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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실각설 기획폭로 의혹', 국정원이 자초했다

[편집국에서] 국정원과 '속칭' 전문가들

이승선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2-06 오전 7:26:53

 

 

국정원은 첩보 수집 파트와 판단 파트가 따로 있다. 판단 파트가 더 고급인력이다. 이들에 의해 첩보에 대한 확인과 판단을 거쳐야 정보라고 할 수 있다. 국정원이 첩보 수준을 정보라고 할 만큼 충분한 확인과 판단 절차 없이 발표를 했다면, 그것은 '기획 폭로'라는 의혹을 자초하게 된다.

'기획 폭로'의 정황은 여러 가지다. 우선 국정원이 장성택 실각설이 공개되도록 한 시점이 여야가 국정원 개혁특위 합의 논의를 진행하는 상황과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정보가 아니라 첩보의 '기획 폭로'라고 의심하게 만드는 정황은 바로 다음날인 4일 국방부와 통일부 장관들에 의해 드러났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이날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완전한 실각 여부는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해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실각이 아니라 실각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라면서 톤다운을 시켰다. 하지만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같은 시간 국회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새누리당 최고중진회의에 출석해 장성택이 실각했다고 보기는 '시기상조'라고 밝혀 통일부 장관의 답변과 큰 차이를 보였다.

 

▲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을 표방한 국정원. '장성택 실각설'을 공개한 국정원의 행위를 보면, ''무명의 헌신'이라는 표어가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장성택 실각설'에 편승한 의원과 전문가들

'장성택 실각설'이 맞는다면 자칫 북한의 도발이 우려되는 사태라는 안보당국의 판단과 걸맞지 않게, 정부는 외교안보장관회의도 열지 않았고, 군 역시 대북 경계태세인 '진돗개' 발령 수위를 높이는 조치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합참이 정보감시 및 작전 대비태세를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린 정도다.

부처 간 엇박자는 계속되고 있다. 5일 김관진 국방장관은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전날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장성택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다"는 답변에 대해서 어긋나는 입장을 밝혔다. 김 장관은 "어디 있는지는 우리 능력으로는 확인이 안 된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언론플레이'에 대한 의혹도 농후하다.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회 야당 간사인 정청래 민주당 의원에게 단독 브리핑 형식을 취해 첩보를 알린 뒤, 일부 언론에 '장성택 실각설'이라는 단신이 나가도록 하면서 경쟁적으로 보도가 되도록 유도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정청래 의원은 기자들의 확인 요청이 쇄도해 어쩔 수 없이 긴급하게 공개하게 되었을 뿐 여야 간사의 협의로 발표한다는 관례를 깨고 단독 발표를 했다는 것은 오해라면서 짐짓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정 의원은 자신이 부각될 기회를 잡은 듯 거침없이 국정원 첩보에 살을 붙여 갔다.

정 의원은 장성택 실각의 배경을 전문가까지 동원해 설파했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김용수 교수에게 물어보니 "최룡해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장성택은 끊임없이 권력투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김 교수가 "장성택이 실각했다면 최룡해가 권력투쟁에서 이긴 것 같다, 그리고 총정치국장은 정무적 판단 등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가장 센 자리다. 이 상황이라면 최룡해의 승리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나아가 4일에는 정 의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장성택 실각설'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남북관계에 대한 처방까지 내렸다.

정 의원은 "김정은 체제는 처음에 출범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이 오래가지 못할 거다, 어린 친구가 잘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얘기들을 했는데 그 예상은 다 빗나갔고 오히려 고모부까지 이렇게 숙청을 하는 막강한 권력을 쥐었다고 볼 수 있다"면서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가 더 가속화 될 것이고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의 기대와 희망사항과는 달리 오히려 북한 체제는 안정 체제로 갈 것 같다가 제 개인적인 분석"이라고 말했다. "실체적 진실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는 대비를 하는 것이 우리의 안보와 남북관계를 위해서 좋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국방부와 통일부의 떨떠름한 반응들

하지만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긴급 소집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간담회에 출석해 "장성택의 신변에는 이상이 없는 걸로 안다"고 답변하고, 이번 사태의 원인을 최룡해 총정치국장과의 권력쟁탈전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최룡해와 장성택의 갈등구조는 오래 전부터 얘기하던 분들이 있다. 그러나 이번은 그것과 깊은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추측한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국정원의 '기획폭로'에 대해 일부 국내 전문가들은 맞장구를 치듯 소설쓰기식 진단을 내렸다. 언론에 소개된 국내 전문가들 중 '장성택 실각설'이 맞는지 아니면 믿을 수 없는 얘기인지 어떤 논거를 제시하며 판단을 내리는 이는 찾기 힘들었다. 이미 벌어졌다는 사건에 대해서조차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하며 판단을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의미와 전망을 내놓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나마 마침 한국을 방문한 일본의 권위 있는 북한 전문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장성택 실각설을 믿기 힘들다"면서 그 이유를 조목조목 제시하는 전문가다운 진단을 내렸다.

"맞는다면"으로 시작하는 전문가들의 중구난방 진단

와다 교수는 두 달 전에도 평양을 직접 방문하고 고위관계자들과 만나 북한의 내부 분위기를 엿볼 기회를 가졌던 만큼 자신감 있는 태도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과거보다 더 강력해지고 있는 것을 실감했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만약 장성택이 실각했다면 중국이 화를 낼 일"이라고 말했다.

또 와다 교수는 "장성택이 실각했다면 신변에 이상이 있는 게 당연하다"면서 "이상이 없다면 장성택이 실각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룡해와의 권력투쟁설에 대해서도 "당 국가체제에서 실력자는 최룡해와 장성택이다. 그 한 축인 장성택을 제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판단했다.

와다 교수는 김정일이 젊은 아들이 권력을 승계하기 위해 당 국가체제를 강화해 김정은을 앉힌 상태여서, 만일 한 축인 장성택이 제거됐다면 북한이 존속하기 어려워질 정도로 중대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국정원의 '장성택 실각설'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국정원이 흘린 '장성택 실각설'을 전제로 진단하는 국내 전문가들은 제각각 말이 달랐다. 맞는지 안 맞는지 판단보다는 "맞는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국내 전문가들의 진단을 보면, 정말 중구난방이 따로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데올로그'로서 특정 방향에 맞춰 사후적으로 꿰맞추는 소설쓰기로 느껴질 정도다.

이들 전문가들의 진단을 보면, 김정은 1인 체제가 강화되는 마무리 수순이라는 시각에서부터, 김정은 배후에서 심각한 권력투쟁이 벌어져서 북한 정권 자체가 극도로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진단처럼 정반대의 관점이 존재한다.

개혁 필요성 증폭시킨 국정원의 '물타기' 의혹

무엇보다 국정원의 '기획 폭로' 의혹은 국정원 개혁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통일부 내에서도 "한 나라의 정보기관이 첩보에 대한 신중한 확인과 판단을 거치고 정부 내부의 논의도 거치지 않고, 국회의원을 동원해 '폭로'에 나서는 사례는 외국에서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국정원과 다른 안보부처의 말이 다른 것에 대해 "국정원의 발표와 두 장관의 메시지가 우리 정부 내부의 정보공유 부족과 혼선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어도 큰일이고, 국정원이 정치적 이유로 고도의 타이밍 정치를 한 것이라면 더욱 큰일"이라고 비판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국가정보원이 공개한 내용에 대해 "사전에 듣지 못했다"면서 불만을 드러냈다. 국정원이 지난달 말에 입수했다는 첩보를 묵혀두었다가 국방부에게 알리지도 않고 왜 이렇게 급하게 국회의원을 통해 언론에 공개부터 하고 나섰을까. 정말 세간에 떠돌듯 국정원 개혁특위나 청와대의 '채동욱 찍어내기' 개입 관련 보도에 대한 '물타기 공작' 때문이었을까.

5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국정원 개혁특위 구성안이 의미있는 결실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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