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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지마 KTX'…초코파이 3만 개 든 그녀들이 떴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12/20 10:57
  • 수정일
    2013/12/20 10:5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현장] 철도노조 "이렇게 국민 호응이 좋은 파업, 처음 해본다"

박세열 기자,최형락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2-20 오전 9:18:14

 

 

"핫팩 받아가세요. 촛불 받아가세요"

영하 3도가 넘는 추위 속에서 '행동하는 여성들'이라는 깃발 아래 '쌍코(여성 온라인 커뮤니티 쌍화차 코코아)' 회원들이 핫팩과 '오예스'를 나눠주고 있었다. 체감온도 영하 10도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날씨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1주년인 19일 오후 6시부터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전국철도노조(철도노조)는 '철도민영화 저지! 총파업투쟁 승리! 총력 결의대회'를 열고 '수서발KTX 출자회사 설립 중단, 철도 민영화 중단' 등을 촉구했다.

이어 오후 7시에는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및 의료 민영화 반대 등을 내건 시민들과 자연스럽게 결합했다. 주최측 추산 3만 명(경찰 추산 6000명)이 모인 집회는 지난 2008년 촛불집회를 연상시키는 광경들이 자주 포착됐다. 집회의 사회자는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 소울드레서에서 초코파이 3만 개를 들고왔다"고 전했다.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쌍코와 소울드레서. 한 언론에 따르면 지난 8월까지 뜨거웠던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촛불집회만 해도 '보이지 않던' 이들이다. 이날 추위 속에서 촛불과 핫팩을 나눠주고 있던 쌍코의 한 회원은 "공공재 민영화에 대해 우리 카페의 관심이 매우 많다. KTX, 의료민영화 등은 정부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레시안(최형락)

 

▲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들이 나눠준 핫팩 ⓒ프레시안(박세열)


2008년 촛불소녀들, 성인이 된 그녀들이 움직인다

철도 민영화, 의료 민영화 등 '공공재 민영화' 이슈가 시민들의 공감대를 얻고 있다. 이날 집회를 두고 "2002년 미선이효순이 사건 이후 한겨울 한파에 이 정도 인원이 모인 것은 처음"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다수의 대형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들도 들썩이고 있다. 의료와 철도 모두 실생활과 밀접한 이슈들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일부 언론의 '괴담' 프레임은 오히려 반발을 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날 노조의 집회를 지켜본 김영미(가명) 씨는 "철도 민영화를 안한다고 하는데, 믿을 수가 없다. 언론에서 마치 우리를 무지한 사람들 취급을 하는데 수서발 KTX가 어떻게 민영화로 연결될수 있는지 다 안다"고 말했다.

철도노조원의 가족들도 나섰다. 철도노조 대창정비지부 김종섭 조합원의 아내인 민양운 씨는 연단에 올라 "파업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피하고 싶었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심정은 오죽했을까"라며 "우리 남편, 키도 작고, 못생기고, 복근도 없고, 심지어 머리카락도 별로 없지만, 최고로 멋있다. 꼭 승리하길 바란다"고 응원해 열열한 호응을 받았다.

올해 대학에 진학하는 성민수(가명) 씨는 친구와 함께 나와 얼떨결에 피켓을 뭉치로 받아든 후, 자발적으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봉사활동'을 했다. 성 씨는 "중학교 다닐 때 2008년 촛불집회를 봤는데 너무 어려서 나오고 싶어도 못 나왔다. 공공재 민영화는 절대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곳곳에 '안녕 못합니다' 피켓을 든 젊은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한 여성 참석자는 "고등학교 때 촛불집회(2008년) 나오고, 대학생이 돼 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촛불소녀'들이 대학생이 돼 박근혜 정부의 정책과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비판하며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이날 집회 현장에서 만난 철도노조의 한 간부는 "무엇보다 국민들과 가족들의 응원이 이렇게 많이 쏟아지는 파업을 처음 해본다. 몸은 힘들고 정신적으로 지쳤지만 고무적이다. 이제는 그냥 돌아갈 수가 없다. 정부도 돌아갈 명분을 주지 않고 거리로 내몰고 있다. 지쳐있는 조합원들도 '명분을 줘야 돌아가지 않느냐'고 말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정부가 파업 시작하자마자 4000명 넘게, 지금까지 8000명 이상 직위해제 조치를 신속하게 내린 것이 오히려 파업 참가자들에게 '돌아갈 수 없다'는 의지를 심어준 것 같다. 조금씩 조금씩 직위해제를 하면 압박을 느꼈을텐데, 한번에 무더기 직위해제를 맞고 나니, 정신이 얼얼한 것이다.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어진 것"이라며 "파업 현장을 떠난 사람들도 일부 돌아오고 있다. 그런 것은 언론에 절대 안나오더라"고 말했다.

체포영장이 발부돼 수배자가 된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이날 생중계 영상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적 합의 없이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지 않겠다던 공약을 지켜야 한다"며 "해고 및 징계 위협으로는 철도 민영화에 대한 국민적 반대를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25명의 수배자 중 한 명이 체포됐다는 소식이 들린 날이었다. 이날 경찰은 집회 주변에서 수배전단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기도 했다.

국토교통부는 파업 12일째인 20일, 수서발 KTX 법인의 철도운송사업 면허를 발부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수서발 KTX 법인 설립이 사실상 확정될 것으로 보이면서, 정부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그리고 노조의 파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전망이다. 노조의 투쟁도 더욱 강경해질 전망이다.

전국의 조합원이 '상경 투쟁'을 위해 서울로 향하던 시점과 비슷한 때,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승리 1주년을 맞아 새누리당 당직자들과 함께 오만찬 자리를 가졌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물을 파는데 99길을 파고 1길을 안 파면 물이 안 나온다. 남은 1길을 파야 된다"고 '우물론'을 폈다.

그런 '우물'들을 지금, 철도노조도, 국정원 규탄 촛불집회에 나선 시민들도 파고 있는 중이다.
 

정봉주 "팟캐스트 새로 시작한다. 난 한놈만 조진다"

철도노조 등의 집회가 끝난 후 조합원들은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을 규탄하고 철도민영화 등 공공재 민영화에 반대하는 '관권부정선거 1년, 민주주의 회복 국민대회'에 참여한 시민들과 자연스럽게 섞였다.

천주교 원로인 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신부는 이날 시국강연을 통해 "지난 대선은 정부기관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관권 불법 선거로 그 자체로 당선은 무효"라고 주장하며 "관권 불법 선거에는 시효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 큰 호응을 얻었다. 함 신부는 "현 정권은 종북몰이로 국민갈등을 부추기고, 천박한 역사관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모독하고 있다"며 "불의한 정권과 언론이 마약처럼 남용하는 종북 오물을 하수구에 버리고, 이제는 남북의 화해와 아름다운 통일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봉주 전 의원이 두 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법무부 출장을 갔다 왔다"며 시민들의 웃음을 자아낸 정 전 의원은 "지난 9월 2일,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단 둘이, 아무 배석자도 없이 만났다. 거기에서 '최태민'이 아니라 '강태민(강력범죄 예방·태풍·민생경제)'만 논의했다고 한다. 그것을 논의하는데 왜 비밀로 하느냐"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은 이어 "과연 무슨 얘기를 했길래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의 '몸통'으로 추정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수사하지 못하고 있나"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정 전 의원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특검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있다. 특검은 하나의 '목표'만 보고 움직인다. 국정원을 압수수색하고, 새누리당을 압수수색하고, 청와대를 압수수색해야 하는데 그러면 뭐가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정 전 의원이 "국정원 대선 개입의 몸통이 누구냐"고 질문하자 시민들은 "이명박",과 "박근혜"를 외쳤다. 이에 정 전 의원이 "그게 왜 이명박근혜로 들리는지 모르겠다"며 "나는 한놈만 조진다. 나는 기억력이 나빠서 (이명박근혜) 앞에 세 글자만 생각나는데, '가카'도 이제 평민이고, 나도 이제 평민이다. 조만간 팟캐스트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해 큰 호응을 얻었다.

정 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하라고 할 때 하고, 진상조사 요구할 때 했으면 오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모은 그들의 '기획력'에 정말 놀란다"고 말했다.
 
 
 

 

/박세열 기자,최형락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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