 개념에서 천지차이로, 비교도 할 수 없는 호칭이었다. 해방이 되면서 그 좌익이란 말의 의미는 종전과 차이를 보이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실제로 당시 이 나라에는 많은 좌익인사들이 존재했으나, 친일파들과 손을 잡은 이승만 세력은 점차 정적(政敵)들 까지를 싸잡아 좌익으로 몰아 '소탕'하면서 좌익이란 말의 개념을 변질시켰다. 덕분에 살 판 만난 친일파들은 자신들의 안전과 이익을 챙기기 위해, 이승만의 정적인 '좌익토벌'에 열과 성을 다했다.

이승만 정부의 초대 농림장관이었던 조봉암이 2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적지 않은 표를 얻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건 이 무렵이었다. 대통령이란 기득권을 넘본 조봉암을 이승만은 용서치 않았다. 좌익에 간첩 딱지를 붙인 이승만은 사법부에 압력을 가해 사형을 선고케 하고 조봉암의 목숨을 빼앗았다. 조봉암은 훗날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

그 좌익이란 말은 그 뒤로 '빨갱이'니 '적색분자'니 '좌경 불순분자'니 '북한 동조세력'이니 하는 호칭으로 이어지며 기득권을 수호하는 수단이 된다. '종북·좌빨'은 말하자면 그 다음 쯤 된다. 집권층은 이 '방패막이'를 활용하며, 남북대치 상황에서 '반공'을 위하고, '국가안보'를 위한다는 핑계를 댔다. 반공이나 국가안보란 구실은 참으로 '요긴'했다. 6·25를 겪은 국민들에게 반공이나 국가안보는 매우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었다.

1960년의 3·15 부정선거 때는 '이승만의 대통령 당선을 반대하는 것은 곧 반공을 반대하는 것'이란 논리가 등장하기도 했다. 부마(釜馬)항쟁도 4·19혁명도, 빨갱이와 적색분자들의 소행이라고 몰아 붙였다. 지금의 '종북몰이'와 대동소이 했다고 보면 될 듯싶다.

5·16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박정희 씨가 내건 이른바 혁명공약도 제1항이 '반공을 국시(國是)의 제1의(第一義)로 삼고…'였다. 반발을 틀어막기 위해서는 으스스한 사회분위기가 필요했다. 공안정국 조성이다. 박정희 씨에겐 속죄양도 필요했다. 5·16직후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이 빨갱이로 몰려 사형당한 것도 그런 사례였다. 기득권 수호를 위한 공안정국·종북몰이의 희생자였다. 물론 조용수도 뒷날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빨갱이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산업화도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박정희 씨 혼자의 힘으로 이룩했고, 그래서 박정희 씨만의 공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산업화의 가장 큰 공로자는 사실 저임금과 저곡가(低穀價)의 고통을 감내해 낸 근로자와 농민들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전태일 열사 사건도 그 과정에서 일어난 비극이었다. 그런데도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좌경 불순세력으로 탄압한 것은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분명한 종북몰이였다.

빨갱이나 북한동조세력으로 몰리지 않으려면 입 다물고 있으라는 이야기였다. 데모 같은 데 한 눈 팔지 말고 맡은 일만 묵묵히 열심히 하라했다. 질서는 아름다운 것이라 했다. 국법질서를 지키라 했다.

박정희 씨는 남로당의 군부 책임자였다. 군사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분명한 적색분자였다. 육군 소령으로 체포돼 남로당에 가입한 동료들의 이름을 밀고(密告)해 전향(轉向)한 대가로 형 집행정지의 절차를 거쳐 석방된 그의 전력은 이제는 비밀사항도 아니다.
 

▲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 씨가 남로당의 군부 책임자로 체포돼 군사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사실이 처음으로, 그리고 잠시 알려진 것은 1963년 제5대 대통령 선거 이틀 전인 10월13일 이었다. 당시만 해도 야당지로 이름을 날리던 동아일보가 민정당 윤보선 후보 측의 폭로를 단독 보도한 호외를 찍어냈다. ⓒ프레시안



그런 박정희 씨가 1971년 대선에서 야당 후보인 김대중 씨에게 쫓기자 '빨갱이' 카드를 들고 나왔다. 튼튼한 국가안보를 위한 방안으로, 미국·일본·중국·소련으로 하여금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토록 하자는 김 씨의 '4대국 보장론'이 빌미가 되었다. 소련과 중국을 끌어들이는 것 등은 빨갱이의 발상이라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김대중 씨는 평생, 아니 지금까지도 일부 계층에 의해 빨갱이가 되어있다.

그러나 그의 4대국 보장론은 40년이 지난 지금 4대국에 남북한을 합한 '6자회담'이 되어 우리 앞에 자리를 잡고 있다. 분명한 '빨갱이'로 유죄판결까지 받고 전향한 박정희 씨가, 사상문제로 체포된 적도, 법정에 선 적도, 유죄판결도 받은 적이 없는, 그래서 전향한 적도 없었던 김대중 씨를 빨갱이로 몰아댄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이 나라 현대사에서 벌어진 가장 비열한 종북몰이였다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 거의 없다.

박정희 정권의 공안·종북몰이는 상상을 초월했다. 조작된 간첩의 검거소식이 수시로 신문의 1면 톱을 장식했고, 인혁당 사건 일으켜 죄 없는 생사람 죽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번번이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기 위한다는 구실이었다.

그런 박정희 씨가 1972년 7·4남북 공동선언 이후 김일성과 함께 '보여준' '적대적 의존관계'는 외국의 언론들도 놀란 '이상한' 뉴스였다. 그해 10월 박정희 씨가 유신을 선포해 장기집권 체제로 들어가자 그해 연말 김일성도 헌법을 개정해 주석제를 도입한다. 양측이 모두 완전 독재체제와 막강 권력체제를 갖췄다. 그래서 남북이 '짜고 고스톱 친 게 아니냐'고 보는 시각과 함께, 한 쪽으로는 무자비한 종북몰이를 하면서 다른 한 쪽으로는 다른 모습을 보인 2중성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의사회 구현'을 기치로 내 건 전두한 정권의 '광주 종북몰이'도 억장 무너지는 이야기로 남아있다. 편승해서 북한의 특공대가 광주에 침투해 일을 벌인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소설'을 꾸며댄 사람도 있었다. 반발을 억누르고 기득권을 사수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씨의 민주정부 10년 동안 잠잠하던 종북·좌빨 타령은 이명박 씨가 완전히 되살려 놓았다. '종북몰이를 위한 관제데모'로 의심받을 만한 시위까지 등장한 것은 시대적·국가적 비극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사법부가 '무죄'라고 최종판단한 촛불시위도 종북·좌빨 세력의 소행으로 몰렸고, 바른 소리하는 방송을 종북세력이 지배하는 빨갱이 언론이라 공격했다. 헛돈 쏟아 부어 온통 국토를 병 들여 놓은 4대강 사업을 비판한다 하여, 종북세력이 나라 잘되는 꼴 못 본다고 했다.

기득권층을 불편하게 하는 모든 것은 종북·좌빨의 난동이 되었다. 천안함 사태가 북한이 저지른 것임을 인정하지 않아도 종북·좌빨이 되었다. 정부 발표에 대해 '소설'이라고 말했던 이외수 씨가 한 TV 프로그램에서 해군들을 상대로 강연을 했는데, 논란이 되면서 방송 자체가 나가지 못했다. '북한 소행임을 확신하지 못 한다'하여 헌법재판관 후보가 여당 국회의원들에 의해 국회 임명동의를 받지 못했다. 희한한 종북몰이였다.

천안함 사태는 지금도 국내외 적지 않은 학자들이 북한의 공격여부를 놓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나, 정부 측은 납득할 만한 과학적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저 그렇게 믿으라, 안 믿으면 좌빨"이라 몰아붙이고 있는 상태다.

집권층은 그렇게 계속 종북몰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광주민주화 운동을 놓고 한 인터넷 매체가 '좌빨 홍어들이 벌인 폭동'이라고 까지 목청을 높여도, 제지하기는커녕 국정원에 초대해 밥도 먹여주고 고급시계도 선물로 주었다. 기득권층과 한통속이 되어 '통쾌한' 종북몰이에 속으로 박수를 쳤다.

MB정권에서 다시 연주되기 시작한 종북·좌빨 타령은 박근혜 정권 들어서면서 더욱 기승을 부리며 절정을 향해 치닫는 느낌이다. 특히 대통령 선거 부정사실이 모습을 드러내자 이 정부 이 정권은 물론 모든 기득권 세력들이 그 선거부정을 덮어보기 위해 총력적인 종북·좌빨 타령을 외쳐대고 있는 형국이다. 국가기밀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해 터무니없는 NLL논쟁을 일으키면서 노무현 씨를 종북몰이 했다.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치졸한 술수였다.

실제로 북한의 노선을 따르는 것(종북)도 아니고, 좌익도 빨갱이도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사정없이 종북·좌빨 딱지를 붙여대고 있다. 딱지를 붙일 수 있는 권한이 그들에겐 있다. 사제의 강론 가운데서 마음에 들지 않는 꼬투리 하나를 찍어내 잡아넣을 듯이 협박하는 모습도 보였다. 국민들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 온통 나라가 종북·좌빨 타령으로 날이 지고 날이 새는 형국이다.

실제로 북한의 노선에 동조하거나 법을 어긴 행위가 있으면, 그것대로 실정법에 따라 처리하면 될 일이다. 그런 거 하라고 국가가 비싼 세금 들여 사정기관 운영하는 거 아닌가. 그 과정에서 미심쩍은 대목이 있으면, 대통령도 특별히 좋아하는 '사법부의 판단'을 받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기득권을 지켜내기 위해 '이른바 언론'까지 가세한, 당당치 못한 총력 공안·종북몰이로, 특히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을 속이려 해서는 안 된다.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 나라에서 종북·좌빨 타령의 본질은 거의 이념논쟁이 아니다. '기득권층의 밥그릇 지키기'다. 달리 표현하자면 기득권층 밥그릇 넘보려 하지 말라는 말이 되어 있다.

기득권 사수 전선의 배후에는 대통령들의 얼굴이 자리 잡고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과 이명박으로 이어지는 도도한 흐름이 있다. 그 연장선상에, 투명함을 외면하면서, 대선 부정 개입사건의 고비를 조용히 넘기고 싶은 정권과 기득권의 '특별한 근심'을 끌어안고 버티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도 보인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나라가 불행해 질 수도 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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